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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진타오 후계로 시진핑 강력 부상

등록|2007.10.22 16:06 수정|2007.10.22 16:21
(상하이=연합뉴스) 진병태 특파원 =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의 당서기 시진핑(53)이 후진타오 주석의 뒤를 이을 차기 지도자로 강력하게 부상했다.

시진핑은 22일 열린 중국 공산당 17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꿰찼다.

리커창 랴오닝성 서기보다 득표에서 한발 앞서 서열 6위로 내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부주석에 선출될 것이 유력시되면서 차기 후계구도에서 유리한 자리를 선점했다.
  
지난 3월 상하이 당서기로 자리를 옮기 이후 대외적으로 상하이의 성장동력을 유지하면서 대내적으로 부패척결에 힘을 쏟은 그의 공로가 인정됐다.
  
그는 당대회 시작을 앞두고 후계구도에서 리커창에 밀리는 듯 했으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오히려 앞섰다.
  
1953년 혁명 원로인 시중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부위원장의 막내아들로 베이징에서 태어난 시진핑은 태자당 그룹의 대표주자이면서 동시에 칭화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칭화방'의 일원이다.
  
부친 시중쉰은 1962년 펑더화이 반당집단으로 몰려 숙청됐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78년 복권돼 광둥성 서기로 있을 당시 덩샤오핑에게 경제특구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태자당에 속하긴 하지만 어린 시절 부친이 사인방의 박해로 조사, 수감, 하방 생활을 한 탓에 유복하게 지내지 못했고 15세때엔 산시성 오지에서 농민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고위간부 자제이면서도 서민적 정서를 갖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다른 고위간부 자제와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5년 부친의 복권과 함께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칭화대 공정화학과 졸업 후 국무원 판공청에서 겅뱌오 부총리 비서로 배치돼 일하다 1982년부터 베이징 근무를 포기하고 허베이성 정딩현 부서기를 시작으로 20여년간 지방만을 돌며 근무해왔다.
  
40대 후반부터 푸젠 성장, 저장 성장.서기를 지내면서 차세대 주자로 꼽히기 시작했다.
  
대만과 면한 동부 지방의 고위직을 지내면서 대만 자본을 유치하는 등 대만통으로 알려졌다.
  
또 상하이방의 주요 세력거점인 저장성 서기를 오래 지냈다는 점 때문에 범 상하이방의 일원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2002년 저장성 서기가 된 후 5년만에 저장성을 중국에서 민간기업이 가장 발전한 성으로 키웠다는 공로를 인정받았고 천량위 상하이 서기가 비리 혐의로 축출되면서 지난 3월 상하이 서기로 임명됐다.
  
확실하게 밀어주는 끈이 없다는 평을 들었던 시진핑은 오히려 이 점이 모든 계파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부각되며 후계자 후보로 급부상했다.
  
태자당 출신이 배경이 돼 원로들을 극진하게 대우하고 군 간부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우대해준 것이 입신의 배경이 됐다는 평도 있다.
  
그는 태생적으로 성장우선주의자다. 그가 성장과 당서기를 지낸 푸젠, 저장, 상하이는 모두 동부연안으로 중국의 성장을 견인해왔다.
  
반면 그와 후계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될 리커창은 후진타오 직계의 공산주의청년단 출신 퇀파이의 핵심 인물답게 분배를 중시하고 있다.

전대 기간 토론회에서 보여준 언론을 대하는 스타일도 화려한 언변의 리커창과는 달리 시진핑은 과묵형으로 대조를 보였다.
  
시진핑이 리커창에 한발앞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후진타오 집권 2기의 중국이 성장과 분배라는 두마리 토끼 가운데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향후 후계 향방이 갈릴 수 있다.

jb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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