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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선 아빠·엄마·오빠 보이니?

[편지] 사랑하는 딸, 정민이에게

등록|2007.10.15 08:51 수정|2007.10.15 10:12

▲ ⓒ 권혁순


민아, 민아, 사랑하는 우리 애기 민아.

이렇게 네게,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편지를 쓸 줄이야 생각조차 못 했는데­…. 20개월 동안 네가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아빠와 엄마는 한 평생 가슴에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구나.

지난해 추석 전 날, 하늘이 희뿌옇게 되더니…. 올 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멍울이 들어 버렸구나. 애타게 널 불렀는데… 민아, 지금은 그 곳에서 들리니?

'정말 항암치료는 하는 게 아니었는데…'라는 후회아닌 후회가 머릿 속을 휘젓는구나. 이런 결과가 될 줄 알았다면 널 데리고 사람들 많은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데. 아! 민아, 민아… 사랑한다.

네 머리가 한 움큼씩 빠져 나가고 볼살이 날이 갈수록 빠져가며 하얗던 살이 까맣게 타 들어 가는데도 이 아빠는 네게 아무 것도 해 준 게 없구나. 의사 선생님이 13차까지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고 우여곡절 끝에 10차까지 왔는데, 이제 조금만 있으면 네게 못 해 줬던 돌잔치를 친지들 불러서 맘껏 할려고 했는데….

갑자기 원인 불명의 망막 박리, 곰팡이로 인한 폐 기능 저하. 또 다시 추석 전 날,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단다.

"여보,빨리 와.민이가 숨을 못 쉬어."

그 날, 그 다음 날…. 이게 아빠·엄마와 너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급격한 호흡 곤란으로 소아중환자실로 내려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버티고 버텼는데, 거대 세포 바이러스가 널 너무 망가뜨려 놓았더구나. 독성이 강한 항생제가 그리도 많이 들어 가는데 네 연약한 몸이 그걸 견뎌 내는 게 대견하다고… 선생님들은 말하더구나. 그래도 처음보다 폐가 조금씩 좋아진다고, 9일 화요일에 간호사 선생님이 웃으며 얘기 했는데.

아…. 민아, 우리 딸 민아, 너무 너무 보고 싶어. 아빠는 눈물이 이렇게 마르지 않고 내리는데. 12일 엄마가 갑자기 올라 오라고… 그 날 아침부터 괜시리 아빠의 가슴이 아파왔는데… 네가 불렀더구나. 계속 차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작은 소리로 중얼 중얼.

대학로 접어 들었는데, 또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빨리, 민이 갈려고 해."

비상등 켜고 들어가서 키 던져 두고 3층으로 달렸는데, 네 몸 속의 피가 입으로 코로. 민아, 아빠는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네가 조금만 더 이 고비를 넘겼으면 좋겠다고 또 네게 무리한 부탁을 했더란다.

아빠·엄마가 원망스러웠지? 차라리 눈 부릅뜨고 아빠한테 투정이라도 부리지…. 식어가는 네 몸을 아빠는 수도 없이 부볐단다. 아빠 눈물로 네 얼굴을 씻어 줬더란다.

"삐~~~~~"

모든게 정지된 상태. 무릎 꿇고 아빠는 네게 용서를 빌었어.'정말 미안해 정민아….' 애기보에 싸여 차디 찬 안치실에 넌 있는데.우린 널 보낼려고 모텔 방에 있는 것도 소름끼치게 싫었단다. 엄마 몰래 안치실에 다시 들어 가 널 봤단다. 우리 민이, 예쁜 민이.

너무 차가워 또 울컥 울음이 터지더구나. 14일 오늘, 널 죽령 고개에 두고 걸음을 옮기니…. 풍기에서 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더구나. 울지마렴, 민아. 울지마. 너까지 울면 아빤 더 슬퍼져.

지금도 눈물이 맴돌아, 엄마는 오빠랑 억지로 이겨내는데, 아빠는 그럼 안 되는거지? 민아, 가슴에 널 품어 뒀으니 한 번씩 꺼내 볼게.

우리 민이도 할아버지, 할머니랑 외롭지 않게 있다가 친구가 필요하면 아빠에게 오렴. 민아, 사랑하는 민아. 아빠가 네게 쓴 편지들 다 읽어 봤니?

아가, 보고 싶은 아가. 엄마도 네 품이 그리운가봐. 널 꼭 껴 안고 잤는데…. 어쩌니? 사랑해…. 이렇게라도 네게 말을 전하고 싶었어. 오늘은 별로 안 춥지?

우리 민이, 꼭 다시 만나자. 나중에 아빠 모른 척 하면 안 돼. 잘 자, 민아…. 내일 밝은 해 보며 기지개 켜렴, 알았지. 사랑해. 또 편지 쓸게.
덧붙이는 글 널 어떻게 지울 수 있겠니! 우리 같이...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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