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싸게 사는 길' 여쭙는 님이시여
[사진책 도서관을 열고 3] 우리는 책을 왜 살까요
사람들이 묻는다. 책을 싸게 사는 길을. 인터넷으로 묻는다. 아니,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글을 남기며 묻는다. 인터넷새책방에 책소개 글을 띄워서 5만원짜리 상품권에 뽑히라는 둥, 여러 인터넷새책방을 두루 살피며 마일리지와 쿠폰을 어떻게 주는가를 살피라는 둥, 이런저런 도움말을 들려준다.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댓글을 남기면서.
어떤 책을 사고 싶기에 싸게 사고 싶을까. 자기가 바라는 책은 얼마짜리 책이기에 값싸게 사고 싶을까.
책을 싸게 사면 좋을까. 좋다면 무엇이 좋은가.
책을 싸게 사면 더 잘 읽을 수 있는가. 책을 싸게 사면, 그 책에 담긴 줄거리를 한껏 넉넉하게, 한결 속깊이 헤아리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책을 엮어내어 파는 책마을 사람들은 왜 쿠폰을 붙이는가. 인터넷새책방은 왜 마일리지를 쌓아 주는가. 이들은 왜 책소개 글을 띄워 주었다고 몇 만 원에 이르는 선물을 베풀까.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올려진 ‘묻기’ 글에 엉뚱한 댓글을 남기는 나.
“저는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책에 적힌 값대로만 책을 사기 때문에 책을 싸게 사는 길은 모르겠네요. 님께서는 책을 싸게 사는 길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보다, 그 책을 살 수 있도록 알바를 하시는 편이 좀더 슬기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분들 가운데 절반 조금 웃돌 만큼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헌책방에서 책을 값싸게 사는 이들이, ‘자기가 헌책방에서 사서 읽은 책’을 헌책방에 되팔려 할 때에는 무척 아까워한다. ‘2000원 주고 산 책’이라면, 이 책을 헌책방에 되팔 때 얼마쯤 받을 수 있을까? 얼마쯤 받아야 알맞을까?
헌책방에서 책을 사며 ‘책값이 싸서 좋다’면, 자기로서는 참으로 자기 마음밭을 추스르거나 가꾸는 데에는 썩 좋은 책까지는 안 찾는다는 소리인가. 책을 살 때 헤아리는 첫 번째 잣대는 그저 ‘싼 책값’ 때문인가. 그래서 자기 마음이며 머리며 몸뚱아리며 아름답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고 해도, ‘비싼 책값’이면 도리질을 칠 생각인가. 그러면, 얼마쯤 되는 책값이 싼 편이며, 얼마쯤 되는 책값이 비싼 편일까.
자기가 읽고픈 책을 한 권 장만하고자, 부지런히 일해서, 땀흘리며 일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는 없을까. 갖고는 싶은데 돈이 없는 터라 슬그머니 도둑질을 해서라도 갖고 싶은가. 갖고는 싶고 도둑질하기도 싫어서, 그 책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 빌린 다음, ‘어, 잃어버렸는데?’하면서 안 돌려주고 자기 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느끼는 ‘책을 싸게 사는’ 가장 좋은 길이 있다면,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찾아가서 두 다리가 아프도록 서서 읽는 길이 하나 있다. 다음으로는, 내 다른 씀씀이를 모두 줄이면서, 이를테면 머리를 머리집에 가서 깎지 않고 내 손으로 가위질해서 깎는다든지. 옷을 더는 사지 않고 바느질로 기워서 입는다든지. 또는 이웃사람한테 헌옷을 물려받거나 얻어서 입는다든지. 자가용은 아예 타지도 말고, 대중교통조차도 웬만하면 타지 말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든가 자전거로 다닌다든지. 밥을 밖에서 사먹지 말고 도시락을 챙겨서 먹는다든지. 과자부스러기 군것질을 하지 만다든지. 찻집에서 차를 사 마시지 말고 보온병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 걸상에 앉아서 마신다든지. 비싼 술집에서 술 마시지 말고 가게에서 술을 사서 집에서 마신다든지. 노래방에 가지 말고 집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뜯는다든지. 이러저러하게 돈씀씀이를 줄이고 아낀 돈으로 책을 사는 길, 이 길만큼 ‘책을 싸게 사는’ 좋은 길은 없다고 느낀다.
