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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레야에서 사막여우 길들이기

[이집트 여행기③] 이집트 사막 종합선물세트 바하레야

등록|2007.10.22 15:11 수정|2007.10.22 16:12

▲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길 ⓒ 김동희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외롭게 뻗을 길을 따라 모래바람이 인다. 길의 끝은 먼지로 흐릿하고 태양의 이글거림으로 인해 흐늘거린다. 저 멀리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한없이 달린다.

사막으로 간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신났다. 내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환경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황량한 사막도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환경이란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혹독했다.

우리의 사륜구동 차는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고, 당연히 더위에 쪄 죽지 않으려면 창문을 열어야 했고, 창문을 열면 어마어마한 모래 먼지들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이곳 저곳 눈에 넣어두고 싶어 부릅뜨고 보려고 해도 잠시뿐이다. 새우 눈을 하고서야 풍광을 구경할 수 있다.

사그라지지 않는 태양, 내게 선글라스를...

나는 선글라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먼저 안경 같이 생긴 것은 어릴 때 많이 써서 내 얼굴에 쓰는 것도 싫어 렌즈를 사용하는 데다, 다른 사람들이 눈이 부셔서 눈을 뜨지 못하겠다는 곳에서도 나는 멀쩡하다.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은 그 본연의 색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이상한 단색에 투영시켜서 보는 것은 용납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몇 번 가지고 다니다 이번에는 아예 짐에서 빼 버렸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선글라스를 외치고 있었다. 단색만을 본다 해도 제대로 눈뜨고 다니고 싶다고! 사막에 갈 때 꼭 챙겨 가시라. 선글라스와 모래 들어간 눈을 씻어 낼 수 있는 안약을.

또 하나의 혹독한 환경이란 사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는 태양이다. 이 태양이란 놈을 가려줄 만한 어떤 것도 사막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조각의 얇은 구름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어서 서쪽으로 떨어져주길 바랄 뿐이다. 오후 5시가 지난 시간이었지만 태양은 무서웠다. 차 안에서도 그냥 그 빛을 받고 앉아있을 수가 없다. 살이 타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 더위에도 담요를 팔에 두를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사막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위에 지쳐 있을 때, 우리 일행은 사막의 온천에 도착했다. 작지만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듣기 좋았다. 벌써 가이드들은 물 속에 들어가서 시원하게 즐기고 있는데 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들어갔다 나온 후의 번거로움과 젖은 옷으로 있어야 하는 그 구질구질한 느낌을 상상하면서 막상 들어가지 못하고 서서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나중엔 어떻게 되겠지!’ 물 속으로 들어가자 몇 분 동안 고민했던 그런 생각들은 모두 물에 씻겨갔다. 이렇게 시원하고 좋은 걸! 온천이라서 그런지 피부도 미끄러워진 느낌이다. 물놀이 후 밖에 나오니 춥다. 춥다는 느낌이 신기하다. 그렇게 뜨겁던 사막 속에서 물에서 나왔다고 춥다니 말이다. 하지만 춥다는 느낌은 단 10초.

순간 구질구질한 느낌이 스멀스멀 머리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다. 흠뻑 젖은 긴 바지를 벗어 버리고 차 뒷편에 매달았다. 달리는 차 뒤에 묶인 바지는 모래 먼지와 친구하며 펄럭거린다. 머리며 윗도리며 언제 젖었는지 모르게 바짝 말라버렸다. 그렇다. 여긴 사막 아닌가. 물이라고는 구경하기 힘든 극 건조 지역. 거기다 남은 물기마저 다 가져갈 무지막지한 태양까지. 30분을 달렸을까 내 바지는 모래 먼지를 가득 머금은 채 바짝 말라있었다.

바하레야 흑사막철광석이 많이 포함된 흑사막 ⓒ 김동희

차가 멈춘 곳은 검은 사막이었다. 누런 사막의 산에는 검은 색이 총총 박혀있다. 철광석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검다고 한다. 조금만 더 달려서 가면 누런 사막에 반짝반짝 빛나는 돌들이 있다.

