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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마촉지인? 지권인? 부처님 손 모양의 비밀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본 '불교 조각'의 매력

등록|2007.10.20 16:28 수정|2007.10.21 10:03

▲ 삼국시대인 6~7세기에는 반가사유상이 유행했다고 한다. 특히 신라의 반가사유상이 유명하다. ⓒ 손기영


지난 19일 오후 서울 이촌동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대학 교양과목의 중간고사  리포트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향한 발걸음이었다. 중학교 이후로 박물관을 가본
건 처음이었다.

주변에는 단체관람을 온 학생들이 많았다. 간간이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였지만, 나 같이 혼자 박물관을 찾은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여러 전시실이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불상을 전시한 '불교조각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 다른 종교에 눈을 돌릴 기회는 적었지만, 불교 조각의 아름다움은 또 다른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는 약사신앙이 널리퍼져, '약사불'이 유행했다. 약사불은 한 손에 동그란 약단지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손기영

입구에 들어서자 여느 전시실과 같이 '연대표'가 걸려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발걸음이 무심코 지나쳤겠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연대표 앞에서 나를 멈추게 했다. 꼼꼼히 내용을 살펴보았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흥미로운 사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삼국시대인 6~7세기에는 반가사유상이 유행되었고, 통일신라의 전성기인 8세기에는 약사불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또 통일신라의 국운이 쇠퇴해 고려시대로 넘어가려고 할 때는 비로나자불이 만들어졌고 삼국시대에 등장한 삼존불은 조선시대까지 크게 유행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흥미로웠지만, 곧 어려운 불교용어들이 압박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전시실에는 이를 친절하게 설명한 게시물들이 있었다.

우선 다리를 한 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의 잠긴 모습을 하고 있는 '반가사유상'은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샷다르타 대자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미륵'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또 '약사불'은 8세기 약사신앙에 기인하는 것으로, 모든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 고쳐주는 부처로써 '대의왕불'이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 손에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등장한 '비로자나불'은 부처의 진리가 태양의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치는 것을 형상화한 불상이라고 했다. 나라가 망해가는 시기 백성들의 마음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시대 따라 불상 유행도 변해...백성들의 간절한 마음 담겨 있어

마지막으로 삼존불은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세 개의 부처로 이루어진 불상이라고 했다. 과거불은 '연등불', 현재불은 '석가모니불', 미래불은 '미륵불'이며, 고려시대 삼존불은 다른 때와 달리 아미타불(서방에 있는 극락정토에 머물고 있는 부처)과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대별로 불상의 유행은 변화되고 있었다.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백성들이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불상 제작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불상은 그 시대의 민심을 담은 표상이었다.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불상은 '부처상(석가모니)'과 '보살상'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불교조각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불상들이 모두 같은 줄만 알았던 내겐 새로운 발견이었다.

▲ 삼존불은 삼국시대에 등장해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유행했으며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세 개의 부처로 이루어졌다. 사진은 고려의 삼존불. ⓒ 손기영


사찰에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부처상'은 2600년 전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진리탐구와 수행을 통해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다.

그리고 '보살상'은 부처를 따르고 아래로는 모든 백성들을 이끌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힘쓰는 사람을 나타낸 불상이라고 한다. 큼직하고 엄숙함이 느껴지는 부처상에는 남성스러움이, 곡선을 강조하고 8등신의 구조를 한 보살상에는 여성스러움이 느껴졌다.     

또 저마다의 불상들은 서로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불교에는 부처, 보살상의 다양한 손 모양을 '수인(手印)'이라고 부른다. 한 손은 땅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은 무릎에 얻은 모양(항마촉지인), 살짝 주먹 쥔 한 손에 검지를 집어 넣은 모양(지권인), 가지런히 편 두 손을 맞대고 있는 모양(선정인) 등등….

불상의 손 모양, 고유의 종교적 의미 나타내고 있어

왜 불상들은 저마다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전시관에 게시된 설명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불상의 손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나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열 손가락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표현한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중요해, 불상을 만들 때 함부로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부처님의 수인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 전시실에는 여러가지 수인을 한 불상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은 중생과 부처가 하나임을 뜻하는 '지권인'을 한 불상의 모습. ⓒ 손기영

전시실의 불상 중 '항마촉지인'과 '지권인'을 취하고 있는 불상이 많았다. 항마촉지인은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불상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수인으로 석가모니가 온갖 번뇌를 물리치고 도를 깨닫는 순간에 짓던 손동작이다.

또 지권인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시대 초기 불상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에서 볼 수 있는 수인이다. 이치와 지혜,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은 본래 하나라는 의미로 검지를 주먹 쥔 다른 손에 끼우는 형상을 한다.

이 밖에도 두 손의 손가락으로 동그란 원 모양을 그리는 전법륜인, 한 손을 위로 올리고 한 손은 아래로 내린 시무외인·여원인, 두 손을 모은 합장인, 아미타 구품인 등 다양한 수인을 한 불상을 볼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불교 조각실은 그리 넓진 않았지만 세 시간 남짓 전시실을 둘러보니 다리가 많이 아팠다. 어느새 수첩에는 불상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입가에 맴도는 뿌듯한 미소는 중간고사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는 부담감을 잊게 해주었다.

비록 불교 전시물을 지켜봤지만,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불상의 우아한 곡선과 부처의 인자한 표정을 보며 연신 터지던 감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감탄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종교의 벽을 넘어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한국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 각종 수인의 모습(위 그림은 학교 교양수업시간에 나눠준 프린트물을 사진으로 찍은 것임). ⓒ 손기영


선정인(禪定印)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에 수인으로, 왼쪽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놓아 그 위에 겹치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수인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가 마왕을 항복시키고 성도하신 뒤, 당신의 깨달음을 지신에게 증명해 보라고 말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수인으로 선정인에서 왼손을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양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가 성도하신 후 다섯 비구니에게 첫 설법을 하며 취한 수인으로, 시대에 다라 약간씩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다.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
시무외인은 중생에게 무외를 베풀어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덕을 보이는 수인으로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상이다. 여원인은 부처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고 손가락을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이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부처마다 두루 취하는 수인으로 통인이라고 하며, 부처상(입상)의 경우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속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부처의 수인으로 오른손으로 왼손의 둘 째 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오른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와 같은 수인은 중생과 부처가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다.   

합장인(合掌印)
보통 예배를 드리거나 제자와 문답할 때 취하는 수인으로, 두 손을 가슴 앞에 올리고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인도의 부조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방어산 마애삼존불의 오른쪽 협시보살상, 안압지 금동판보살좌상 등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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