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안 사도 돼. 언제든 구경하러 와"
[헌책방 나들이 123] 인천 배다리 <마을로 가는 책집>
▲ 일터로 나오는 할아버지제가 일하는 지역도서관은, <마을로 가는 책집>이 코앞으로 내려다보이는 건물 3층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창영 할아버지가 일터로 나오는 소리며 모습이며 느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2> 책 하나 읽으며 하나를 얻어도
창영 할아버지는 몸이 버겁기 때문에 책을 사들이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당신 일터인 책방에 나와 있어도 한 자리에 앉아 계실 뿐입니다. 하루에 찾아오는 손님은 몇 안 되는 편. 당신이 지키는 '마을로 가는 책집'에는 참고서나 교과서를 하나도 안 두고, 오로지 교양책만, 인문사회과학책만, 종교책만, 문학책만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지요(인천 배다리 헌책방 들이 교양책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나, 이곳을 찾는 책손들이 '참고서와 교과서 찾는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기에). 그래도 창영 할아버지는 라디오로 새소식을 듣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드문드문 책 살피러 오는 책손하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보람을 느낍니다.
▲ 바깥 구경지난 8월 마지막 주, '산업도로 무효화'를 외치는 집회이자, 배다리 시민잔치를 치르던 때, 창영 할아버지는 길가에 걸상을 내어놓고 앉아서, 행사를 구경합니다. ⓒ 최종규
창영 할아버지가 돌아온 헌책방거리 한켠에서 지역도서관을 꾸민다고 요모조모 바삐 지내는 틈을 빼내어 '마을로 가는 책집'을 찾아갑니다. 할아버지한테 꾸벅 인사를 하며, 예전에 '창영서점'에 계실 때 찍은 사진을 한 장 건넵니다. "어? 이런 사진이 있었어? 옛날 사진이네?" 다섯 해 앞서 찍은 이 사진. 할아버지가 오늘 그만두실지 내일 그만두실지 모르는 터라, 챙겨 드리려고 했으나 미처 못 드리고 말았던 사진. '창영서점'이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드리지 못했던 사진. 이렇게 다시 헌책방 일꾼으로 현장에 돌아오셨기 때문에 건네 드릴 수 있는 사진. 오늘은 오늘대로 새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을 또 찍어?" "네, 이제는 새로운 곳에서 일하시잖아요." "그래, 그래, 찍어." 사진을 찍으며 책을 구경합니다. 먼저 황청원의 <칡꽃향기 너에게 주리라>(오상,1983)는 이름이 붙은 책을 집습니다. 1983년에 1쇄를 내고 1987년에 11쇄를 찍은 판. 무척 많이 팔렸군요.
.. 늘 평소 우리의 생활 자체가 진리라는 노 스님의 생활 철학이 저런 단순한 일상의 한 단면에도 담겨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 귓가로 '꽃씨를 뿌리기 위해 흙을 일구는 것도 우리의 심성을 일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지'라는 노 스님의 말씀이 들려왔읍니다. 그때 문득 내 아버님은 농부이시라는 생각과 그 흙 묻은 아버님 손의 따스함이 내 가슴으로 전해져 옴을 느꼈읍니다. 그 따스함은 흙에 모든 것을 배우며 살아오신 아버님의 소박함일 것입니다 .. <107쪽>
▲ 안쪽에서 밖을 보며책방 안쪽, 할아버지가 앉는 자리에서 밖을 내다본 모습입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느끼는 문구멍이자, 사람을 부대끼는 만남구멍입니다. ⓒ 최종규
.. 불가의 옛 스님들은 깨달음을 위해 일생 동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참아가며 스승의 단 한 말씀을 기다렸고, 그 스승도 제자에게 한 마디 일러 줄 수행의 깊이를 헤아리며 무소유로 일생을 지내기도 하였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지나간 시대처럼 참다운 스승이 결코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 <152쪽>
오늘 처음 만나는 낯선 이름에다가 낯선 책이지만, 이 낯선 책에서 어느 한 줄이라도 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제가 아직 보거나 느끼지 못한 세상을 깨우쳐 준다면, 제 모자람과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라도 짚어내어 다독여 줄 수 있다면, 이 책 하나 사면서 치르는 돈 1500원은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아니, 고작 1500원 책값을 치르면서 이런 말씀을 얻어들을 수 있다면 대단히 고마운 셈이며, 세상 사는 즐거움이 이런 데에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3> 세월을 돌아보다가 내다보다가
이병주의 <공산주의의 허상과 실상>(신기원사,1982)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소설을 쓰는 이병주씨가 이런 책도 다 냈는가? 책날개를 보니 활짝 웃고 있는 이병주씨 얼굴이 보이고, 날적이를 보아도 소설쟁이 이병주씨가 맞습니다. 머리말을 읽어 봅니다.
