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 싱싱한 책 한 권 낚으셨나요?
<책 사냥꾼: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존 백스터의 책 수집 이야기①
▲ <책사냥꾼> ⓒ 동녘
그는 어릴 적에는 두둑한 잡지를 채우곤 했던 공상 과학 이야기를 좋아하며 책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서른 해 인생을 넘어서던 때인 1969년 런던에 간 이후 지금껏 유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 런던 인근에서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의 아동도서 희귀본 한 권을 우연찮게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책 수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실 어느 책이 ‘의미 있는’ 책이냐 하는 것은 오로지 존 자신이 결정할 뿐이고 아무도 그런 존을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존은 단지 책을 사랑할 뿐이었습니다. 저자는 그런 자신을 책 중독자라 불렀고, 자기가 하고 다니는 그 집요한 행동을 일컬어 ‘사냥’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혹시 오늘 좋은 책 한 권 낚으셨나요, 싱싱하던가요?)
그래서 존은 정말 쉬지도 않고 수다를 떱니다. 그는 책을 ‘사냥’하러 다니며 겪은 갖가지 얘기를 책 수집 얘기 곳곳에 참 많이도 집어넣어 말을 부풀리고 또 부풀립니다. 어떤 때는 책 얘기를 하는 건지 여행 얘기를 하는 건지 사람 얘기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존 얘기를 듣다보면 결국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존은 참 책을 좋아하는구나. 이번에는 책 수집하러 어디를 다녀 온 거지? 가만, 나도 한 번 떠나 봐?!’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책 수집가라는 삶을 살고 있는 존은 어릴 적에 각종 책을 수도 없이 읽다가 결국 지금처럼 전문적인 책 수집가가 되었습니다. 10살도 채 안 되는 예닐곱 살 때에 동네 가까운 곳에 있던 철도도서관에 날마다 ‘출근’하여 A부터 시작하여 차례차례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도서관 사서들이 어느 날부터는 어린 단골고객이 반납한 책을 한 장 한 장 살펴보곤 했답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녀석이 책이란 책은 다 빌려가 귀한 책 모퉁이 한 쪽이라도 찢진 않았을지 걱정스러웠던 거죠.
어릴적부터 우직하리만치 책에 매달렸던 존은 "20대 초반까지 내 인생은 공상과학과 책 수집, 철도원이라는 직업, 세 가지로 꽉 차 있었다"(<책 사냥꾼>, 108쪽)고 말합니다. 그런 시기를 지나 30대 이후 유럽에서 살며 본격적인 책 '사냥'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처음으로 잠시 돌아가볼게요. 조금 우스꽝스런 일화를 가진 존은 11살이던 1951년 처음으로 책 한 권을 수집하게 되었는데, 이 때 처음 수집한 책이 <루퍼트 브루크의 시선집>이란 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책 수집가로 살고 싶을 만큼 짜릿한 경험을 하게 해 준 책은 바로 앞서 얘기했던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의 아동도서 희귀본이었는데 그 책 제목은 <작은 말이 끄는 마차>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이 책 외에도 그린이 지은 책 몇 권을 더 수집한 존은 이미 구입한 그린의 책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게 되었고 그것이 곧 그를 책 수집가의 길로 깊히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존이 하는 얘기를 듣다보니, 저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어릴 적에 무언가를 집요하게 관찰하거나 모았던 추억들을 갖고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손쉽게 수집생활을 시작하는 우표 수집이 그 중 한 가지이고, 어떤 분들은 연예인 사진을 모으면서 구하기 힘든 사진일수록 더 애착을 갖고 '사냥'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니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연예계 전문가가 되었을런지도 모르고 우표 수집에 매달리다가 우체국 직원이 되었다거나 전문여행가가 되었을런지도 모르죠. 그러고보면, 우리는 흔히 멋모르고 시작한 순수한 집요함에서 시작하여 삶에 대한 애착을 갖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지금 당신은 어릴 적 강한 집착을 보이던 그 꿈을 현실에서 이루어 '꿈은 이루어진다'를 경험하셨나요? 괜히 궁금하네요.) 존은 책 한 권이 지닌 물리적 무게를 넘어 책 수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주변 이야기들을 수집하려는 책에 모두 얹음으로써 책 자체 무게보다 더 ‘무거운’ 책 그러니까 진짜 값 나가는 책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어 보입니다. 책을 수집하러 다니는 과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홀가분하다싶을 정도로 자유롭고 또 재밌습니다.
물론 저자 혼자 신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저는 가끔 아니 자주 따분할 때도 많지만 순간순간 터뜨리는 재치 있는 반전에 맛이 들려 저도 모르게 계속 읽었습니다. 사실,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그의 수다를 참아낸 것이죠. 그렇게 이 책을 쭉 읽다가 순간 저자에게 말 한마디 없이 저는 결정했습니다, 저자의 수다는 그것대로 듣고 저는 저대로 수다를 떨기로 말이죠.
존이 책 수집 얘기를 하는 걸 듣다보면 그는 어떤 경우에는 책 얘기는 저만치 제쳐두고 힐끗힐끗 주변을 구경하며 곁길로 빠져들곤 합니다. 책 수집하러 가는 길에서 생긴 다른 사건으로 말꼬리가 꺾이곤 하죠.
사실 존은 책을 수집하러 다니면서 동시에 사람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어릴적부터 책을 통해 지구 너머 별천지를 상상하기도 했고, 생계형 직업으로 선택한 철도원 생활에 그대로 눌러앉는다고 느낀 순간 미련없이 철도원 생활을 접고 오직 책과 더불어 살며 책을 통해 만나는 세상 곳곳을 찾아가 보리라 결심했으니까요.
