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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사회복무제는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무다

등록|2007.10.20 11:41 수정|2007.10.20 11:45
노인과 장애인이 보호받고 어린 아이가 양육 받을 권리는 국민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자연적 인권인 양심의 자유에 속하기에 국가는 개인의 양심을 최대한 보장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교과서에는 의무와 권리는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그 사회는 건전하게 발전한다고 가르친다. 국가가 국방의 의무만 강요해서도 안 되지만 또한 국민도 권리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개개인은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서 권리의 일부를 국가에 양도하고 그것을 근거로 국방의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기 위해서 양심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도록 특별 약관으로 못을 박았다. 서구사회는 양자의 충돌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 법률과 제도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고 그 과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해서 모색된 제도가 사회복무제다.

시행결과는 사회복지의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소수의 양심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합의는 훌륭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적으로 검증된 사회복무제를 도입하면서도 대한민국 국방부는 당초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제외시켰다.

국방부는 언제부터인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앞에 언제나 '소위(所謂)' 라는 부사를 달았다. 소위는 우리말로 ‘이른바‘이다. 병역거부자 너희들만의 주장임을 누누이 강조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급심의 무죄판결도 나오고 최고 재판소에서도 무죄와 위헌의 소수의견도 나오면서 아예 용어 자체를 작명하기도 했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가 그것이다.

전세계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는 국제 통용어를 피부의 잔털만큼이나 많게 세분화하여 어휘수를 늘였다. 철학적 병역거부, 정치적 병역거부, 생명 존중적 병역거부, 하는 식으로 병역거부의 백화점이 되었다. 언어에도 경제적인 축약어가 대세인데도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병역 거부가 양심적이면 병역 이행은 비양심인가” 라는 말보다 군필자들의 한을 담아내는 구호는 없다. 이 한마디에 군필자는 집단 최면상태가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거친 폭언들을 내뱉는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가치가 전도된 주장이 덧붙여지면 대중의 얼굴은 튀어나온 핏줄로 일그러진다.

유식한지, 무식한지는 주장과 논리에 따라 가려지는 법인데, 무식해도 집단을 구성하면 유식해지는 법인데, 이 구호 앞에는 배운 이나 덜 배운 이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유무식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마법의 용어다. 국장감사장에서도 몇 몇 의원은 용어에 불만을 나타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 늦게나마 편입을 시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다행스럽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의 시간표가 2009년으로 너무 멀고 그 내용도 노비문서의 내용에 버금간다는 시민단체의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상황이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

신체검사에서 보충역 처분을 받게 되면 대략 20-26개월간 사회복무를 하게 되는데, 병역거부자는 본인이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군복무의 2배를 그것도 소록도의 한센병원이나 정신병원에서 합숙을 해야 한다. 군 보직 중 생명을 걸어야 하는 특수병과가 있듯이 사회복무에도 정신무장과 육체적인 강인함이 요구되는 간병과 계호업무는 감염의 위험뿐만 아니라 정신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난이도가 가장 높은 특수역무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부과될 역무가 이에 해당한다.

특수요원에게 처우와 대접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오랜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가정불화가 일어나서 집을 나가는 며느리도 있고 친자식들도 부모를 서로에게 밀어내는 현실을 보면 치매노인의 병수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지만, 그 혈연관계도 병수발 앞에는 무색해 진다. 이 역무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맡기면서 장기간을 요구하는 것은 발상 자체가 너무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돈독한 신앙심으로 뭉쳐져 있다고 해도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아닌가. 자칫 사명감과 열정이 식어져 소극적으로 복무를 하게 되면 그 차가운 손길은 노약자의 몫이 된다. 근본 취지는 퇴색되고 형식적인 복무만 남게 된다. ‘국방부 시계는 돈다’ 며 제대 날짜를 세는 군복무의 현실이 또 재현되어야 하겠는가.

이 역무를 부담하는 사회복무요원들에게 가외의 수당은 주지 못하더라도 복무 기간만큼은 대폭 줄여 주어야 한다. 힘든 곳에서 더 열심히 복무를 하는데 오히려 더 장기간 복무토록 하는 것은 국방부가 그렇게 주장해온 ‘형평성‘에도 반하는 것이다.

