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노점상의 자살과 '한나라 정권'의 살풍경
[손석춘 칼럼] 도시빈민·노동자·농민의 연이은 죽음, 이래도 좋은가
▲ 16일 오후 전국노점상연합 회원들이 고양시청에 진입하려다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 오준호
어디론가 떠돌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설움 참지 못하고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단 당신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 줄까.
우리 시대의 현장 시인 송경동의 슬픈 노래다. 40대 후반 '붕어빵 노점상'의 자살 앞에 선 시인의 울분이 묻어난다. 시인이 아닌 먹물로선 더 난감하다. 대체 어떤 글로 이 세상을 이야기 할까.
늙어가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던 마흔여덟 살 고인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나마 일용직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을 때, 공원 나무에 목을 맬 때의 피멍 든 가슴을 상상해보라.
고인의 죽음 앞에서 불현듯 젊은 엄마의 최후가 겹쳐졌다. "살고 싶다"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아이를 기어이 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떠밀고 투신자살했다.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도시빈민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살풍경은. 예순아홉 살까지 평생 남의 땅에서 농사지은 농부가 생존권 집회장에서 공권력에 맞아 죽지 않았던가. 늙은 농부에게도 경찰의 진압봉과 방패는 사정없이 내려 꽂혔다. '할아버지 농부'가 참혹하게 맞아 죽은 열 달 뒤, 마흔 다섯 살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집회장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도시빈민, 농민, 노동자들이 줄이어 목숨을 잃고 있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아니다. 붕어빵 노점상의 죽음 앞에 옷깃을 여미며 쓰는 까닭이다.
노점상의 죽음 앞에 아무 책임 없다는 고양시
'노점상 단속령'을 내린 고양시 시장은 사과는커녕 아무 책임도 없다고 되레 눈 부라린다. 언죽번죽 세상을 비관한 자살이란다. 고양시 자유게시판에는 '시장 찬가'가 울려 퍼진다. 노점상은 '세금도 내지 않는 범죄자'라는 네티즌의 글을 보면서, 꿋꿋하게 더 단속하라는 댓글들을 보면서 하릴없이 절망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대체 누가 우리를 저토록 차가운 사람들로 만들었을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점상 단속은 단순히 경기도 고양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청도 이미 노점특별 관리대책을 발표했다. 10월16일 서울시의회에선 가판대를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조례 개정안이 통과됐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서울시와 경기도의 지자체 단체장들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신자유주의로 치달아 온 노무현 정권에 더해 지자체를 장악한 한나라당의 권력은 '붕어빵 노점상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불러오고 있다.
기실 도시빈민의 생존권보다 거리 미화를 더 중시하기는 박정희 독재시기 이래 군사정권의 오랜 전통이 아니던가. 그렇다. 에두르지 않고 곧장 묻는다.
경기도 고양의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과 40대 빈민의 자살은, 법치의 이름아래 날뛰는 조직폭력배의 활극은, 40대 후반 가장의 피맺힌 자살 앞에서 고양시장과 시청이 대처하는 모습은, 중앙권력까지 한나라당이 장악할 때 대한민국의 내일을 여실히 보여주는 축소판이 아닐까.
이미 이명박 후보는 노사관계에서도 법치주의를 강화하겠노라고 으름장 놓고 있다.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무심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집권했을 때 서울과 경기 곳곳의 지자체 권력과 더불어 어떤 나라를 만들어갈까. 그 살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과연 나 혼자만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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