저자가 말하는 주변인물, 책, 사건들 중에는 그것대로 따로 관심을 가져볼만한 내용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저자가 툭하면 곁길로 빠질 때마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대상들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겠다고. 곁길로 자주 빠지는 저자 시선을 따라가다 의의로 흥미로운 대상을 발견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살려볼 참입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존 길레스피 매기 주니어가 지은 <고공비행>이라는 시입니다. 이것도 저자가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 곁가지 같은 얘기인데 저자는 이 시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을 이 책에 소개했습니다. 저도 그 부분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 시 원문도 찾아보았답니다. 존이 책에 소개한 이 시 일부분-'And, while with silent'로 시작하는 시 후반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고요하고 환한 마음으로 나는저 높이 정결하고 신성한 우주에내 손을 뻗어 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리.(<책 사냥꾼: 어느 책중독자의 수다>, 71쪽에서 재인용; <고공비행>의 일부분)
이쯤에서 저자인 존 만큼이나 수다를 떠는 이유를 설명해야겠네요. 존이 찾아다닌 건 책 뿐이 아니었습니다. 존 역시 책 본문 첫 마디부터 책을 수집하는 자신이 무엇을 찾아 다녔고 어떤 것을 삶에 담았는지에 관한 얘기를 넌지시 표현했습니다. 잠시 들어보실래요?
“수집가는 정작 수집 대상의 중요성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수집 대상을 찾으러 다니면서 느끼는 흥분, 수집하다가 들른 낯선 장소가 훨씬 가치가 있다.”
<같은 책, 13쪽에서 재인용; 데이비드 로의 <어느 책장수의 생애>에 그레이엄 그린이 쓴 서문에서>
존이 한 말은 아니지만-위 인용문은 이 책 본문 첫 장 첫 줄에 나옵니다- 수집가에 대한 그레이엄 그린의 표현을 통해 존이 책 이야기 못지 않게 이런저런 '수다'를 참 많이 하겠다는 걸 조금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존은 책 내내 엉뚱하다 싶을 만큼 책 수집 과정에서 겪은 주변 이야기들을 더 많이 하기도 했거든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겠죠. “여러분, 저처럼 해 보세요. 여러분도 알게 될 거예요. 손에 넣고 싶은 책을 마음에 그리며 떠나는 긴장된 여행이 얼마나 짜릿한 경험인지를.”
그런데, 정말 존처럼 다른 사람들도 책 수집에 그런 열정과 희열을 느낄까요? 뭐, 그 정도는 아니어도 책 냄새를 향기롭다고 말할 수 있다면 존도 어느 정도 만족할 겁니다. 아, 도서관 사서들은 빼놓고요. 존이 그러더군요. “푸줏간 주인이 양고기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대부분의 사서들은 책을 싫어한다”(같은 책, 62쪽)고 말이죠.
그리고 존은 공공도서관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는데요, “수집가들은 공립 도서관이라고 하면 질색을 한다. 그 곳은 훌륭한 책들의 무덤과 같은 곳”(같은 책, 60쪽)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왜냐면, 공공도서관에서는 존 같은 책 ‘사냥꾼’들이 좋은 ‘사냥감’을 낚아채기 전에 이미 그 좋은 ‘사냥감’에다 각종 풀칠을 해대고 지워지지도 않는 시퍼런 도장을 찍어대고 때로는 ‘가죽’도 다 벗겨버린다고 말이죠. 그래서 책 수집가들은 치를 떨 만큼 공공도서관과 사서들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진짜 책 수집가라고 인정할만하죠? 존이 자신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모름지기 책 수집가는 정말 이런 면이 있겠다싶기도 합니다.
말이 좀 길었나요? 존의 수다를 닮아가네요. 정리를 하긴 해야겠는데, 조금 긴 글을 한 번 더 소개하고 싶은데 이를 어쩌죠? 제 말이 아니고 존이 한 말이니 이해해주세요. 주절주절 늘어놓는 존의 수다 사이에서 발견한 그의 진짜 속마음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잘 들어보시고 ‘나와 책은 어떤 관계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그 생각을 하고 계시는 사이에 존은 아마도 계속 수다를 떨거나 어느 순간 지금처럼 속마음을 내비치겠죠.
“나에게 서점은 낚시꾼에게 강물과도 같은 존재인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흐르는 물에 이르는 길을 찾게 될 것이라고. 멜빌이 <모비 딕>에 쓴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커다란 벼룩시장은 삼각주와 같아서, 수많은 수로로 여러 책들이 느릿느릿 흘러오면 수집가들이 냉큼 뛰어들어 마음에 드는 책을 낚아챈다. 눈 깜짝할 새에 바뀌는 애시우드의 책이며 레코드는 솟구쳐 흐르는 강물 안에서 수백 마리 연어들이 뛰노는 여울을 연상시켰다. 그 밖에 서점들은 잔잔한 연못을 닮았다고나 할까. 교활하고 늙은 창꼬치가 차가운 연못 깊은 곳에 꼼짝 않고 잠복해 있듯이, 이런 곳에서는 책꽂이에 있는 책이 몇 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같은 책,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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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사냥꾼>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와 2부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1부는 고향 호주에서 유년기과 청년기(20대까지)를 보내며 책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이야기를, 2부는 유럽(영국, 프랑스 등)에 살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집가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서정보
<책 사냥꾼: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John Baxter. 서민아 옮김. 서울: 동녘, 2006.
(원서명) A Pound of paper: Confessions of a book addict
추가정보
1.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작은 말이 끄는 마차(The Little Horse Bus)>
2. 데이비드 로(David Low). <어느 책장수의 생애(With All Faul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