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싱싱하게 낚은 책, 여전히 펄쩍펄쩍 뛰네요!

<책 사냥꾼: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존 백스터의 책 수집 이야기②

등록|2007.10.20 14:46 수정|2007.10.22 21:12

<책사냥꾼> ⓒ 동녘

책을 ‘사냥’하며 더불어 사람을 ‘낚는’ 사람, 존 백스터(John Baxter, 1939-).

혹시 존을 기다리고 계셨나요? 그 엄청난 수다를 듣고도? 존 백스터가 쏟아내는 그 엄청난 수다를 듣는 사람은 저 한 사람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왔습니다! 존 대신 제가 두 번째 수다를 떨기로 작정하고 이렇게 그의 책을 들고 다시 독자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어렵게 속내를 비친 존의 수다를 그래도 한 번 더 듣겠노라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신 분들께 한층 맛나는 수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실, 수다라는 게 뭐 서로 감정을 주고받아야 더 만족스러운 거 아닌가요?(잠깐,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제 수다는 다 존에게서 들은 것이니까요.)

“책 사냥을 비유로 들어 이야기하면, 런던에서 맥주는 비주류이지 주류가 아니었다. 아무리 멀리 혹은 아무리 빨리 여행을 한다 한들 주류는 주류고 비주류는 비주류이다.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익숙한 갈망이 내 안에 스멀스멀 찾아들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사고, 새로운 책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갈망이….”(<책 사냥꾼>, 222쪽)

제가 그랬죠, 존은 어찌 보면 책이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지도 모른다고요. 생각해보면 우리도 책을 통해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잖아요. 존도 결국 책을 통해 삶의 끈을 더 굵고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여행, 다들 꿈꾸지만 의외로 선뜻 해 보지 못하는 것 중 한 가지이지만, 적어도 책은 우리 상상력을 끊임없이 넓혀주고 또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꿈이 아닌 현실에 드디어 다다르니….

자, 혼자 상상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날 것 그대로 싱싱한 수다의 세계로 돌아가 보죠. 존이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저기 저 앞에서 존이 ‘낚시’ 강습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책 얘기를 하는 거죠. 모처럼 아주 의미심장한 얘기를 하는군요. 살짝 들어보니, 존이 “낚시꾼들은 다 아는 이야기 중에…”하며 뭐라고 말하는데, 아 그렇군요.

“낚시꾼들은 다 아는 이야기 중에 ‘고기는 낚시꾼들이 없는 곳에서 제일 잘 낚인다’는 말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경매로 혹은 도서목록을 보고 책을 수집할 수도 있고, 사인회에 길게 줄을 서서 저자의 서명을 받아 수집 목록에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희귀본을 수집하려면 뭔가 기발한 방법이 필요하며, 작가들 모임에 회원으로 가입해 친분을 쌓는 방법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같은 책, 196쪽)

아, 그렇군요. 역시 친분을 쌓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겠네요. 좋은 방법을 알았네요.(그러면, 연예인 ‘팬클럽’에도 그런 심오한(?) 뜻이 있는 건가요?) 그런데, 존은 이렇게 저렇게 유명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요. 왜냐면 존은 방송활동도 많이 해 온 사람이라서 “내 경우 희귀본을 구하는 통로는 BBC 라디오였다. 나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라디오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비평가, 해설가, 작가 겸 사회자로 일하면서 희귀본을 엄청나게 긁어모았다”(같은 책, 196쪽)고 자랑 겸 비법 공개삼아 우쭐대곤 하거든요.(난 안 물어봤는데도!) 그래도 수집가들이 어떻게 책을 찾아다니고 어떻게 ‘낚아채는지’는 조금 알 수 있겠네요.

이렇게 책 수집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온 존은 미국에도 간 적이 있었는데, 미국에 가게 된 이유도 책 때문이랍니다. 어느 날 존은 영국 영화협회 도서관에서 톰 앳킨스라는 한 미국인 교수를 만났습니다. 톰 앳킨스는 견학차 여러 사람을 데리고 영국에 왔는데 그는 켄 러셀(Ken Russell)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쪽지를 존에게 맡겨 영국 영화협회에 보냈습니다. 그것이 존과 톰이 만난 계기였는데, 책을 쓰기 위해 한 학기를 쉴 준비를 했던 톰이 존에게 부탁을 했다더군요, 자기가 쉬는 동안 자기 일을 대신해달라고. 재밌는 건 존의 반응입니다.

책도 쓰고 방송활동도 하고 그럭저럭 사회적 인지도도 있는 사람이라고 조금 아주 조금 존을 우러러보며(?) 책을 있었는데, 갑자기 하는 말이 “교수 대신 일을 맡다니! 열다섯에 학교를 중퇴한 사람에게 이보다 더 설레는 일이 있을까”(같은 책, 174쪽)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랬나, 존이 열다섯에 학교를 중퇴했다고 그가 말했었나? 하도 수다를 많이 떨어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존은 역시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았고 책을 통해 삶을 살찌웠다는 것이죠. 일단 그 점을 또 한 번 확인했네요.

