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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전성시대

그가 내다버린 대의명분과 진정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등록|2007.10.15 18:03 수정|2007.10.15 18:09
아주 오래전에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나는 조신한 소년이었으므로 미성년자 입장불가였던 그 영화를 당연히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내용도 알지 못한다. 분명히 남녀상열지사를 담았을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오늘 대통합 민주신당의 경선이 끝나면서 압도적 1위를 했을 것이라는 정치인 정동영이 떠올랐다. 70년대 곳곳에 붙어있던 영화포스터와 겹치면서 정동영 전성시대라는 말이 맴돈다.

 1.정치입문과 성장

 문화방송의 기자였고, 뉴스앵커로 얼굴이 널리 알려진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는 김대중의 일인보스 정당에서 공천을 받고 전북에서 출마하였다. 지역구도가 총선의 판세를 명료하게 가르던 시절이었기에 호남에서의 출마는 떼 논 당상이었다.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돼서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성장을 구가하기 시작한 것은 재선이었던 16대국회였다. 당시 국민의 정부에서는 동교동계가 득세하고 있었다. 정동영도 동교동계와는 별다른 마찰없이 지냈고 권노갑씨로 대별되는 동교동계의 지원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권노갑씨를 향해서 그가 비수를 꺼내 들었다. 민주당내 정풍운동이 그것이다. 권노갑씨의 2선후퇴를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당내 소장파의 리더로 부상하였다. 

 그는 드디어 2002년 대선을 위한 국민경선에 출마를 하였다. 쟁쟁한 정치권의 선배들 틈에서 그의 출마는 매우 무모해 보였다. 9명으로 시작된 경선에서 한명씩 후보를 사퇴하며 국민경선을 무력화하는 동안 그는 경선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다. 패배를 알면서도 끝까지 완주한 것이다. 또 하나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챙긴 것이다.

 경선이 끝나고 민주당의 주류가 극심한 반발과 반칙을 일삼는 동안 그는 앞장서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가 스스로를 대선에 있어서 일등공신의 반열에 올려놓는 포석이 되었다. 투표 하루전 정몽준 지지자들이 '차기 정몽준'을 외치자 노무현 후보는 '너무 앞서가지마라, 정동영도 있고, 추미애도 있다.' 이렇게 발언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정몽준은 지지를 철회하였고 정동영과 추미애가 차기주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대선이 끝나고 정동영은 또 다른 정치적 비상을 준비하였다. 민주당의 틀안에서는 정권의 운용은 물론이고 자신의 정치적 미래도 어두울 것임을 인식하였다.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주문하며 신당을 창당할 명분을 축적하였다. 이른 바 머리채 사건이나 난닝구 사건을 발판삼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다. 대통령의 당장악이 불가능한 정동영 당의 탄생이다. 당의장이 되고 드디어 그는 당수급 반열에 오른다. 탄핵에 힙입어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였다. 제 1당이자 집권여당의 당의장이 된 것이다.

 2. 열린우리당의 명멸과 정동영

 열린우리당의 창당 명분은 시대정신을 매우 적절히 담아내고 있었다. 지역구도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정당, 깨끗한 정치, 당원이 주인되는 상향식 정당, 책임정치의 원리를 구현하는 백년정당을 내걸었다. 탄핵의 역풍만이 아니라 창당의 명분도 지지할만한 당당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창당후 단숨에 과반의석을 가진 정당이 된 것이다.

 정동영은 총선이 끝나자 곧 '상생과 실용'이라는 모호한 노선을 내세웠다. 과반수를 몰아준 지지자들이 의아해하는 사건이다. 법사위원장을 한나라당에 내주고 개혁에 대한 의지를 실종시키고 말았다. 모든 개혁입법이 법사위에서 극심한 병목현상을 보이면서 좌초되고 말았다.

 충성도가 낮은 지지자들의 이탈이 시작된다. 재보궐 선거 등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였다. 기간당원들의 정치인에 대한 간섭과 견제도 귀찮게 느끼는 사람이 점증하였다. 호남몰표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도 높아졌다. 당의 근간을 이루는 기간당원들중 상당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기대선 후보가 되는 일도 쉽지않아 보였다. 정치인들은 점점 원하지 않는 상대와의 통합에 몰두한다. 당헌당규를 누더기로 만들어가면서 기간당원들을 몰아내려 하였다.

 점점 대통령의 지지율은 낮아지고 청와대에 대한 공격의 화살이 빈도를 늘려가고 있었다. 지방선거에서는 싹쓸이를 막아달라며 읍소까지 하였지만 허사였다. 당내 최대계파의 수장이던 정동영과 두번째 계파의 수장이던 김근태는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열중하였다. 국민들의 눈에는 정당이 아니라 콩가루 집안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서서히 국회의원들이 탈당을 하고 당은 껍데기만 남았다.

