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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고개 들고 나가고 싶어 검찰과 절대 손 잡지 않겠다고 작심"

[오연호리포트: 인물연구 노무현④] 권력분산, 자의냐 타의냐

등록|2007.10.12 09:30 수정|2009.05.29 17:23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월 2일 청와대 관저에서 걸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권력분산. 왜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를 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참 이상한 대통령이었다. 정권을 잡았으면 권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검찰권력과 여당을 대하는 방식이 그랬다.

참여정부의 인사들은 이 권력분산을 권위주의의 해체라는 미명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노무현 지지자들은 궁금해했다. 특히 대통령 노무현이 "대통령 노릇하기 힘들다"고 말할 때는 더욱 그런 권력분산의 실체를 궁금해했다. 왜 있는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힘들다고 할까?

권력분산은 치밀한 설계에 의한 전략적 선택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약체 정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권력 담당자들이 휘하의 권력을 통제하지 못해 어쩔수 없이 선택한, 자의 반 타의 반인가? 그것은 인물연구 노무현의 중요한 대목이다.

"고개 들고 청와대 나가기 위해 검찰과 손 안 잡았다"

대통령 취임 후 며칠 되지 않은 2003년 3월 9일, 노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막가는' 대화를 했다. 전국에 TV로 생중계되고 있는데. 전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 취임 초기에 검찰하고 긴장 관계를 만들었는데요, 그건 어떤 설계에 의한 것이었습니까?
"그건 작심하고 시작한 것이죠. 나는 절대로 검찰 신세를 안 지겠다고 작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검찰이 내 살림을 살아주면 자기도 또 뭘 누리는 게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청와대에서 걸어나오기 위해" 검찰과 거리를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검찰과 손 잡으면 청와대에서 걸어서 못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검찰이 내 손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만이 아니고 내 주변 사람들이 전부다 방심을 하게 되고 그리고 어지간한 건 묻으려고 하고, 사고는 묻으면 묻을수록 크게 폭발하거든요, 다이너마이트하고 같아서. 그러니까 사고를 묻어놨다가 말년에 와서 크게 터트리는 것이 우려가 되기도 하고."

- 측근인 안희정씨가 대선자금 문제로 구속(2003년 12월 14일)될 때는 '대통령인 내가 검찰에 좀 손을 써서...' 하는 유혹을 느꼈을 법도 한데요. 그때 대통령도 참 힘이 없구나 생각했습니까?
"그때는 이미 검찰하고 내가 사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이가 됐어요. 할 수가 없는 사이니까 그런 고민이 없었어요."

- 이러한 권력분산이 민주주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질문을 할 때는 내심 그럴싸한 대통령의 분석을 기대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다시 "살아서 걸어나가기 위해"를 강조했다.
"무사하게 걸어 나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아주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웃음). 말하자면 내가 대통령을 무사하게 마치고 고개 들고 걸어 나가기 위한 전략이 그겁니다.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아직 분석을 다 해 보지 못했는데 공직사회의 긴장도나 정책의 품질이 높아졌다고 봅니다."

인터뷰 당시(9월 2일과 16일)는 검찰과 언론이 변양균-정윤재 사건을 막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을 때였다. 두 청와대 인사 관련 사건의 실체를 묻자 "나도 100% 알 수는 없다, 대통령이 전능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은 검찰관련 발언을 하면서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검찰하고는 절대 손잡지 않았습니다. 장악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손잡지 않는다는 거였죠. 검찰은 장악되는 데가 아닙니다. 검찰조직이 일사분란한 것도 아니고요."

대통령의 검찰권력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싶었다. 대한민국 권력 1인자가 "검찰은 장악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보면 검찰에의 권력분산은 "작심한" 것도 있었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성격도 강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배석시킨 가운데 전국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당·정 분리는 자의 반, 타의 반"

그렇다면 이른바 당․정 분리, 여당에의 권력분산은 자의가 강했을까 타의가 강했을까?

- 노무현당으로 출발한 열린우리당이 여러 문제를 겪다가 결국은 해체됐는데요.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 혹시 안 하십니까? 당·정 분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당을 장악하고 했더라면 하는.
"장악이 안 되죠, 안 됩니다."
대통령은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려버렸다.

- 장악이 안된다... 그럼 당·정분리는 대통령 중심의 권력집중, 권위주의 해체라는 설계도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의 반, 타의 반인가요?
"자의 반, 타의 반입니다. 당․정 분리를 안 하고 내가 당권을 도로 장악해서 갈 수 있느냐, 그러면 내가 고민을 해 봤을 텐데 나는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당·정 분리 원칙을 일관되게 주장했죠."

왜 장악할 수 없다고 보았을까? 노 대통령은 당이 장악되려면 우선 노선이 통일되어 있어야 하고, 공천권이라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밑천을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정치인이 살려면, 동일한 정책적 가치를 갖고 그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뭉쳐서 당을 만들고, 그 이유 때문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지지 세력을 형성해서, 국회의원들이 그 당을 떠나면 살지 못하게 됐을 때, 그때는 이제 당·정 분리가 되더라도 그 안에서 이제 소위 이론을 가지고, 정책과 논리를 가지고 통제를 해 나갈 수 있죠.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그게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정치인은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지지 집단의 짜여진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 노무현 대통령이 노트북을 펴놓은 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컴퓨터에 '원칙이냐, 승리냐'라는 화두를 적어놓았다고 했다. ⓒ 연합뉴스 김동진

"사람들(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뭐 대의로 뭉친 것 같지만, 사실은 정치판에 딱 들어오고 나면 대의는 어디 가 버리고 정치적 입지만 남게 됩니다. 개인적 정치 기반과 입지, 이해관계만 남게 되어 있거든요. 대의라는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서 각론으로 들어가면 다 희석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을 함께 하는 정당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지지 집단, 지지 시민이 딱 짜여져 있지 않으면, 그러니까 당을 이탈했을 때 살아남지 못하는 문화가 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이탈이 생깁니다."

"컴퓨터에 '원칙이냐, 승리냐' 적어놓았다"

이런 인식 때문일까? 노 대통령은 임기 중에 어떤 일이 가장 힘들었냐고 묻자 "탄핵 당했을 때보다 (열린우리)당이 무너질 때가 더, 제일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컴퓨터에 '원칙이냐, 승리냐'라는 화두를 적어놓았다고 했다.


"원칙있는 승리가 첫 번째고, 그 다음이 원칙있는 패배, 그리고 최악이 원칙없는 패배다."

대통령은 왜 '원칙없는 승리'라는 가정을 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정치 사전'에는 그러한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까. 대통령은 '원칙'과 '승리'를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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