그러고 보면 존은 책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에요. 책 때문에 교수생활도 해 보았으니까요. 그럼 이쯤에서 책 수집가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살펴보고 갈까요? 존이 미국에 간 얘기 해 버리면 엉뚱한 얘기만 하다 끝날 수 있으니까요. 자, 책 수집가들이 사는 방식을 조금 들여다볼까요?

“미술사가들이 팡티망티를 찾기 위해 엑스선 사진을 찍듯이, 영화사가들이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s)'을 만들기 위해 온 사방을 뒤져 필름 삭제 부분을 찾듯이, 문학평론가들이 원고를 샅샅이 연구하듯이, 애서가들은 교정본을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교정본은 식자공이 원고를 활자로 조판하여 인쇄 형태로 만든 최초의 판지로 별로 볼품은 없다.”(같은 책, 229)

가만, 별로 볼품도 없다면서 왜 교정본 같은 걸 찾아다니지? 왜 그러지? 좀 더 들어보죠.

“일반적으로 여섯 개의 교정본이 교정쇄라고 하는 싸구려 재질의 긴 종이에 인쇄되어 나온다. 이렇게 교정본이 나오면 식자공이, 재수가 좋으면 작가도, 원문을 검토해서 잘못된 부분을 여백에 기호로 표시한다.”(같은 책, 229-30)

아, 교정본이 가진 매력 그러니까 완전한 형태로 출간하기 전 그 생생한 첫 맛 그리고 작가의 마음에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려는 그 열정 때문에 교정본을 찾는군요. 여러분도 혹시 (책이 아니더라도) 수집대상의 그 첫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다니신 적이 있나요? 존에게 바로 그런 집요함이 있네요. 참, 팡티망티(pentimenti)란 그림을 완벽하게 제작하기 위해 고친 흔적 또는 그런 의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결국 존도 책에 처음 것과 다른 흔적이 있는지를 찾아다니곤 했다는 건데, 존의 책 사랑도 참 못 말릴 정도네요.

갑자기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하고 싶네요. 혹시 뭔가를 많이 수집해 놓고나서, 그 수집물들을 이렇게 저렇게 다시 분류하고 보관 형태를 바꿔보기도 하시나요? 어릴 적 잠깐이나마 우표 수집이라도 해 보셨으면 무슨 말인지 아실 거예요, 존이 한 것처럼.

“1980년대 초반, 내가 수집한 그린의 책은 거실 벽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침실 벽까지 침범하여 그린의 책만 정리하기에도 골치가 아팠다. 밤이면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들처럼, 책끼리 서로 부딪치고 밀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왠지 이 책들이 매일 밤 소리 없이 졸라대는 것 같아 한 번은 알파벳 순으로, 한 번은 연대순으로 책의 ‘짝을 맞추면서’ 수시로 책을 배치했다.”(같은 책, 235)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다들 한 번쯤 이렇게 해 보셨죠? 수집물 정리하는 게 아니더라도 옛날 추억거리들을 밤새 정리해 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금방 공감하실 거예요.

오늘도 말이 좀 길었죠?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책을 ‘낚기’는커녕 졸려서 밤새 그 자리에서 졸다가 감기 걸리셨을 거예요. 그래도 몇 가지 건진 게 있네요. 뭔가를 수집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의외로 매력 있다는 것을, 책을 읽는다는 게 단순히 지식을 늘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어느 날 책을 넘어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루어가고 마음에 그리던 그 무엇 그 누구를 만나게 되는 기쁨이 또 얼마나 쏠쏠한지를.

“책을 수집하는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책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들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대개 꿈에서나 가능하지만, 에이미스와의 친분은 내 수집 인생에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유일한 경우였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고 알코올의 도움도 한몫하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도 뚫고 들어가본 적 없는 그의 집에 당당히 허락을 받고 들어갔던 거다.”(같은 책, 213)

에이미스가 누구냐구요? 오늘은 더 묻지 마세요, 더 이상 존의 수다를 떨다가는 정말 못 끝낼지도 몰라요. 정 아쉬우시면 이렇게 말하세요. “존, 수다만 좀 줄이면 더 들어줄 수 있는데.”(저보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여하튼, 싫지 않은 초청이니 제가 존에게 얘기해보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혹시 모르죠, 또 만날지.)
덧붙이는 글 공지사항

1. <책 사냥꾼>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와 2부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1부는 고향 호주에서 유년기과 청년기(20대까지)를 보내며 책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이야기를, 2부는 유럽(영국, 프랑스 등)에 살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집가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서정보

<책 사냥꾼: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John Baxter. 서민아 옮김. 서울: 동녘, 2006.
(원서명) A Pound of paper: Confessions of a book addict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