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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조금만 더 가까이 오너라"

도봉산 맑은 계곡 송사리 떼 사진찍기

등록|2007.10.17 16:28 수정|2007.10.17 16:46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좌우에 산이 있고 더욱이 명산인 도봉이 지척인데도 좀처럼 가지질 않는다. 헌데 계절 탓인지 며칠 전부터 가을 산이 유혹을 하는 듯 마음이 들썩이더니 오늘(12일)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퍼지기 전에 다녀오리라 큰맘을 먹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 산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플래카드 ⓒ 김정애


산 입구부터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가을바람에 펄럭이며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하나하나 읽으며 올라가는 재미도 솔찮다. 그 중 그냥이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엄마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그렇다, 엄마를 좋아하는데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나래도 "그냥…" 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 누군가 내게 물었어도 그냥이란 말밖에는... ⓒ 김정애


그림엽서 같기도 크리스마스카드 같기도 한 축제를 알리는 그림들이 한껏 분위기를 돋운다. 산을 오르는 이들도 담벼락에 붙은 작품에 눈이 팔려 걷다가 멈추고 또 몇 걸음을 가다간 서고를 반복한다.
                                  

▲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그림 1 ⓒ 김정애


어느새 약수터 앞, 만병통치 신비의 약이라도 되는 양 어떤 이는 한 바가지를 받아 단숨에  벌컥 벌컥 들이킨다. 나도 기둥에 걸려 있는 파란 바가지로 물을 받아 몇 모금 삼켜본다.  기분 때문일까 눈이 밝아진 듯 시야가 맑다. 쉼 없이 흘러넘치는 맑은 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림 3 ⓒ 김정애


오늘은 동행하는 이 없이 유유자적하며 혼자 오르니 예전에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물 속 모래에 묻혀 글씨 전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안내판에 숙종 26년에 김수항이 썼다고 되어 있는 ‘고산앙지(高山仰止)’글자가 있다. 혹자는 그의 형인 김수증이 썼다고도 한다.

▲ 그림 2 ⓒ 김정애


누구의 글이면 어떠한가 내겐 그 의미가 더 중요하거늘 ‘고산앙지’란 말은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이라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누군가에게 우러름의 대상이 되어 후세까지 이름을 남긴 이라면 인간세상으로 여행을 왔다 간 족적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 물 속 모래에 묻혀 일부만이 보이는 '고산앙지' ⓒ 김정애


그 대상이었던 정암 조광조, 그의 치적을 숙제로 안고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 해 겨울 얼음장 밑에서 투명한 알몸으로 헤엄을 치던 송사리 떼가 생각나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손으로 떠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한 계곡물, 가을바람에 때 이른 낙엽이 물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 파문을 일으킨다.

그 밑으로 떼를 지어 노니는 송사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조심조심 돌을 옮겨 밟다가 그만 이끼 낀 돌에 미끄러져 물속으로 첨벙! 행여 누가 볼 새라 허겁지겁 일어서려다가 한 번 더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뭔가를 얻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더니 송사리에게 모델료를 톡톡히 치룬 격이 되었다.

물에 빠지는 소리에 놀란 물고기들이 화생방 훈련을 하듯 한 마리도 없이 모두 바위틈으로 숨어 버렸다. 펑 젖어 물이 주르르 흐르는 옷, 그러나 이대로 그냥 갈 수가 없다는 오기가 발동 다시 나오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잠시 후 주위가 평온해지자 바위틈에서 한 마리 두 마리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옳지~  조금만 더 가까이오너라~",  드디어  '찰칵'!
                                             

▲ 비싼 모델료를 지불한 송사리 ⓒ 김정애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등은 돌에 긁혀 피가 흐르고 엉덩이는 아팠지만 만선을 몰고 오는 어부처럼 가을을 즐기고 돌아오는 마음은 넉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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