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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에서 풍기는 묘한 악취는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추리무협소설 <천지> 293회

등록|2007.10.22 08:58 수정|2007.10.22 09:07
독문내력을 바탕으로 직접 육체가 부닥치는 이러한 승부는 단 한 순간의 조그만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이 판가름 나는 무서운 싸움이기도 했다. 팔과 다리에는 바위라도 가루로 만들듯한 내력이 실려 있어 아무리 진기를 운용하고 있다지만 취약한 부분에 정통으로 맞으면 그것으로 즉사였다.

파파파팍!

더구나 이것은 설중행으로서는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다. 고통을 느끼는 자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자 간의 싸움에서 이런 식의 싸움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확실히 설중행은 젊었고, 자신의 이점을 살리는 것보다는 한 번 이런 식으로 붙어보자는 무모한 오기를 부리고 있었다.

‘허억!’

부닥치는 순간마다 느끼는 팔다리의 통증보다는 내부진기가 진탕되는 것이 문제였다. 더구나 흑교신의 전신에서 풍기는 묘한 악취는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최대한 숨을 참으며 싸움에 임하다 보니 지치는 것도 빨랐다.

순식간에 수십 초가 교환되었다. 흑교신의 반응이나 몸놀림이 느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열대를 때려도 한 대를 맞으면 손해 보는 쪽은 설중행이었다.

퍼퍽!

설중행의 발이 흑교신의 아랫배를 정통으로 가격하고 그 반대로 흑교신의 팔이 설중행의 어깨를 강타했다. 아무리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흑교신이라도 전신에 울린 충격은 무시할 수 없었는지 주춤거렸다.

허나 설중행은 주춤거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서너 발자국 정도 급히 신형을 뒤로 튕겨 나왔다. 어깨뼈가 부러진 듯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더구나 어깨를 강타당했다 해서 어깨만 아픈 것이 아니라 전신에 고통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제야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인간의 몸은 아주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다.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박혀도 그 작은 통증 하나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 어깨나 허리가 굳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움직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통증 때문에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통증을 느끼는 것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설중행은 무모한 오기와 만용으로 인해 톡톡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전에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었다.

“괴물…. 네 놈의 뼈다귀가 단단함을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군. 정말 대단한 뼈다귀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자신의 권과 각을 정통으로 맞았으면 아무리 고수라도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허나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크크. 네 놈 역시 대단하다. 허나, 너는 반드시 죽는다.”

흑교신은 이지를 상실한 실혼인(失魂人)이 아니었다. 흑마공으로 인해 특이하게 통증을 잃어버린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판단이나 이지만큼은 보통사람과 똑같았다. 그 역시 설중행이 처음 보기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상대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제 사람도 귀신도 아닌 네놈을 완전히 귀신으로 만들어주마.”

설중행은 마지막 남은 진기까지 끌어올렸다. 혈룡장마저도 저 괴물에게 안 통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뭉개지기는 할 터였다. 설중행의 전신에 핏빛 기류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순간 그의 신형은 흑교신을 향해 쏘아나갔다.

흑교신 역시 설중행의 모습을 보며 양 팔을 가슴 위로 올려놓았는데 그것은 흑마공 절기 중의 하나인 흑마장(黑魔掌)을 사용하기 위한 동작 같았다.

콰아

시뻘건 다섯 마리의 혈룡 형상이 허공에 떠오르며 흑교신의 전신을 집어삼킬 듯 덮쳐들었다. 혈룡들은 불에 휩싸여 허공에 불꽃을 뿌리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흑교신의 움푹 파인 눈자위에서 처음으로 지금과는 다른 기미가 보였다. 아마 설중행의 무서운 기세에 처음으로 놀라는 것 같았다.

“크크흐흐.”

허나 흑교신 역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마주쳐 가는데 무릎이 굽혀지지 않은 채 그저 땅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흑마공을 십성 끌어올렸을 때의 완전한 시신의 움직임이었다. 동시에 그 역시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쿠쿠콰콰쾅!

순식간에 허공에 검은 기류로 형성된 둥근 손자국들이 빽빽하게 쏘아 나오며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혈룡의 형상들을 향해 마주쳐 갔다. 천근 화약이 터지는 듯한 묵직한 굉음이었는데 바로 앞에서 터지는 것이 아닌, 지하 수십 장 밑에서 터진 것 같은 아스라한 굉음이었다.

퍼퍼퍼퍽

나무둥치를 도기로 쪼개는 듯한 굉음이 뒤를 이었고, 설중행의 신형은 둥근 기류에 잠시 스친 듯 주춤거리면서도 어느새 흑교신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흑교신 역시 혈룡장에 당했는지 마치 맹수의 이빨에 온 몸이 물려 뜯긴 듯한 상처가 무수했고, 여기저기 살점이 뭉개진 곳에서도 검은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허나 흑교신은 설중행이 자신의 앞까지 다가오자 잘되었다는 듯 두 팔을 벌려 설중행을 빠르게 안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상황에 가장 적절한 대응이었고, 자신의 팔 안에 감기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설중행의 허리뼈는 두 동강 날 것이고, 그것으로 설중행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즉사할 터였다.

“크크!”

흑교신은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의 팔 안에 설중행의 몸을 안았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자신의 두 눈을 멀게 하는 백광(白光)이 자신의 암울한 두 동공을 파고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고(思考)마저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동작이 멈췄다. 흑교신의 의도대로 흑교신의 양팔 속에 설중행이 갇힌 모습 그대로 정지되어 있었다. 키의 차이로 인해 마치 어른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흑교신의 마비된 사고는 여전히 힘을 주어 설중행의 허리뼈를 으스러뜨려야 할텐데라는 생각이었지만 더 이상 힘을 가할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미간과 목젖에서는 검붉은 피가 몇 방울 배어나왔다. 설중행은 숨을 내쉬고 흑교신의 팔을 풀어 빠져나오려 했지만 이미 흑교신의 몸은 돌처럼 굳어 있어 팔을 풀 수가 없었다.

우두둑

설중행이 힘을 주어 팔을 벌리자 흑교신의 어깨뼈가 탈골되면서 뜯기듯 오른 팔이 어깨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러고는 채 설중행이 빠져나오기 전에 흑교신의 장신(長身)이 고목나무 넘어가듯 뒤로 넘어갔다. 뜯겨 나온 오른팔이 왼손에 잡혀 있는 괴상한 형태 그대로였다. 설중행은 비틀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숨을 가쁘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흑교신의 전신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이었지만 뿜어 나온 피에도 시독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최대한 숨을 참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진기가 거의 고갈될 정도로 지쳐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우.”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뒤로 벌러덩 누었다.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만사가 귀찮았다. 또 시독의 여파 때문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흑교신은 강한 상대였다. 혈룡장 뿐 아니라 심인검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어려운 상대였다. 그 때였다.

“왜 단혁이 그리 쉽게 당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살기에 찬 음성과 함께 흐릿한 시야로 두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바로 철기문의 옥청문과 옥청량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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