뭐, 생각해 보면, 책을 꼭 우리 집 책시렁에 꽂아 놓아야만 하지는 않아. 마음에 담아야 책이 아닐까. 머리에 새겨야 책이 아닐까. 내 두 손에, 내 두 다리에, 내 발바닥에 콱 박혀야 책이 아닐까. 내가 품는 생각에, 내가 움직이는 몸뚱이에, 내 모든 몸짓에 하나로 녹아들어야 책이 아닐까.
책에 담기는 지식 가운데 잊어버리는 것이 있으면 어떠랴. 다시 들춰보지 못하면 어떠랴. 그러면 자그마한 공책을 늘 들고 다니면서, 이 공책에 ‘자기가 읽은 책에서 마음에 와닿은 대목’을 가지런하게 옮겨 적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내 나름대로 반갑다고 생각하는 글귀를 모은 내 책’을 새롭게 엮으면 된다.
내가 인천 배다리 한쪽 귀퉁이 자그마한 자리에 연 도서관에는 내 나름대로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 온 책을 그러모아 놓았다. 이곳을 찾아오는 분 가운데 “여기에 책이 몇 권이나 있어요?”하고 묻는 분이 으레 있고, 이렇게 묻는 분한테 으레 “책 권수가 그렇게 중요하나요? 그냥 읽고픈 책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읽으시고, 이 책 저 책 죽 둘러보며 반가운 책을 찾아보셔요”하고 대꾸한다.
그러다가 그끄제쯤, 이런 생각 하나가 났다.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 권수를 묻는 분이 있으면, “음, 날마다 꼬박꼬박 세 권씩 읽을 때, 당신께서 서른 해 동안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 있습니다”하고 대꾸해 볼까 하는.
어떤 책을 사고 싶기에 싸게 사고 싶을까. 자기가 바라는 책은 얼마짜리 책이기에 값싸게 사고 싶을까.
책을 싸게 사면 더 잘 읽을 수 있는가. 책을 싸게 사면, 그 책에 담긴 줄거리를 한껏 넉넉하게, 한결 속깊이 헤아리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책을 엮어내어 파는 책마을 사람들은 왜 쿠폰을 붙이는가. 인터넷새책방은 왜 마일리지를 쌓아 주는가. 이들은 왜 책소개 글을 띄워 주었다고 몇 만 원에 이르는 선물을 베풀까.
▲ 사진에 가려 놓은 책일부러 사진판에 책을 가려 놓는다. 책만 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 최종규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올려진 ‘묻기’ 글에 엉뚱한 댓글을 남기는 나.
“저는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책에 적힌 값대로만 책을 사기 때문에 책을 싸게 사는 길은 모르겠네요. 님께서는 책을 싸게 사는 길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보다, 그 책을 살 수 있도록 알바를 하시는 편이 좀더 슬기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분들 가운데 절반 조금 웃돌 만큼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헌책방에서 책을 값싸게 사는 이들이, ‘자기가 헌책방에서 사서 읽은 책’을 헌책방에 되팔려 할 때에는 무척 아까워한다. ‘2000원 주고 산 책’이라면, 이 책을 헌책방에 되팔 때 얼마쯤 받을 수 있을까? 얼마쯤 받아야 알맞을까?
헌책방에서 책을 사며 ‘책값이 싸서 좋다’면, 자기로서는 참으로 자기 마음밭을 추스르거나 가꾸는 데에는 썩 좋은 책까지는 안 찾는다는 소리인가. 책을 살 때 헤아리는 첫 번째 잣대는 그저 ‘싼 책값’ 때문인가. 그래서 자기 마음이며 머리며 몸뚱아리며 아름답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고 해도, ‘비싼 책값’이면 도리질을 칠 생각인가. 그러면, 얼마쯤 되는 책값이 싼 편이며, 얼마쯤 되는 책값이 비싼 편일까.
