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뱃노래 부르는 네 살배기 아들

등록|2007.10.19 10:30 수정|2007.10.19 10:34
조금 오래된 이야기네요. 신혼여행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뉴질랜드와 호주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두 번째 날 저녁이었습니다. 저녁 먹으러 갔을 때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원주민들이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무대 밑에서 식사를 하는 곳이었어요.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라 같이 온 사람들끼리 모여 앉다보니 대부분의 식탁이 국적별로 나뉘어졌습니다.
마오리족 사람들이 전통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습니다. 진행을 맡은 마오리족 사내는 영어를 참 잘했습니다. 영어가 짧은 저도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많았으니 말입니다. 한참 흥이 오르자 나라별로 무언가 하자고 말했습니다. 얼핏 들으니 대표자를 뽑으려고 하는 듯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쪽 독일 사람들이 앉은 곳에서 한사람을 불러냅니다.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자주 걸려왔기 때문입니다. 아뿔사! 오히려 더 눈길을 끌었나 봅니다. 마오리족 사내가 저에게 손짓을 합니다.

무대에 오르니 앞이 캄캄했어요. 처음엔 민요를 부르는 것인줄 알았는데 나라별로 민속춤을 보여주는 것이더군요. 노래는 마오리족 사내가 불렀습니다. 늘 그래왔는지 나라만 알려주면 그 나라 민요를 척척 부릅니다. 독일과 영국 미국 같은 나라 사람들은 정말 흥겨운 민요와 춤을 가졌더군요. 무대위로 올라온 사람뿐 아니라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흥겹게 손을 잡고 춤을 추었어요.

드디어 내 차례.

"Are you Korean(당신 한국인입니까)?"
"Yes(네)…."

마오리족 사내는 아리랑을 제법 잘 불렀습니다.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무슨 춤을 출 수 있었을까요? 그냥 어깨나 들썩이다 내려왔습니다. 얼굴에 불이 나는 줄 알았어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 하나 없더군요. 대학 때 탈춤을 배우려고 하다가 그만 둔 것을 많이 후회했어요. 이럴 때 한국 사람이 이런 춤을 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아내에게 우쭐댈 수도 있었을 테고.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땐 정말 아찔했습니다. 어찌되었든 그 후로 우리 민요를 불러보기로 했습니다. 춤도 배울 수 있다면 더욱 좋을 듯 하지만 어려울 듯해서 미루고. 지금도 운전할 때 자주 민요를 듣습니다. 얼마 전 노래방에서 민요를 불렀더니 다들 놀라더군요. 잘 불러서가 아니라 민요 부르는 사람 보기 힘드니까 놀랐다는 거지요.

신혼 여행의 결실인 아들이 있습니다. 이제 4살인데 지난 주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흘러나오는 뱃노래를 따라하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귀엽던지.

“어기야 디어차 어기야 디어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것 알고는 더욱 더 열심히 따라합니다. 역시나 여러 번 되풀이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적어도 우리 아들은 민요 한자락 멋지게 부를 수 있었으면 생각해서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자주 들려주었던 노래가 바로 뱃노래거든요. 며칠 전에 한복을 샀습니다. 아들이 입은 모습이 귀여워 저도 하나 사볼까 생각 중입니다.

우리 아들새로 산 한복을 입고 ⓒ 박영호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