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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노점 안 하고 굶어죽는 게 당신의 뜻입니까?"

노점상 고 이근재씨 폭력단속 규탄집회 참가기

등록|2007.10.17 08:31 수정|2007.10.17 18:09

▲ 고 이재근씨 영정. ⓒ 오준호

그가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여보, 몸이 아프면 오늘은 집에서 쉬어요"였다. 노점상 이근재(48세)씨는 이 말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와 목을 맸다.
떡볶이, 붕어빵 팔아 키운 아들딸과 사랑하는 아내를 지상에 남긴 채, 10년의 손때가 묻은 그러나 이제는 깡패들의 발길질에 부서진 노점수레를 유언장처럼 남긴 채.

이근재씨는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아내 이상미씨와 함께 고양시 주엽역 인근에서 먹거리 노점을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렇게 악착같이 벌고 모은 돈으로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고 폐종양에 걸린 아내의 병 치료를 했다.

그러나 고양시청은 지난 4월부터 대대적인 노점단속을 시작했고 이근재씨는 단속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수입은 줄기 시작했다.

10월 11일, 조직폭력배로 구성된 단속반원 200여명이 들이닥쳐 노점수레를 부수고 남녀  노점상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골목에 끌려가 실신할 정도로 맞은 사람도 있었다. 대한민국 구청 마크를 달고 온 단속반원들이 옷을 벗어던지자 등판에 새긴 용 문신이 출렁거렸다.

이근재씨는 두드려 맞는 아내를 비통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2일, 이근재씨는 "장사를 못하니 노가다라도 알아봐야겠다"며 집을 나섰고 결국 차가운 시체로 돌아오고 말았다.

강현석 시장은 대답하라, 노점이 죄인가

"먹고 살기 위해 노점한 것이 그렇게 죄가 됩니까? 그게 죄라서 우리 가정을 이렇게 풍비박산을 내었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거리에서 장사 안하고 굶어죽는 것이 시장님 당신의 뜻입니까? 그렇다면 당신 뜻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우리 가정은 당신 뜻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원한 것입니까? 강현석 시장은 대답하시오!"
16일 화정역에서 개최된 전국노점상총연합의 규탄집회에서 아내 이상미씨가 단상에 올랐다. 그녀는 오열을 주체하지 못해 몇 차례나 말을 멈춰야 했다. 듣고 있는 전노련 회원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고통스런 삶을 어떻게든 자기가 견디고 자식에겐 넘기지 않으려 했던 이근재씨, 그 고통을 만분의 일도 덜어주지 못한 자들이 도리어 삶의 유일한 수단을 부수고 단속하고 죄인 취급했다.

IMF 이후 한국에 노점이 대거 늘어났다. 그것은 이근재씨의 경우에서 보듯 안정적 일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올바른 정부라면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기본적 소득,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당장의 끼니를 위해 거리에 좌판을 펼치는 노점상이 줄어들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렇다면 당장의 대책은 무엇인가? 노점상들의 대표조직인 전노련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자율적으로 노점을 관리하도록 지원하고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노점을 당장 눈앞에서 치우려고만 했고 그것도 조직폭력배를 동원하는 비열한 방식을 썼다.

고양시청은 이런 단속비용으로만 자그마치 31억 원의 혈세를 배정했다. 강현석 고양시장은 한때 "생계형 노점상은 인정한다"고 했다가 나중엔 "내가 말한 생계형은 보따리 할머니"란 식으로 말을 바꾸는 등 노점 문제에 대한 진지한 인식이 없음을 보여줬다.

▲ 16일 화정역 인근에 전노련을 포함 약 5천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 오준호

행진 모습노점탄압에 반대하며 행진하는 참가자들 ⓒ 오준호

▲ 집회 참가자들이 컨테이너와 정문을 뜯어내고 있다. ⓒ 오준호

'시민과 함께 시민을 위한' 고양시청?

집회를 마치고 집회 참가자 5천여 명은 화정역에서 고양시청까지 행진했다.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용역깡패 해체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외쳤다.

고양시청 정면에는 '시민과 함께 시민을 위한 고양시청'이라는 모토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정문에는 다섯 개나 되는 육중한 컨테이너박스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시청 옥상에는 공무원들이 불구경하듯 팔짱끼고 참가자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담벼락 뒤에는 완전무장한 전투경찰들이 버티고 있었다. 어떤 시민과 함께 하고 어떤 시민을 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우리는 아님이 분명해보였다.
고양시는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역동적인 도시'에 들었다고 자찬해왔다. 하지만 그날 시청 정문에는 컨테이너박스를 놓았고, 정작 민원인을 맞아야 할 시청은 라스베가스에 있는지, 후쿠오카에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전노련 회원들은 이근재씨 사건에 대한 시장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라는 상식적인 요구를 들고 시장을 만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치 댐과 같은 컨테이너박스에 저지당하자 회원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밧줄을 가져다가 컨테이너에 묶었다. 그러자 전투경찰이 호스로 우리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성난 참가자들이 물병이며 각목을 집어던졌고 급기야 호스는 2개, 3개로 늘어나더니 잠시 후엔 물대포를 동원해서 쏴대는 것이 아닌가?

참가자들은 절단기로 컨테이너 사이의 철끈을 잘라버렸고, 밧줄을 묶어 컨테이너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물대포에 다들 흠뻑 젖으면서도 아무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너희가 사람을 죽였지!"

살인적인 단속을 일상적으로 겪는 노점상들의 울분과 복수심이 터져 나오는 것일까. 컨테이너를 다 끌어내고 시청 정문까지 뜯어내자, 전투경찰들이 최루탄을 터트리며 쏟아져 나왔다. 골목이 한 순간 연기로 자욱해졌다. 전투경찰의 곤봉에 참가자들은 각목으로 대치했다.

전노련 집행부와 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사과한다'는 그 한 마디가 시장 입에선 나오지 않았고, 장례식이 끝나면 다시 단속한다는 방침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다시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참가자들이 횃불을 들면 저들은 물대포로 공격했고, 그러면 참가자들은 다시 폐타이어에 불을 붙였다. 이 과정에서 양측에 부상자도 속출했다.
좌절하지 말자, 헛된 죽음은 없다

▲ 한국사회댱 금민 후보는 "헛된 죽음은 없다. 열사의 뜻을 저버리지 말자"며 용역깡패 해체, 노점상 폭력단속의 중단을 촉구했다. ⓒ 오준호

금민 한국사회당 대선후보도 이 자리에 나왔다. 금 후보는 "여러분, 좌절하지 맙시다. 어떤 죽음도 헛된 죽음은 없습니다. 열사의 죽음을 딛고 승리하기 위해 힘을 모읍시다"라고 연설했다. 그렇다. 이근재씨를 죽음으로 내몬 자들, 합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사회적 타살을 저지른 자들을 민중은 용서할 수 없다. 온 힘을 모아 싸우고 있다.

노점은 죄가 아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노점상이기에 앞서, 가난한 사람이기에 앞서, 국민이다. 국민에 대해 정부는 단속할 권리가 아니라 최소한의 복지 및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용역깡패를 고용하는 31억 원이 노점의 합법화와 자율관리제도 도입에 쓰여야 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 정책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고 이근재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사회당 서울시당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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