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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국화 옆에서

부천 자연생태박물관의 가을꽃 잔치

등록|2007.10.18 16:47 수정|2007.10.19 13:16

▲ 우리나라 지도 모형의 국화꽃 ⓒ 이현숙


17일, 모처럼 친구를 만나 국화전시회에 갔다. 가을을 보면서 이야기나 나누자고 갔는데, 여긴 완전히 꼬맹이들의 소풍 마당이었다. 국화꽃보다 화려한 원복에 아리따운 예쁜 얼굴들. 우리는 한동안 아이들을 어르며 아이들 틈에 끼어 어쩔 줄을 몰랐다.

▲ 자연생태박물관에는 입장하려는 아이들로 어디나 붐빈다. ⓒ 이현숙


부천 자연생태박물관 앞 사계절 정원에는 1만 5천 점의 국화가 수많은 꽃송이로 수를 놓았다. 노랑, 자주, 빨강 등 아름다운 색상이 총동원 되었고, 우리나라 지도, 별 모양, 나비 모양 등 예쁜 모형들도 등장해 가을 정취를 물씬 풍겼다.

▲ 국화꽃 증명사진을 찍는 곳에는 아이들이 줄 서 기다린다. ⓒ 이현숙


▲ 이 나비는 연분홍 치마에 꽃자주 저고리를 입은 새색시 같다. ⓒ 이현숙


▲ 국화의 대표격인 노란 국화 ⓒ 이현숙


국화 하면 떠오르는 건 시골집 뒤란에 있던 기다란 꽃밭이다. 작은 꽃송이로 야무지게 피어 있던 소국. 실국화, 과꽃. 그때 우리 집엔 꽃이 아주 많았다. 앞마당가, 뒷마당가, 우물 둥지 꽃밭. 언니들은 할아버지 몰래 들국화를 파다가 뒤란에 심어 놓고 할아버지한테 혼날까봐 할아버지 기침 소리만 나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있곤 했다.

할아버지의 신조는 밖엣 것을 절대 안으로 들여와서는 안 되는 것. 아무리 예쁘게 핀 꽃이라고 해도 눈으로 봐야지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 꽃은 너 혼자 보라고 핀 게 아니란다. 여러 사람이 다 보라고 핀 꽃을 너만 보자고 가져 오면 되겠니? 안 되겠니?"

눈을 부라리고 엄포를 놓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정말 무서웠다. 그러니 예쁜 꽃을 보려고 들국화를 뿌리째 옮겨 심어 놓은 걸 아시는 날엔… 상상하고 싶지도 않건만 언니들은 어찌하여 그런 모험을 했는지. 그러나 할아버지께 발각돼 혼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무사히 넘어갔던 것 같다.

▲ 여기도 저기도 국화꽃과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국화를 보면서 가을을 느낄까? ⓒ 이현숙


▲ 아이들의 신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흥겨워진다. ⓒ 이현숙


국화향을 맡으며 꽃길을 걸어나가자, 뒤쪽으로 짚을 얹은 지게도 있고 허수아비도 있다. 기다란 구유에는 국화가 여러 송이 피어 있었다. 막 추수가 끝난 시골길을 걷는 기분으로 걸어나가 시골집으로 들어갔다. 대청마루에 앉아도 보고 댓돌 위에 서도 보고. 정말 옛 정취에 한껏 젖어보았다.

▲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전화를 받는 친구. 꼭 옛날 내 시골집에 놀러온 것 같은 느낌이다. ⓒ 이현숙


동행한 친구는 중학교 동창. 마침 전화를 받느라 툇마루에 앉은 친구를 보고 사진기를 들었다. 렌즈로 친구의 얼굴을 보니 참 세월의 무게가 저절로 느껴진다. 친구는 옛날 우리 시골집에 갔던 기억을 풀어놓으며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이야기한다.

▲ 지금은 귀해진 목화나무. 예전에는 혼수를 위해 딸이 있는 집들은 거의 심었다. ⓒ 이현숙


▲ 목화꽃이 찬이슬을 피해 숨어 있었다. ⓒ 이현숙


천천히 걸어나오다가 목화밭을 발견했다. 내가 목화꽃이라고 하자, 친구는 목화를 알아맞힌 나를 신기해 하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설명해 주었다. 혼기를 앞둔 언니들을 위해 밭에 가득 목화를 심었었다고. 꽃이 피었다 지고 나면 그 자리에 목화송이가 달린다고.

할머니와 엄마의 두런두런 말씀하시는 소리. "시집갈 애들이 그득하니(언니 셋이 한꺼번에 혼기가 닥쳤었다) 올해는 목화를 심어야겠어요." 그런데 그해 가을 할머니는 목화밭에서 살다시피 하셨다. 다음해는 목화를 심지 않았다. 할머니가 너무 목화밭에 집착하시는 바람에 어머니 아버지가 심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것. 목화송이가 솜이 되기까지는 정말 일이 많다. 따서 말리고, 씨를 빼서 틀고 등등.

하지만 그때는 시집 보낼 딸이 있는 집은 무조건 목화를 심었다. 지금도 나는 나일론 이불보다는 목화 솜으로 만든 솜 이불이 좋다. 나일론 솜은 붕 뜨는데, 목화 솜은 몸을 가만히 감싸주기 때문이다. 가을, 이제 목화 솜이불이 그리운 계절이다.

▲ 풍성한 가을날 가을걷이 체험,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 이현숙


가을꽃의 대명사 국화전시회에는 가을걷이 한마당 행사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짚풀이나 수수깡 공예 등 체험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10월 31일까지. 이 가을 국화 옆에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면서 가을을 좀 더 진하게 느껴보고 싶지 않으세요?
덧붙이는 글 장소 : 부천시 춘의동 자연생태박물관 / 교통 : 1호선 부천 역곡역(북부역) - 생태공원행 마을버스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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