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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교가 화음 맞추니 '야단법석'

국립국악관현악단 국가브랜드 공연 '네 줄기 강물 바다로 흘러' 13·14일 열려

등록|2007.10.15 10:38 수정|2007.10.15 11:26

▲ 장구명인 김덕수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장구로 지휘했다. 그리고 황해도 만신 서경욱이 국립극장 무대에 협연자로 선 이색적인 무대를 선보인 박범훈 작곡의 '신맞이' 연주 장면. ⓒ 김기


국립극장 산하단체들은 2006년부터 순차적으로 ‘국가브랜드’라는 특별한 수식이 붙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국립극단 ‘태’와 국립창극단 ‘청’은 작년에 이미 선보였고, 올해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아래 네 줄기 강물)’까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의 작품들이 딱히 흠잡을 것 없이 무난한 평가를 받았기에 올해를 기다린 새로운 두 작품은 기대와 긴장 속에 기다려져 왔다. 공교롭게도 이 두 작품 모두 지난 9월 28일부터 이달 27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을 통해 선보여 작년에 비해 한층 더 긴장감이 높았다. 세계 유수의 국립극장 대표작들과 함께 어깨를 겨뤄야 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보인 무용단의 ‘춤, 춘향’은 기대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국악관현악단 관계자들은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평소 단적인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황병기 감독이 대단히 자신감을 드러내온 ‘네 줄기 강물’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내와 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네 작곡가에게 일찍이 위촉한 네 곡은 확연하게 구분되는 색깔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네 줄기 강물’이란 불교, 도교, 무교, 기독교 등 한국인의 정신 속에 깊이 뿌리박은 종교를 표현한 것이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국내 작곡가인 박범훈, 김영동은 국악의 전통적 정서와 미학을 토대로 불교, 무교의 주제를 전달한 반면, 해외 작곡가인 박영희, 나효신은 서양 작곡기법에서 한국 악기들을 통한 접근을 시도해 모두 한국악기들을 사용하고서도 서로 다른 음악을 완성해 네 줄기 강물이 따로 흘러도 결국 한 바다에서 만난다는 화합의 주제를 구현하였다.

▲ 김영동 작곡의 '화엄'을 연주하는 모습. 사진 속 아래는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왼 선불합창단 단원 모습. ⓒ 김기


13일과 14일 이틀간 열린 공연은 1, 2부로 나뉘어 1부에는 박영희, 김영동의 곡을, 2부에는 박범훈, 나효신의 곡이 북한 출신 지휘자 김홍재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작곡가부터 지휘자 그리고 이를 연주하는 악단까지 국내에서 구성할 수 있는 가장 최선으로 진작부터 평가되었다.

첫 번째 곡인 박영희 작곡의 ‘온 누리에 가득하여, 비워지니…’는 도가사상을 주제로 한 작품답게 시종 채워질 듯 이내 비워지는 것을 반복하였다. 단지 음량면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조성과 비조성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오락가락하여 음악으로 들을 만하면 음향이 되고, 그렇거니 하면 다시 음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일반인이 듣기 가장 힘겨웠던 곡이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 곡인 김영동 작곡의 ‘화엄’은 제목의 웅장함과는 달리 시각적으로 사뭇 극적 요소를 보였고, 음악에서도 깊은 산사의 새벽예불을 대하는 듯 편안한 감상을 가능케 했다. 작곡가가 노트를 통해 ‘대악필이(大樂必易; 큰 음악은 쉽다)’를 피력한 것처럼 그대로 보여졌다.

무대 네 귀퉁이에 목탁을 든 청년들이 등장해서 한 동안 반야심경을 독경하는 것으로 시작한 ‘화엄’은 이후 불교사물(佛敎四物)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범종(梵鐘)과 독경과 어우러지는 그야말로 대 화엄을 유장하게 표현했다. 염불과 단음의 사물과 화합하는 관현악의 합주 또한 복잡한 음의 나열 없이 신새벽을 깨우는 산새울음처럼 단순하면서도 오히려 듣는 이의 가슴을 흠뻑 적시는 감동을 선사했다.

장구 명인 김덕수 지휘자 데뷔?

