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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가 똥모양이에요"

손자와 할아버지 고구마 캐던 날

등록|2007.10.23 11:46 수정|2007.10.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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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왕 고구마 캐는날 ⓒ 김혜원


"고구마가 다 영글은 것 같으니 오늘은 캐야겠다."
"와아~ 할머니. 나도 캐고 싶어요."
"그랴, 주석이 유치원 다녀와서 고구마 캐러가자."
"할아버지도 같이 가는 거죠?"
"그럼, 주석이 얼른 유치원 다녀 오거라."

가을이 깊어지니 뒷산에 일구어 놓으신 엄마의 밭에도 결실이 한창입니다. 여름내 오이와 상추, 토마토, 가지, 고추를 내어 주던 밭에 지금은 김장에 쓸 배추 무우가 자라고 있으며 밭 가장자리엔 매일 매일 밥에 두어 먹을 만큼의 콩과 팥이 열리고 있지요.

몇 년 채마밭을 가꾸어도 고구마는 처음 심어 보셨다는 엄마. 하지만 어찌나 공을 들이셨는지 너무나 잘 자라서 여름 내내 쉽게 맛보기 어려운 고구마줄기 김치까지 담가 먹을 정도 였답니다. 하지만 엄마도 막상 가을이 되어 흙 아래 정말 고구마가 맺혀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하루 하루 고구마 캘 날만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줄기는 김치도 하고 나물도 해서 맛있게 잘 먹었는데 알도 잘 들었나 모르겠다. 내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말이야."

오후가 되니 엄마, 아버지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손자녀석 주석이를 데리고 서둘러 뒷산에 오르십니다.

"주석이 고구마 캐봤냐?"
"아니요. 할아버지. 고구마 저도 캐고 싶어요."
"가자, 보여줄게. 고구마 캐다가 맛난 것 만들어 먹자."

▲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고구마를 캐는 주석이 ⓒ 김혜원


삽을 들어 흙을 깊이 파 흔들어 놓으니 흙속에서 붉은 고구마가 얼굴을 내밉니다.

"우하하하하. 할아버지 진짜 큰 고구마예요. 우하하하."
"그래 엄청 큰 고구마다. 우리 주석이가 저렇게 큰 고구마를 캤구나.하하하."

또 한 삽을 뜨니 여지없이 고구마가 쏟아집니다.

"우와~ 이건 주석이 똥처럼 생겼다. 할아버지 이거 똥 모양 고구마예요."
"하하하. 그려, 굴고 기다란 게 주석이 똥자루같구나."
"아이구 못 살아. 호호호."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즉석 고구마 품평을 하는 주석이도 신이 났습니다. 평소같으면 더럽다며 흙에 손도 대지 않으려 하는 도시의 아이지만 고구마 캐는 재미에 흙이 손에 묻는 것쯤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표정입니다.

"이모, 지렁이야. 고구마밭에 지렁이가 살고 있어."
"정말, 징그럽지 않니?"
"아니. 선생님이 지렁이는 고마운 친구라고 했어. 땅을 좋게 만들어준대. 우리 고구마 밭이 좋은 땅이라서 지렁이가 사는 거야."

참 요즘 6살은 아는 것도 많습니다.

▲ 잘 자란 고구마 ⓒ 김혜원


그렇게 한참을 캔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보니 제법 많은 양입니다. 자루에 담긴 고구마를 보자 익살꾼 주석이가 또 한 번 할머니,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립니다.

"자아~ 고구마 사세요. 고구마요. 제가 직접 캐온 거예요."
"맛있나요?"
"네, 맛있구요. 꿀고구마나 고구마 튀김을 해 먹으면 맛있어요."
"배추도 있구요, 무도 팔아요. 다 할머니가 키운 거예요."
"아이구, 그 녀석 장사도 잘하네. 하하하."
"그러게요. 주석이 데리고 큰 길가에 나가서 팔아 볼까봐요. 호호호"

고구마를 캐느라 뻣뻣했던 허리통증과 이마에 송골 송골 맺혔던 땀방울들이 손자의 재롱에 싹 사라지는지 엄마,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 꽃이 활짝 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여섯살 손자 주석이까지 방금 캔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한 자루씩 지고 밭을 내려오는 길. 자루에 무게 만큼이나 묵직한 행복감과 포만감이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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