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사자암으로 가는 길은 비와 함께 걷는 길이다. 비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일정한 속도로 저만치 나를 앞서서 걷는다. 오늘 내리는 비는 수도를 오래한 모양이다. 저렇듯 평상심을 잃지 않는 걸 보니. 중국의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자장 율사는 자신이 중국에서 겪었던 문수보살 신앙을 이 땅에도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했다. 이리저리 적당한 터를 물색하던 자장은 강원도 오대산을 적지로 파악한다. 그는 우선 오대산 봉우리들을 방위에 따라 동대 만월산, 서대 장령산, 남대 기린산, 북대 상왕산, 중대 풍로산이라 이름 붙인다. 그러고 나서 대마다 암자 한 채씩 지었다고 한다. 오늘날 그 자리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 등 다섯 개의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계곡을 만난다. 계곡 왼쪽엔 레일이 있는데, 산 위로 뻗쳐 오르고 있다. 아마도 중대 사자암에서 일용하는 물자를 나르는데 쓰나 보다. 계곡을 건너자,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길은 좁을수록 제맛이 난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흠뻑 비에 젖고 있다.
오대산의 중심에 자리잡은 중대 사자암
▲ 삼성각 가는 길에서 바라본 향각. ⓒ 안병기
▲ 향각 지붕 너머로 바라본 풍경. ⓒ 안병기
비로봉 등산로를 따라 20분쯤 올라갔을까. 중대 사자암이 길 좌측에 모습을 드러낸다. 비탈진 산자락을 따라 5개의 축대를 쌓고 나서 그 위에다 집을 앉힌 계단식 건물이다. 4층까지는 요사채인 향각이다. 3층까지는 대중을 위한 공양간과 요사채이며, 4층은 스님들의 요사채라고 한다. 모르긴 해도 이렇게 철저하게 계단식으로 지어진 암자는 우리나라에서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입지가 암자의 형태를 결정지은 것이다.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배려한 듯한 건축이 돋보인다. 듣자니, 8년이나 걸린 불사라고 한다. 향각 지붕 너머로 바라본 산자락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비구름이 봉우리를 휘감고 있다. 오늘따라 구름이 더 신령스럽고 외경스럽다. 혹 오대산에 상주한다는 문수보살이 저 구름 속에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그네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계단식 건물의 꼭대기인 5층엔 주불전인 비로전을 중심으로 승방인 좌향각, 종무소 격인 우향각이 자리하고 있다. 비로전 앞 월대엔 사자 2마리가 지키고 섰다.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닌다는 짐승이다. 이곳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것을 상징하려는 듯하다. 문득 상징이 너무 자주 등장하면 내용이 유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비로전 안엔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서 모시고 있다. 1000분의 문수보살을 모신 목탱화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저 위, 부처님의 정골 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이 무색할 지경이다. 부처님의 사리보다 더 가치 있는 예불의 대상이 있을 수 있을까. 한순간 마음속에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삼성각을 가려고 승방인 좌향각을 스쳐 좌측으로 난 길을 내려간다. 좌측에 서서 바라보니, 향각과 그 지붕의 선들이 더욱 멋스럽게 느껴진다.
쓸쓸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성스러움
동쪽으로 난 샛길을 조금 걸어가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삼성각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벼랑과 맞닿아 있어 마당이 없다. 삼성각 안엔 칠성탱ㆍ독성탱ㆍ산신탱ㆍ용왕탱 등 4점의 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칠성은 민간신앙 속에서 하늘의 별인 북두칠성을 오랫동안 신으로 숭배해 온 것을 불교로 흡수하여 천재지변을 통솔하는 신으로 모신 것이다. 독성은 남인도 천태산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으로 나반존자로 더 알려져 있다. 천태산을 형상화한 기암절벽이 있고, 소나무 아래 희고 긴 눈썹이 특징인 나반존자가 있으며 그 주변에 여러 동자가 그려져 있다. 비로전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탓인지 찾는 이가 드문 듯하다. 성스러움이란 얼마간 쓸쓸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느낌이다. 중대 사자암에서 가장 쓸쓸하고 가장 성스러움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는지.
흘러간 만큼 더 아름다운 존재들
▲ 위에서 내려다 본 중대 사자암 전경. ⓒ 안병기
다시 비로전으로 돌아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봉우리들을 바라본다. 땅의 생김이 건물의 형식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몫을 한다면 마음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풍경이 아닐까. 풍경이 삭막하면 마음도 따라 삭막해지고, 풍경이 따스하면 마음도 온기를 머금는다. 풍경이 사각이면 마음도 사각의 형태가 되고, 풍경이 둥글면 마음도 저절로 둥글어진다. 도시에 있을 때, 내 마음이 각진 채인 것은 내가 바라보던 풍경이 각졌기 때문일 것이다. 산봉우리를 바라보노라니 마음도 산봉우리가 된다. 어느새 흰 구름이 마음을 휩싸고 돈다. 육자배기 한 자락이 흥얼거려진다. 내 정은 청산이요, 임의 정은 녹수로다. 녹수야 흐르건마는, 청산이야 변할손가. 더디게 변할 뿐이지 청산이라고 왜 변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 만물들이 모두 제행무상인 것을. 가을은 제행무상을 느끼기에 좋은 계절이다. 제행무상의 한가운데에 저 찬란한 오색단풍이 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제행무상이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기에 세상은 안타깝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산길을 오르면서 저 아래에 두고 온 중대 사자암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내곁에서 저만치 흘러갔구나. 흘러가니 더욱 아름답구나, 중대 사자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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