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주장] 파병연장은 에너지의 과다 방출이다

등록|2007.10.13 11:07 수정|2007.10.13 12:23
며칠 전에 국내의 저명한 일본사 학자가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한 적이 있다. 

“한 사회가 특정 분야에서 역사적인 기술적 성과를 이룩하려면, 그 시대의 전 사회가 그 한 분야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인 기술적 성과는 우수한 장인 한 명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전 사회의 공동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센고쿠시대(전국시대, 임란 이전)의 일본 다이묘(지방 세력자)들은 우수한 도검을 만드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수한 무기가 있어야 다른 다이묘들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15세기 일본에서는 현대 일본인들도 모방할 수 없을 정도의 우수한 도검이 개발될 수 있었다.  

일본에서 1930년대에 나온 8밀리 영화에서는 15세기 도검으로 기관총을 베는 장면이 있었다. 다이묘들이 부국강병에 힘썼던 그 시절에, 도검 생산에 대한 사회적 집중의 결과로 그런 우수한 도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도검에 대한 집중력을 상실한 그 이후의 시대에는 다시는 그런 도검이 생산되지 못했다. 

고려청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려시대에는 청자기술의 개발을 위해 사회적 노력이 투입된 결과, 오늘날에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우수한 자기가 개발될 수 있었다. 청자에 대한 사회적 집중력을 상실한 이후로, 한민족은 다시는 그런 청자를 만들지 못했다.”

이 코멘트에 담긴 메시지는 ‘특정 분야에 대한 사회적 집중력이 상실되면 그 분야에서 특기할 만한 역사적 성과가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메시지는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메시지가 당연하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당연한 메시지를 한국 사회가 제대로 실천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지난 9월 11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군의 파병연장을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심윤조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여러 가지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국회의 의견도 들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병 연장문제와 관련하여 위의 이야기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한민족에게 무엇이 최우선적 과제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한민족에게 최우선적인 과제로는 양극화·평화·통일 등의 해결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양극화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한반도 내부의 문제들이다. 알렉산더·칭기즈칸·나폴레옹·히틀러·히로히토 등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외팽창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이처럼 지금 한민족은 한반도 안에서 중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위의 문제들은 절대로 한반도 밖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한민족은 지금 한반도 내부의 문제들에 대해 에너지를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민족의 이익과 상관없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휘말려 해외로 군대를 내보낸다면, 이는 한반도 내부에 집중해야 할 한민족의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그리고 과다하게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내부에 쏟을 에너지를 외부로 과다 방출하면, 양극화·평화·통일 등에 투입될 역량이 약화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극화·평화·통일 등은 지금이 아니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런 쟁점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또한 그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지가 집중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심과 의지가 가장 집중된 지금 시기를 놓쳐 버리면, 나중에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 도검과 고려청자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엇이든지 때가 있는 법이다. 16세기 이후의 일본과 고려시대 이후의 한민족이 전성기 때의 명품을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것은 이미 때가 지났기 때문이다. 명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시대는 따로 있는 것이다. 

일본 도검과 고려청자가 특정 시대의 명품이었듯이, 양극화·평화·통일의 해결 역시 특정 시대의 명품일 것이다. 그 특정 시대란 지금 현재를 말하는 것이며, 지금의 기회를 놓치고 나면 나중에는 그런 문제에 집중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민족의 입장은 수험생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수험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생일 파티나 결혼식, 장례식 등은 수험생의 신경만 분산시키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민족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이 성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또 미국과의 관계가 한민족의 최우선적 고려사항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경조사’에 불과할 뿐이다.

양극화·평화·통일 등의 핵심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신경을 한반도 내부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모범적인 ‘수험생’의 태도일 것이다. 에너지를 밖으로 과다 방출하지 말고, 내부에 전력 집중할 때에만, 한민족은 양극화·평화·통일의 해결이라는 ‘21세기 특유의 명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