 당의 지분을 과점하였던 정동영과 김근태조차 탈당하고 기간당원제는 이미 사라졌다. 모두가 대통합이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대통합 민주신당에 흡수합병되면서 열린우리당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항상 가장 강력한 힘으로 정동영과 그 계파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만든 정당을 자신에게 불편하다며 문닫게 만들었던 것이다.

 3. 대통합 민주신당의 국민경선

 드디어 대통합 민주신당이 창당되었다. 물론 그 안에는 5년내내 정동영이 정성들인 조직이 있었다. 김근태의 불출마에 더하여 손학규를 끌어들였고 친노세력까지 참여함으로써 경선이 시작되었다. 물론 경선의 룰도 반드시 정동영이 이길 수 밖에 없도록 이미 짜여진 것이었다.

게다가 창당의 명분도 오로지 반한나라당 연합으로 지역구도를 복원하고 대선을 치르겠다는 것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의 창당명분과도 비교조차 안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곧 시작된 경선도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하여 동등한 한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리접수를 무한정 허용하였다. 본인의 동의를 받지않고도 무조건 등록을 시키고, 여론조사를 빙자한 지지성향을 파악한 후, 자신을 지지하는 선거인단만을 차로 실어나르는 방식을 구사하였던 것이다. 투표율이 20%에도 훨씬 못미치는 이런 방식의 경선룰을 만들어서 반드시 이기도록 포석한 것이다.

 신당의 경선은 숱한 불법과 탈법을 낳았고, 심지어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이 신당의 경선을 철저히 외면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동영의 승리는 확고한 것이었다. 대통령의 명의가 도용되고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 무산되는 등 법질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경선이었지만 원내제 1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데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었다.

 초반의 지지율 열세를 조직동원으로 일거에 만회하고 앞서나가자 지지율마저 밴드왜건 효과로 상승하였다. 초반의 기세를 잡으면 결국 대단히 유리하게 되어 있었던 점도 충분히 고려하여 전력을 다한 경선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선후보가 되는데 보기좋게 성공을 거두었다. 

 4. 대의명분과 향후과제

 정치인들이 종종 대의명분을 주장하지만 사실상 그것이 허울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도 없는 것보다 나을테지만 대의명분이 없는 정치는 오래지속하기 어렵다. 곧 들통이 나고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대세추종은 대의를 그르치고 국민의 처절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의명분이 존재하며, 그 명분에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비로소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치가 된다. 그것이 없이 정치를 하다보면 잠시는 국민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패배하는 정치가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다. 정동영은 어떤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지원하였던 동교동계와 권노갑씨를 공격하며 입지를 확대한 정풍운동이 있었다. 구태정치를 쇄신하자는 대의는 있었지만 진정성은 의심해볼 일이다. 구태정치에 물든 민주당의 환골탈태도 명분이 있었고, 열린우리당의 창당도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면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그나마 명분조차 찾기 어려웠다. 대통합 민주신당의 창당도 역시 대의명분을 찾을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활약하며 노사모의 일부 활동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고, 그들을 앞세웠지만 대부분의 노사모가 그와 등을 돌리고 있다. 경선과정의 여러가지 구태정치 의혹들은 두고두고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향후 후보단일화를 추진해야 하지만 누구도 쉽게 양보할 것 같지 않다. 저조한 지지율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의 대결에서 대패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수 많은 난관이 여전히 그의 앞에 놓여있다. 경선불복에 대한 국민적 반발을 두려워한 상대후보들이 노골적으로 경선에 불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진정으로 승복하고 선거를 도울 가능성도 또한 매우 낮아 보인다. 그것을 극복하고 묶어낼 명분이나 진정성을 보여줄 방법이 없어 보인다. 설혹 정치인들이 승복하고 선거를 돕는다 하더라도 그지지자들은 전혀 거기에 동의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본선에서 그가 이길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현실적 판세가 존재하는 한 그것을 극복하고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내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경선의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이 있었고,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간 사건들도 있다. 그런 모든 장벽을 넘어서는 힘은 대의명분에 있고, 진정성에 있다. 앞으로의 2개월이 그것을 만들고 국민에게 보여주기에는 너무도 짧아 보인다.

 정치란 대의명분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힘을 얻고 지속할 수 있어야한다. 대세만을 쫓거나, 단기적 유불리에 집착하여 진정성 없는 모습을 들킨다면 미래가 없다. 이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정치인상을 다시 생각해볼 시기이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묵묵히 옳은 길을 걷는 정치인이 그리워진다. 물론 그런 정치인을 찾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일테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노사모. 시민광장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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