자기가 읽고픈 책을 한 권 장만하고자, 부지런히 일해서, 땀흘리며 일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는 없을까. 갖고는 싶은데 돈이 없는 터라 슬그머니 도둑질을 해서라도 갖고 싶은가. 갖고는 싶고 도둑질하기도 싫어서, 그 책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 빌린 다음, ‘어, 잃어버렸는데?’하면서 안 돌려주고 자기 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느끼는 ‘책을 싸게 사는’ 가장 좋은 길이 있다면,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찾아가서 두 다리가 아프도록 서서 읽는 길이 하나 있다. 다음으로는, 내 다른 씀씀이를 모두 줄이면서, 이를테면 머리를 머리집에 가서 깎지 않고 내 손으로 가위질해서 깎는다든지. 옷을 더는 사지 않고 바느질로 기워서 입는다든지. 또는 이웃사람한테 헌옷을 물려받거나 얻어서 입는다든지. 자가용은 아예 타지도 말고, 대중교통조차도 웬만하면 타지 말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든가 자전거로 다닌다든지. 밥을 밖에서 사먹지 말고 도시락을 챙겨서 먹는다든지. 과자부스러기 군것질을 하지 만다든지. 찻집에서 차를 사 마시지 말고 보온병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 걸상에 앉아서 마신다든지. 비싼 술집에서 술 마시지 말고 가게에서 술을 사서 집에서 마신다든지. 노래방에 가지 말고 집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뜯는다든지. 이러저러하게 돈씀씀이를 줄이고 아낀 돈으로 책을 사는 길, 이 길만큼 ‘책을 싸게 사는’ 좋은 길은 없다고 느낀다.
뭐, 생각해 보면, 책을 꼭 우리 집 책시렁에 꽂아 놓아야만 하지는 않아. 마음에 담아야 책이 아닐까. 머리에 새겨야 책이 아닐까. 내 두 손에, 내 두 다리에, 내 발바닥에 콱 박혀야 책이 아닐까. 내가 품는 생각에, 내가 움직이는 몸뚱이에, 내 모든 몸짓에 하나로 녹아들어야 책이 아닐까.
책에 담기는 지식 가운데 잊어버리는 것이 있으면 어떠랴. 다시 들춰보지 못하면 어떠랴. 그러면 자그마한 공책을 늘 들고 다니면서, 이 공책에 ‘자기가 읽은 책에서 마음에 와닿은 대목’을 가지런하게 옮겨 적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내 나름대로 반갑다고 생각하는 글귀를 모은 내 책’을 새롭게 엮으면 된다.
▲ 어떤 책을 알아볼까내 나름대로 찾아 놓으며 읽은 '책을 말하는 책'들. 요즈음 들어 책을 말하는 책이 부쩍 쏟아지는데, 이 책들은 무슨 책을 말하려고 그렇게들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 최종규
내가 인천 배다리 한쪽 귀퉁이 자그마한 자리에 연 도서관에는 내 나름대로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 온 책을 그러모아 놓았다. 이곳을 찾아오는 분 가운데 “여기에 책이 몇 권이나 있어요?”하고 묻는 분이 으레 있고, 이렇게 묻는 분한테 으레 “책 권수가 그렇게 중요하나요? 그냥 읽고픈 책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읽으시고, 이 책 저 책 죽 둘러보며 반가운 책을 찾아보셔요”하고 대꾸한다.
그러다가 그끄제쯤, 이런 생각 하나가 났다.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 권수를 묻는 분이 있으면, “음, 날마다 꼬박꼬박 세 권씩 읽을 때, 당신께서 서른 해 동안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 있습니다”하고 대꾸해 볼까 하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 지킴이가 띄웁니다.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있으며, 금-토-일에만 열어 놓습니다. 찾아와서 책을 읽는 값은 따로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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