▲ 장구 명인 김덕수가 여러 사물잽이와 함께 타악의 진수를 보이고 있다. 박범훈 작곡 '신맞이' 연주 모습 ⓒ 김기


휴식을 가진 후 열린 무대에는 지휘석에 장구 두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전체 조명이 들어오자 역시 지휘자 대신에 금색 한복을 입은 사내가 걸어 들어온다. 그는 다름 아닌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지휘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장구 주변에는 역시 바라, 북, 징, 방울 등 무구를 든 단원들이 정좌해있다. 인사를 꾸벅 하고 장구 사이로 들어간 김덕수는 단원들과 한판 타악의 향연을 펼쳤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무복을 입은 만신이 무대에 등장해서 황해도굿의 ‘청신(신을 불러 모시는 과정)’ 대목을 부르고, 김덕수는 만신과 더불어 덩실덩실 춤을 추더니 다시 장구로 돌아가 관현악단과 함께 청신 주제를 연주한다. 이 곡은 박범훈 작곡의 ‘신맞이’로 과거 국악관현악의 중흥을 이끌었던 ‘신모듬’에 이어 이번에는 무속장구를 위한 관현악곡을 더 많은 퍼포먼스를 동반해 선보인 것.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지만, 사실 우리 전통음악에서 장구는 서양에서의 지휘자 역할을 해왔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형식에 대한 신중한 고민 없이 받아들인 국악관현악단은 그동안 무조건 지휘봉을 든 지휘자가 악단을 지휘했다. 작곡가의 작곡 의도를 모두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신맞이’에는 그런 반성과 전통으로의 회복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모든 관현악곡을 장구잽이가 지휘를 맡을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음악의 자존심을 지키는 보루는 되어줄 것이다.

물론 서양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가 자기 전공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일도 자주 있었지만 장구와는 구분된다. 서양 악기는 무엇이라도 지휘의 속성을 따로 갖고 있지 않지만 장구는 그 자체 음악재료로서의 역할도 있지만 다른 악기의 장단을 단속해주는 역할이 본래 더 크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난 후 로비에서는 ‘역시 박범훈’이라는 말이 오갔다.

▲ 지휘 도중 특경, 특종, 좌고 등 국악기를 연주했던 나효신 작곡 '태양아래'를 지휘하는 김홍재. ⓒ 김기


연주의 마지막은 미국에 거주하는 나효신의 '태양 아래'는 기독교를 주제로 한 곡이다. 국악관현악곡은 이번으로 세 번째이지만 평소 국악곡을 자주 써온 나효신은 다른 서양음악 작곡가에 비해 국악기에 대한 이해와 표현에 대해 좀 더 안심할 수 있는 작곡가이다. 앞서 연주된 ‘신맞이’에도 지휘석에 장구 두 개가 있어 청중들이 의아했는데, 나효신의 곡 순서에도 지휘석 주변에는 특경, 특종, 좌고가 놓여져 있어 이번에도 지휘자가 없나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지휘자 김홍재가 걸어 나와 연주를 시작했다. 김홍재 지휘자는 지휘 도중 지휘석을 감싼 타악기들을 치기 위해 지휘봉 대신 타구를 들어 청중들은 앞서 이미 ‘신맞이’를 보아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생소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런가 하면 대금주자 두 명은 객석 통로에 앉아 연주하다 연주석으로 걸어 들어갔으면, 양금 연주자는 무대 바로 아래서, 세 명의 단원들이 대취타에 쓰이는 나발을 무대 옆에서 불며 입장했다.

그런가 하면 연주 도중에 연주자들이 모두 악기에서 손을 놓고 뭔가를 낭독했다. 수십 명이 내는 소리를 객석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것은 구약 전도서의 한 구절이었다. 작곡가는 지휘자 역할에 대해서 역시 국악 전통에 대해 생각을 품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여러 연주자들이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기독교적 논리의 형태에 대한 은유였다고.

▲ 국립국악관현악단 ⓒ 김기


이쯤 되어서는 이 날 연주가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편 것임을 알게 된다. 다만 도교, 불교, 무교, 기독교의 법석이 무대 위에 설치되었고 청중들은 각각의 종교적 표현이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의 자리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네 개의 종교 주제를 선택했지만 그것은 종교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으로 볼 수 없다. 음악이 시대의 문제에 대해 외면할 수 없는 반영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지난 3월 이 네 곡들을 가지고 시연회를 갖는 등 완성도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황병기 예술감독이 기획단계부터 발상을 내놓았고, 장기간에 걸친 점검과 준비로 국악관현악에 부합하는 좋은 곡을 생산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국악관현악 지휘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인 두 작곡가의 문제제기를 통해 이슈를 내놓았다. 드러난 이슈를 통해 국악관현악의 고민과 숙제들을 해결할 계기로 삼을 수 있을 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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