.. 대한민국 국민치고 공산주의의 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엇을 땐, 대강의 경우 그 악을 열거하긴 하되 그 정체와 전모를 설명하기란 힘든다 ..
▲ 얌전하게 놓인 책밖과 안 모두 책들이 얌전하게 놓여 있습니다. 창영 할아버지는 아침에 책방 문을 딴 다음, 먼지떨이로 먼지를 떨어 준 뒤, 하루 동안 흐트러진 책을 얌전하게 갈무리해 놓고 당신 자리에 가 앉습니다. ⓒ 최종규
.. 반공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용납될 수 없는 사회에서 새삼스럽게 반공이론을 펴려면 그 내용이 정치(精緻)하고 독창적일 뿐 아니라 결정적이어야 한다 ..
이병주씨는 이 책 하나로 '공산주의 비판 교과서'를 마무르고 사람들한테 크나큰 일깨움을 건네고 싶었구나 싶습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판하는 소리만 높인다는 것은 장마당에서 떠들어대는 약장사의 웅변과 다를 바 없이 들린다"는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참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앞에서 높디높은 이론만 펼치면 무엇하겠습니까. 소 귀에 불경을 읽는들, 돼지 귀에 성경을 읽는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렇지만 마음이 아립니다. 우리 사회에서 왜 '반공주의자 아닌 사람'은 받아들여질 수 없지요? 우리가 비판할 대목이라면, '공산주의라는 사상'이나 '마르크스 사상'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을 잘못 펼치는 사람'과 '마르크스 사상을 획일로 휘두르는 사람'이 아닐는지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 '자유와 민주를 제 뱃속만 챙기려는 검은 속셈'으로 뒤틀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제도나 틀거리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제도나 틀거리를 움직이는 사람들한테 문제가 있다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도덕과 철학을 똑똑하고도 알뜰하게 잘 배운 사람이라 하지만, 자기가 배운 도덕과 철학을 옳지 못한 쪽을 편들고자 함부로 쓰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잇속을 채우려고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때에는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 자리잡기아직 새로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한쪽에는 그대로 쌓인 책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제자리를 잡아갑니다. 할아버지 지팡이걸음만큼. ⓒ 최종규
<노동조합의 조사연구입문>(백산서당,1984)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조합운동을 할 때에 '이상과 실천을 헷갈려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엮은 작은 책이라 하는데, 이제는 옛날 자료가 되어서 쓸모가 많이 떨어지리라 봅니다. 그러나 지난날 전두환 독재라는 서슬퍼렇던 그때에도 이런 책을 꿋꿋하게 펴내면서 힘껏 싸우던 사람이 있었음을 돌아보는 자료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이 책 하나 펴내며 가슴 졸였을 책마을 사람, 이 책 하나를 숨겨 가면서 애틋하게 읽었을 노동조합 사람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나운영의 <스타일과 아이디어>(보이스사,1975)는 노래 문화에 크게 이바지한 나운영 님이 쓴 수필을 모은 책. 책이름만으로는 나운영 이이가 어떤 글을 썼는지 알기 어렵겠지요. 더구나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사람 글인데.
.. 민속음악은 지금까지 비교적 많이 수집되어 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주로 국문학자들에 의해서 가사만이 수집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무릇 성악곡은 먼저 가사가 있고 이 가사에 의해서 곡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어디까지나 가사와 곡을 한데 붙여서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닌가? … 어느 나라나 민속악기가 있다. 민속음악은 악기와 더불어 자라 왔고 민속악기 또한 음악과 더불어 자라 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 민속음악과 민속악기를 분리시켜서는 안 될 말이다. 이제 제주도 민요를 놓고 예를 들어 본다면, 제주도 민요는 거의 모두가 노동요이기 때문에 악기가 필요없다. 그러나 유일무이한 악기(?)로 허벅이 있다. 즉 물을 담아 나르는 항아리를 두드리며 소위 허벅장단을 치는 모습을 볼 때, 적어도 제주도 민요만은 허벅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 .. <13, 16쪽>
우리 문학을 이루고자, 우리 예술을 이루고자, 우리 그림이나 사진이나 노래를 이루고자, 우리들이 흘린 땀방울은 얼마나 될까요. 톨스토이를 읽으며 눈물과 웃음을 얻었다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엮어내려고 힘쓰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바이얼린이나 플롯 타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해금이나 단소는 처음부터 불어 보려고 마음 쓰지 않는 일이 문제입니다. 해금이나 단소로는 국악만 키거나 불러야 하는 줄 생각하는 일이 문제입니다.
