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아름다운 사랑의 신화가 되다
강남 신사동 '예화랑'에서 '김원숙전' 10월25일까지
▲ 강남 인사동 예화랑 입구에 게시물과 전시안내 홍보물. 아래 그림 '보름달 나무(Full Moon Tree)' 복합매체 2007 ⓒ 김형순
사랑을 주제로 한 김원숙(54) 근작전이 강남 신사동 예화랑에서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외국에도 팬이 많은 재미작가로 평범한 일상에 건져낸 시와 동화 같은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는 홍대 미대를 다니다 1972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1995년 유엔에서 '올해의 예술가'로 선정되었고 해외에서 30여회 전시되면서 '세계적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 명성에 걸맞게 2002년 뉴욕 혹스출판사(Hawks Publishing)에서 276쪽 고급컬러도록도 나왔다.
음악, 동화가 넘친 어린 시절
▲ '하늘 나는 두 사람(Two Fliers)' 캔버스에 유화 76×102cm 2007. 작가가 어린 시절 들은 동화 속 판타지를 그린 것 같다. ⓒ 김형순
작가는 어린 시절 언론인이었던 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나 할머니가 풀어놓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그는 읽기와 쓰기를 좋아했고 동화적 분위기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성가대 지휘자로,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로, 형제자매 중엔 음악전공자도 있고, 가족들이 이렇게 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에는 리듬감과 운동감이 넘치고 음악이 마치 물결과 바람결에 맞춰 출렁이고 있는 것 같다.
작가에게 가장 영향을 준 분은 단연 그의 아버지, 이번 전에도 오셔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작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다고 이 화랑 큐레이터 백운아씨는 전한다. 그리고 2남6여 자식들을 외국에 일찍 보내어 공부시킨 개방개혁파셨단다.
서정시적 감성
▲ '내 꽃병에 봄(Spring on my vase)' 복합매체 170×222cm 2005. 시적 품격과 정서적 충일함이 그림에 그득 넘친다. ⓒ 김형순
'내 꽃병에 봄'처럼 그의 그림은 회화적 요소와 함께 음악적, 문학적 요소가 넘친다. 그래서 그림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시나 음악이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을 받는다.
미술평론가 송미숙은 이렇게 평했다.
"김원숙의 그림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특징은 서정시적 감성이다. 그의 화폭은 거창한 수식어가 가미되지 않은 그러나 잊혀진 기억과 상념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조용히 환기시키는 하나의 시와 같다."
또한 눈에 띄지 않게 여성주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위 주인공도 연약해보이긴 해도 뭔가 여성 특유의 참고 인내하는 강인함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아이로니컬하게 보여준다. 시인 문정희는 "대지모의 당당함과 성소녀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라고도 했다.
남녀의 애틋한 사랑
▲ '2월은 대체 몇 살인가?(How old is February anyway?)' 캔버스에 유화 147×116cm 2007. 이렇게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가는 드물 것이다. ⓒ 김형순
그의 근작에는 물이 흐르고, 학과 물고기가 놀고, 꽃잎이 흩어지고, 바람이 불고, 달이 훤하게 떠있고 그리고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발가벗은 남녀가 많다. 그 누드는 사랑의 순수성을 말하리라. 그 순수한 모습은 아스라한 향기가 나도록 눈부시고 아름답다.
애절한 표정과 따사로운 손길로 서로를 감싸고 있는 연인의 모습은 정말 황홀하다. 작가는 일상적 삶을 근간으로 하면서 거기다 신화적이고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그림이 할 수 있는 창작의 영역을 넓혔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관객들은 작가와 대화라도 나누듯 그림 앞에 오래 서있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쉽게 공감하는 모양이다. 이런 세계는 여성들은 더욱 그렇다. 거기에 자신들의 삶을 비쳐보며 때론 위로받고 대리만족 내지 통쾌함마저 느끼는 모양이다.
그림을 보면 일상이 보이고
▲ '레드 코이(Red Koi)' 캔버스에 유화 102×76cm 2007. 속삭이기도 하고 흐느끼기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의 그림으로 최근 작가의 행복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 김형순
작가는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불행하면 불행한 대로 자신의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감동을 준다. 어떤 때는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잠자리 풍경까지 거침없이 노출시킨다. 그렇게 그는 그림을 통해 작가의 일상을 내비친다.
요즘 주로 사랑에 겨워 눈부시도록 찬란하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연인을 그린다. 작가의 삶이 확연히 밝아졌고 행복에 겨운 황혼기를 맞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 가파른 절벽위에서 잠을 자는 여자나 강위에서 밧줄 타며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는 여자는 사라진다.
위 작품도 역시 몸을 던져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정겨움과 애틋함을 보인다. 간절하다 못해 애잔해 보인다. 이런 감정의 따뜻한 선모(腺毛, 물질을 분비하는 성질이 있는 식물체표면의 털)는 우리의 이성도 무장해제 시킨다고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언급한 적이 있다.
그의 그림은 이렇게 현실을 반영하되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이에 함몰되지 않는 창의성을 발휘한다.
수성(水性)이 강한 경향
▲ '나는 물고기(Flying Fish)' 캔버스에 복합매체 91×61cm 2006. 물결, 출렁임, 물고기와 사람의 하나 되는 수성이 강한 작품이다. 먹선을 유화와 같이 사용하여 독특한 멋을 낸다. ⓒ 김형순
또한 그의 특징 중 하나는 수성(水性, 물 이미지)이 강하다는 점이다. 태어나자마자 1년 후 서울로 이사했지만 부산출생이고 물이 그의 그림의 자궁이나 되는 듯 그렇게 강이나 바다의 출렁임과 번뜩임, 물기가 유유히 흐르는 이미지가 그림 전반에 깔려있다.
그가 미국에 살 때 위험지역 표시가 된 곳도 겁 없이 수영도 하고 다이빙을 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위 작품도 역시 그런 분위기다. 물고기와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춤추는 세상을 그렸는데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의 세상도 연상케 된다.
작가는 잠시 남편이 아파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면모를 가까이 본 큐레이터 백운아씨는 "그는 대가답게 누구에게나 편하게 대해주고 친절하고 유머가 번뜩이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공감하는 인간적 매력이 넘친다"고 전한다. 작가의 성품도 물을 닮은 모양이다.
▲ '등대(La Lanterna)' 캔버스에 유화 117×137cm 2007. 현실을 신화로 만드는 그의 탁월함에 우리는 놀란다. ⓒ 김형순
일상이 새로운 신화 되다
이번 전에는 유난히 정겹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많은 건 그의 일상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엄격한 기독교와 유교문화를 받은 그 나이의 한국여자로서 어려웠지만 갈등이 있었던 20년간의 결혼을 뒤로하고 2003년 새 가정을 꾸몄다.
이제 그간 마음의 갈등도 완전히 접고 작업실에서 수도자처럼 그림에만 전념하고 있다. 작가는 뉴욕생활도 그만두고 최근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로 이사가 거기에 작은 인공연못까지 만들어놓고 동화처럼 살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샘솟는 그만의 탁월한 은유와 상징, 유머와 아이러니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생기와 활력을 주며 관객의 사랑에 답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일상을 그림으로 바꿔나가며 날마다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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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 3호선 압구정역 5번 출구.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 현대고 맞은편 가로수길 15분 도보
관람시간: 월~금요일 9시~18시 토요일 9시~16시 일요일 휴관. 입장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