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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밥상 하나 차릴 줄 모르는 교육현실

열여섯 살에 자기 먹을 것 챙기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

등록|2007.10.22 10:55 수정|2007.11.02 13:06
어제 부엌에서 저녁밥을 준비하면서 종진이(가명)와 나눈 얘기 중에 요즘 고등학생들의 하루 생활에 대한 것이 있었는데 언뜻언뜻 귓가로 들어온 것이지만 당사자에게서 직접 들으니 여간 놀랍지가 않았다. 종진이는 우리 집에서 삶을 익히고 배우는 '스스로 세상학교'의 첫 학생이다.

교실의 분위기나 학생들의 행실은 차치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끔찍할 정도로 길다는 것이 내가 제일 놀란 것이었다. 이런 현실을 재촉하거나 묵인한 사람들은 선생과 해당부모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 모두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부터 밤 10시나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후에 다시 학원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토록 오래 공부하는 아이들. 도대체 뭘 배울까. 뭐가 되려고 그렇게 공부할까. 그렇게 공부하면 공부가 되는가. 공부라는 것이 그렇게 하는 것인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오늘 종진이를 보면서 다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가지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나들이를 하고 왔는데 마당에 들어서자 종진이가 아주 좋은 일이 있었다고 의기양양하게 자랑을 했다. 드디어 화장실에서 똥 누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참 잘된 일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종진이는 처음이라고 했다. 전통 뒷간에서 쪼그리고 앉아 똥 누는 것이. 큼직한 유리창으로 파란 하늘과 듬직한 덕유산 자락이 훤히 보이는 뒷간에서 똥을 눌 수 없는 인간. 화장실은 알지만 뒷간이 무슨 단어인지도 모르는 인간. 더구나 우리 집 뒷간은 생태화장실로, 쌀겨로 덮고 통풍이 잘되기 때문에 냄새도 안 난다. 그곳을 무서워서 들어갈 수도 없던 인간. 쪼그리고 앉긴 했는데 똥이 안 나와 결국 읍내 목욕탕으로 똥 누러 가야 했던 인간.

똥이 어떻게 다시 먹을거리로 되돌아오는지 생태계 순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수세식 화장실이 도시에 등장하게 된 역사와 환경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종진이는 이런 이야기를 아주 생소해 했다.

우리 교육이 진정한 야성은 잃게 하고 권력에는 순종하되 심성은 거칠고 이웃에게는 야박한 아이로 키우는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성을 다 잃어버린 인간은 어쩌면 동물 축에도 못 낄지도 모른다.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동물 중에서도 하등동물. 동물로서의 기초적인 기능마저 잃어버리고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그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이날 또 있었다.

다시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 7시쯤 내가 돌아왔을 때는 어둑발이 제법 내린 시간이었다. 종진이는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 내가 전화로 이른대로 쌀만 씻어 놓고는 밥을 할 줄도, 세탁기에 넣어 놓은 빨래를 돌릴 줄도, 아궁이에 불을 땔 줄도, 마당에 늘어놓았던 고추와 찹쌀가루를 찬 이슬이 내리는데도 안으로 들여 놓을 줄도 모르고 우두커니 어둠 속에서 걱정만 하고 앉아 있었다.

쌀도 물만 부었다가 따러 내 버리고 말았는지 깨끗하지도 않은 상태로 물기가 없이 말라 있었다. 어머니가 도라지 씨앗 가리던 것이 마루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신문들과 걸레와 우편물들, 이런 거 치울 줄도 모르고 그냥 앉아 있었다.

일부러 종진이가 씻어 놓은 쌀만 가지고 밥을 했다. 세 사람이 먹어야 할 밥인데 한 공기하고 1/3 공기 정도밖에 안 됐다. 세 사람이 먹으려면 쌀이 얼마쯤 필요한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종진이는 대한민국의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살림'을 전혀 몰랐다.

세상에 태어난 지 십육 년이 되었는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했고, 유럽도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견문을 넓혔는데도 밥상 하나 차릴 줄을 몰랐다. 전기도 가스도 쌀도 물도 다 있지만 정작 밥을 할 줄 몰라서 배를 곯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어떤 동물이 태어 난지 16년이 되었는데도 자기 먹을 것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먹을 게 있는데도 먹을 수 있게 처리할 줄을 몰라 배를 주리고 있을까? 수학의 고차 방정식은 풀 수 있지만 생존의 가장 기초가 되는 문제를 못 풀고 있는 것이다.

종진이도 답답했을 것이다. 집안이 어수선해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배는 고프고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이라고 있으면 좋으련만 뭘 어떻게 손을 써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는지 알 수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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