.. 국악의 현대화 작업은 마땅히 국악을 이해하는 양악인이 솔선해서 착수해야 된다고 나는 단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양악에 있어서의 악전 또는 통론 정도의 지식만을 가지고 마치 양악에 통달이나 한듯이 생각하고 있는 국악인이 어찌 국악의 현대화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냐 말이다 … 구미의 현대음악이 자기 나라의 고대음악과 특히 민요의 발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 끝으로 대개 종합대학에는 음악대학이 있다. 그중에서도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대학교에는 음악대학 안에 종교음악과가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 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성균관대학교에도 文廟樂을 포함한 아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유교음악과가 설치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 <19, 26쪽>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책을 읽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국지>나 <서유기>를 아이들한테 읽히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와 문학을 읽고 느끼고 마음으로 삭이는 가운데 함께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삼국지>가 아니라면, 어딘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진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미국말을 잘 익혀서 나라밖 사람하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말과 글은 업수이 여기거나 제대로 안 익혀도 되지 않습니다. 커피를 좋아하고 서양종교를 믿는다고 해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땅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고 이 땅에서 부는 바람으로 숨을 쉽니다. 이 땅에서 거두어들이는 푸성귀와 곡식과 열매를 먹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우리 땅과 겨레와 나라를 모르면서 나라밖 문화나 문물에만 온마음을 쓴다면, 우리 삶은 어찌 될까요. 그저 성조기 휘날리며 미국 섬기기를 하는 식민지 노예살이에서 벗어날 길이 있겠습니까.
▲ 라디오창영 할아버지한테 더없이 소중한 벗, 라디오입니다. 라디오는 언제나 말벗이 되어 주고, 세상소식을 들려주는 길동무가 되어 주며, 조용한 헌책방 한켠을 살가운 목소리로 채워 줍니다. ⓒ 최종규
김제동의 <라일락 향기>(한국교육공사,1978)라는 책은 교사일을 맡고 있는 분이 쓴 수필을 모은 책. 이이는 여주와 양평과 수원과 공주 들을 거쳐서 인천으로 와서 제물포고등학교 교장을 맡았다가 인천여고 교장도 맡았다고 합니다. 이때가 1978년이니, 이제는 한참 앞서 정년퇴임을 하고 조용히 지내겠지요. 아직까지 살아 계시다면.
.. 물론, 우리들 세대와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의 가치관의 차이는 있지마는 진리에는 그렇게 엉뚱한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도둑인 아비라도 자식이 도둑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아비의 그릇된 말, 옳지 못한 행동에서 자식은 자기도 모르게 도둑의 방향으로 다름질쳐 가는 것이다 .. <44쪽>
1970년대에 20~30대 젊은이였을 사람을 바라보며 쓴 글입니다. 어느덧 그 뒤로 서른 해가 흘렀으니, 오늘날에는 50~60대가 되었을까요. 오늘날 50~60대가 된 분들은 지금 20~30대를 살아가는 젊은이 앞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예전과 똑같은 말?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서는 분들 말을 들어 보면서, '당신들 딸아들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살아도 좋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에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도 그이들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살아도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교과서에 '돈 많이 벌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넣으면 좋을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꿈꿀 자기 모습이 '돈 많이 버는 사람'이면 좋을까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들이 버는 돈은 어디에서 샘솟아 나올까요.
▲ 창영 할아버지<마을로 가는 책집> 지킴이가 되었지만, 예나 이제나 "창영 할아버지"로 헌책방거리 식구로 지냅니다. 할아버지 이름 석 자는 우리네 출판문화 역사에 들어가지 않겠지요. 새책방만 나오는 서점목록에도 끼지 못하겠지요. 문화예술인 사전에도 실릴 리 없을 테고요. 하지만, 앞으로 오래도록 제 마음에 고이 남으면서 제 삶을 비추어 주겠지요. ⓒ 최종규
▲ 셈대언제나 깔끔하게 갈무리되어 있는 셈대. 책손이 고른 책들을 이 셈대에 올려놓고는, 쪽지에 책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놓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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