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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붙어도 걱정, 떨어져도 걱정

20일 실업해소 집회에 참석한 뒤 아들 걱정을 하다

등록|2007.10.22 09:27 수정|2007.10.22 11:52
당고개 초등학교 앞 자그마한 문구점에서 복사를 하면서 주인의 둘째 아들이 곧 대학 졸업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까지 졸업반이면 고생 다 하셨네요."
"웬걸요, 첫애 대학 보내느라 기둥 뿌리 절반이 빠지고 둘째 때 나머지 절반이 또 빠져서
기둥뿌리는 다 뽑혀 나갔는데 큰애가 2년이나 놀다 얻은 직장은 겨우 1년짜리 비정규직이고 그나마 둘째는 취직이  막막한 걸요."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다!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안정적 일자리 확충과 노동권 확립을 위한 일할 권리 찾기 전국결의대회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 연합 회장이 청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이명옥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는커녕 학원 문턱에도 드나든 적이 없는 내 아들아이도 고등학생이 된 요즘은 밤 11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 샤워를 하고 간단한 간식이라도 먹고 나면 12시가 넘으니 보통 새벽 1, 2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야 하는 아이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기회만 있으면 졸기 일쑤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새벽까지 사교육으로 밀어붙이는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어렵사리 승리해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가서 졸업을 한다 해도 당당한 사회인으로 서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내 아이가 직면할 암담한 현실이다.

모아둔 돈 한푼 없이 이제 수능을 1년여 앞둔 고2짜리 아들을 둔 내 마음도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대학에 붙어도 걱정, 떨어져도 걱정인 내 마음을 아이는 알기나 할까?

만일 아이가 대학에 붙으면 우리는 학자금 장기 융자를 신청해야 할 것이고 아이가 졸업해 직장을 구해 그 융통금을 갚아나가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일자리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고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다고 해도, 대부분이 1년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일자리다.

저들이 있어야 할 곳은 거리가 아닌, 상아탑집회에 참가한 대학생이 피켓을 들고 있다. ⓒ 이명옥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안정적 일자리 확충과 노동권  확립을 위한 일할 권리 찾기 전국결의대회.' 이 집회에서 참석한 한국대학생 연합 회장은 항간에 떠도는 '일자리가  없긴 왜 없어? 젊은이들의 눈이 너무 높은 것이지'라는 이야기에 대해 "도대체 일할 자리가 있어야 눈높이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겠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렵게 공부시켜 준 부모님께 미안해서라도 취직을 하고 싶은데 실력을 갖추어도 일을 시켜주지 않는 사회가 원망스럽다는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허리띠 졸라매가며 제 밥벌이라도 하라고 대학 공부시켜 놓으니 취직시험 공부한다며 다시 고시원이나 학원을 다니고, 나이 서른이 가까워지도록 취직도 못 한 채  어깨가 축 늘어져 백수로 빌빌거리는 모습을 봐야 하는 부모 역시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정부 공식 통계에 나온 청년실업자의 숫자는 35만. 그러나 실제 청년 실업의 수는 80만에서 90여 만,  내년이면 청년실업 인구가 100만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울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시대를 넘어 '이구백'(이십대 구십 퍼센트가 백수)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할 일이 없어 대학원을 가거나 편의점이나 피시방 등에서 시급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까운 젊음을 허비하는 조카와 이웃의 좌절한 얼굴이 머잖아 보게 될 내 아이의 얼굴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니는데 2억 4천만 원이 든다고 한다. 그 많은 비용과 20년이란 긴 시간을 들여 공부한 우리 자녀들이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 '우리는 일하고 싶다! 일자리를 달라!'며 직장이 아닌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면 병든 사회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기업과 정부의 몫일 것이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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