이 곳은 크리스탈 사막. 이름대로 예쁜 크리스탈들이 여기저기 바닥에 뒹굴어 다닌다.  어떤 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드러운 모래로 가득한 사막이다. 맨발로 걸어보면 그 부드러움이 발 끝을 간지럽게 한다.

또다른 곳에는 철광석이 바람에 깎여 조그만 까만 꽃으로 피어나 바닥에 뒹굴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꽃의 정원(Flower Garden)이다. 사막에는 초록빛 줄기를 타고 피어나는 싱싱한 꽃은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사막의 방법으로 그들은 그들만의 정원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달려간 곳은 백 사막이다. 온통 하얀 돌로 가득 차 있는 별천지이다. 하얀 바위들은 바람에 깎이고 깎여 조각처럼 서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바하레야는 사막 종합선물세트 같다. 가지각색의 형태를 지닌 사막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선물세트, 이 맛도 볼 수 있고 저 맛도 볼 수 있는 지겹지 않은 그런 곳 말이다. 바하레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 다양한 맛을 좋아하는 것일 게다.

바하레야 백사막하얀 백사막 안에 flow garden ⓒ 김동희


우리 차는 이 백 사막에 짐을 풀었다. 차 두 대를 이어놓고 양탄자로 덮고 깔고 전구 하나를 연결해 놓으니 바람을 막아주는 멋진 장소로 바뀌었다. 내 가방 위를 덥고 있던 장작을 꺼내 불을 지피고 가이드들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해 대신 달이 떴다. 오늘은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있어 깜깜한 밤임에도 그렇게 어둡지 않다. 한여름 밤 사막은 덥지도 춥지도 않다. 시원한 모랫바닥에 누워 달을 본다. 이렇게 큰 달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길들여지지 않은 사막여우와 인연 맺기

가이드가 만들어준 음식을 상에 올려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허기가 져서 그런지 더욱 맛있다. 고기 냄새를 맡은 사막 여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왕자가 만난 사막 여우처럼 이 녀석 역시 우리와 놀려고 하지 않는다. 길들여지지 않았으니까. 닭고기를 조금 던져 놓으면 살살 눈치를 살피다 집어 간다.

조금 있다가 몇 마리가 더 나타나서 우리 주변을 서성대고 있다. 길들여지지 않았지만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 여행자가 던져주는 닭고기를 찾아 그들은 서성대고 있다. 너무나 편안한 음식 제공처가 있으니 그저 서성이면 그만이다. 신기하고 궁금한 여행자들은 누구나 닭고기를 자기에게 던져줄 테니 말이다.

동물원에 있는 것과 다른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사막여우를 바라면서도, 자연 속에 있는 그들을 점점 동물원에 있는 그것들과 다를 바 없이 길들이고 있는 바보 같은 여행자들! 나 또한 그런 바보 같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사막여우바하레야 사막여우 ⓒ 김동희


새벽녘 우리 잠자리 주변에는 온통 여우의 발자국들뿐이었다. 갑자기 이 여우들이 나에게 닭고기만이 아니라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인연을 맺기 위해 잠자던 내 주변을 돌고 돌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여우가 세상의 수많은 여우와는 다르게 나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나를 찾아온 이 여우에도 내가 특별한 인연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다. 아마 여우는 자기에게 고기를 주는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겠지. 특별한 인연을 바라는 사람이 더 바보 같다.

▲ 사막의 밤 ⓒ 김동희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누웠다. 밝은 달 때문에 예쁜 별은 볼 수 없다고 한다. 달이 지고 나면 깜깜해지면 쏟아지는 별이 보인다고 하는데 달은 해가 뜰 때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멀리 해가 올라오고 있다. 한쪽은 달이 둥글게 떠있고 한쪽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어둠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여명이 오고 있다. 지금 이 순간만은 너무 아름답다. 조금만 지나면 또 나를 익혀 삼키려는 뜨거운 덩어리가 되겠지만…….

덧붙이는 글 지난 여름 다녀온 이집트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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