신앙적 사명감에다 투철한 봉사의 정신무장을 통해서 노약자를 비이기적으로 보살피게 될 터인데 끝까지 복무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기간 단축의 혜택을 동일하게 받도록 해야 한다. 18일 국방위의 국정감사에서도 검사출신의 모 의원은 병역거부에는 반대하지만, 이왕 사회복무에 편입을 시킨다면 군 복무의 2배는 무리라고 지적하였다.

그동안 국방부는 사회복무제를 허용하면 입영자원이 대거 악용을 하는 기피풍조로 병역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고  하면서 입영을 앞둔 청년을 비하해 왔다. 전혀 근거가 없다.

지난 10일과 11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맹형규 의원이 이틀간 병무청의 협조를 얻어 전국 만 19세 징병 검사자 1009명을 대상으로 국가관, 안보관, 병역의무에 대한 관점, 등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서 설문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외국 체류 시 전쟁이 발발하면 나라를 위해서 참전하겠는가?’ 63,4% 참전하겠다.
‘참전 안 함‘이라고 답한 18.9% 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국가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48.7%가 ‘그렇다’ ‘매우 그렇다’고 답해 ‘아니다’ ‘매우 아니다’라고 답한 14%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맹형규 의원은 “분단국가의 현실을 우리 젊은이들이 제대로 인식해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이러한 청년들의 건강한 애국심과 에너지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막연한 추측으로 그들을 매도하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계속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사회복무 반대 논리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행동이다.

60여년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내린 반이성적인 처우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이 정도의 사회복무제라면 60년 전에 시행을 했어도 악용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징역형 처벌을 받아온 상당수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징역형 보다 더 가혹하다고 체감을 하는데 어느 이기적인 병역기피자가 악용을 하겠는가?

복잡한 공론화 과정이나 여론무마를 위해서 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간단한 설문 하나면 족하다.

『군복무 18개월과 합숙하여 소록도 한센병원이나 치매노인 병수발 36개월 중 어느 쪽을 원하는가?』

살신성인 좌우명의 소유자가 아니면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 지원자가 있다고 가정을 했을 때, 양심을 판정할 가칭「판정심사위원회」에 회부할 필요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을 하여 복무기간을 채우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을 해 주는 것이다. 투입이 곧 판정심사의 시작이고 복무기한의 만료가 심사의 종료시점이다.

거창한 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사과정은 경험상, 또 다른 비리의 배양처가 될 수도 있다.
기자의 생각으로는 “가짜 양심이 사회복무로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도 쉽게 하는 것이 전문가 집단인데, 어째서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는 미로같이 어려운 길로만 갈려고 하는지... 그러니 해결의 의지가 있는지 조차도 의심을 받는 것이다.

더 이상 연구에 시간을 허비할 정도로 한가하지가 않다.
매일 2-3명이 병역거부로 범죄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35개국이 병역거부자를 활용하여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 그 자료를 취합하면 시행착오는 최소화 할 수 있다. 이미 지난 해 국방부는 대체복무연구위원회를 통해서 토의를 했고 또 병무청에서는 2006년 9월 5일 사회복무제를 도입한 독일 스위스 대만의 관계자를 초청하여 국제징병검사세미나도 개최한 바가 있다.

자료를 원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수감자 모임에 요청을 하면 최신의 내용을 담은 자료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10월 9일과 1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병무청장은 국방부의 이번 조치에 따른 후속조처를 약속했다. 정책입안에 관련된 공직자는 내 자녀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중이다는 심정으로 서둘러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반대자인 군 장성 출신의 모 의원도 하기로 했으면 당장 시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 안에서 가능한 모든 조처를 즉시 취해야 한다.
예를 들면, 병역거부자의 신청을 받아서 입영기일을 연기해 주고, 형 집행중인 수형자들은 가석방이나 형 집행을 정지하고 사회복무에 편입하여 형기를 실효케 하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장기간 사회복무는 정책은 국방부가 아직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사회복무제 허용을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독교 평화주의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삶의 방식임을 인정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병역 이행이 아니면 범죄 행위라고 낙인찍는 현제의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양심에 따른 행동 없이는 국가 사회는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 민주주의도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가 최선의 길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양심에 따른 행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는 소수를 인정하는 사회가 더 건전하고 더 큰 힘을 가질 것이 아닌가. 후속조처를 즉각 시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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