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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변 고가에서 펼쳐진 한판 시나위

10월20일 저녁,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미실 마을에서 열려

등록|2007.10.21 09:27 수정|2007.10.21 09:44

▲ 신경림 시비 '목계장터'가 있는 목계나루 ⓒ 이상기


국도 38번을 따라 장호원에서 제천방향으로 가다 보면 가흥과 목계 그리고 탄금호로 빠지는 나들목이 나온다. 이곳을 나와 우회전하면 탄금호에 이르고, 좌회전하면 가흥삼거리에 이른다. 가흥은 지금 시골의 조그만 동네로 전락했지만 옛날에는 가흥창이 있어 충청도와 경상도의 세곡이 모이는 수상교통(漕運)의 중심지였다.

가흥에서 남한강에 놓여있는 목계다리를 건너면 신경림의 시로 유명한 목계나루가 나온다. 목계는 남한강에 있는 대표적인 나루로 한때 뗏목과 새우젓배로 인해 경기가 좋아 큰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곳 목계 역시 이제는 한적한 시골이 되어 매년 가을 열리는 목계별신제를 통해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고 있다.

▲ 미내리 미실마을에 있는 윤민걸 고가 ⓒ 이상기


엄정면의 초입인 목계를 지나 19번 국도를 타고 충주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고갯길이 나온다. 이 작은 고개를 넘으면 내창장으로 유명한 엄정면 소재지다. 엄정면은 산지 안에 넓은 평야를 품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이곳 엄정면 미내리 미실에 있는 윤민걸 고가(古家)에서 10월20일 토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2007년 고가를 위한 시나위전’이 열렸다.

이 행사는 윤민걸 고가에 살고 있는 금석문양 탑본연구소 권보문 소장이 주최하고, 충주대학교 이흥길 교수가 집행위원장이 되어 추진했다. 이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행사를 주관하였으며 충주시와 엄정면 주민들이 관객으로 참여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시나위전은 올해로 벌써 4회를 맞이하고 있다.

▲ 이덕자 시인의 시낭송 ⓒ 이상기


행사는 이 지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덕자씨의 시낭송으로 시작되었다. 황진이의 시조를 모두 5편 낭송했는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이어 이 지역의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정경윤 선생이 섹스폰을 연주해 분위기를 돋우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부터 기온이 떨어져 저녁에는 초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공기가 차다. 그 때문에 한쪽에 화톳불을 피웠고 추운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불을 쬐면서 구경을 한다. 서양악기 연주가 끝나자 이번에는 대전에 있는 가락타래 가야금 병창단의 가야금 연주와 병창이 이어졌다.

▲ 춘향가 중 '사랑가'를 부르는 가락타래 가야금 병창단 ⓒ 이상기


먼저 25현 가야금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향의 봄’을 연주했다. 12현 가야금보다 음색이 더 다양해서인지 서양악기의 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가야금의 진수인 가야금 병창이 이어졌다. 두 명의 소리꾼이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춘향가 중 ‘사랑가’를 주고받았고, 옆에서는 고수가 장구로 이들의 노래와 연주를 뒷받침했다. 이들은 또한 성주풀이를 불러 윤민걸 고가의 성주신에게 집안의 평안과 번창을 기원하기도 했다.

다음에는 강원도 정선에서 온 김형조(정선아리랑 준기능보유자) 외 2명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선아리랑과 강원도 아리랑을 불렀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로 시작하는 사설은 참 귀에 익다. 그리고는 “사시장철 임그리워 나는 못살겠네”로 이어진다. 그 어려운 삶 속에서도 사랑을 노래하는 강원도 산골 사람들의 애절함이 묻어난다.

▲ 정선아리랑을 부르는 두 명의 소리꾼 ⓒ 이상기


이어서 이들 세 명의 소리꾼이 “강원도 금강산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 뒤에…”로 시작하는 강원도 아리랑을 부른다. 사실 이곳 엄정의 목계나루는 강원도 정선에서 출발한 뗏목배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과거 이 지역에서는 정선아리랑과 강원도 아리랑 가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노래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 소리를 열심히 듣고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 ⓒ 이상기


마지막에는 경서도 소리명창 권재은·성제선씨가 밝고 경쾌한 경기소리와 느리고 애절한 서도소리를 불러 감정의 기복을 크게 만들었다. 참석한 사람들 상당수가 이미 추위 때문에 자리를 뜨기도 하고 불가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임새와 박수로 이들의 노래에 화답한다. 노래와 연주로 이루어진 한판 시나위가 약 1시간 30분 동안 이렇게 펼쳐졌다.

이러한 시나위 외에도 서예, 그림, 도자기, 한복, 공예, 조각, 사진 등 전시회가 열러 시나위전(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 중에는 권보문 소장의 탑본, 이흥길 교수의 서예, 연제식 신부의 그림, 김대호 선생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연제식 신부는 미술을 전공한 분으로 이 지역 성당에서 오랫동안 사목활동을 했으며, 현재 이 지역에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 연제식 신부의 그림: 나무의 새 순이 참 싱그럽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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