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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들이 잠 잘 시간이라 안돼"

남편의 정성이 들어간 가장 맛있는 김치

등록|2007.10.24 08:43 수정|2007.10.24 08:49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채소로 만든 김치... ⓒ 정현순



지난 주말(20일)이었다. 퇴근하는 남편한테 전화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밭에 들려서 파 좀 뽑아왔으면 좋겠는데"
"안돼. 걔들도 잠 자는 시간이야. 잠 잘자고 있는데 가면 놀라서 몇개는 죽을 줄도 몰라. 내일 뽑아다 줄게."
"걔들도 잠을 자?그리고 또 놀라?"
"그럼 걔들도 밤에 자면서 쑥쑥 자라는 거야. 내일 뽑으면 되지."

남편의 말에 웃음도 나왔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솎아온 열무와 파... ⓒ 정현순



파밭... ⓒ 정현순



무밭과 알타리... ⓒ 정현순


홍고추... ⓒ 정현순


그리고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가더니 솎은알타리, 배추, 파, 고추 등을 뽑아가지고 왔다. 그것도 어찌나 정성스럽게 담아왔는지 마치 화초를 보고 있는 듯했다.

"이거 내가 다듬어 줄게."
"웬일로?"
"그냥 참 예뻐서."

난 남편이 재미있어 하는 것 같기에 그냥 놔두었다. 힘들텐데도 족히 2시간도 훌쩍 넘게 하나 하나 다듬고 있었다. 꾹꾹 눌러 담아와서 다듬어도 다듬어도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내가 한움큼 들고는 말했다.

"이렇게 다듬어도 돼."
"아니야 안돼. 그냥 놔두라니깐 내가 해준다고 했잖아."

정말 그일을 즐기는 것 같았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남편이 꼭 그짝이 난 것 같았다. 주말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말농장에 가서 사는 남편을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남편이 다듬어 준 김치거리를 소금에 절이고, 씻고, 양념을 만들어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물고추 만들기.. ⓒ 정현순


홍고추도 따와서 마른 고춧가루는 전혀 넣지 않고 김치를 버무렸다. 믹서기에  끓여 식혀 놓은 찹쌀풀과 마늘, 생강을 넣고 함께 갈았다.  믹서기에 가는 동안 어찌나 매운지 재치기가 쉬지 않고 나왔다. 남편은 기분이 좋은지 "그렇게 매워야 익으면 맛있어"하며 김치 담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잘 씻어놓은 김치거리에 양념을 넣고 골고루 버무렸다. 너무 매워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늘만 뻬고 집에서 농사 지은 그야말로 무공해 김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남편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도 함께 버무려졌다.

말없이 지켜 보고 있던 남편이 완성된 김치 맛을 보면서 말한다.

"맛이 기가 막히다. 내년에는 마늘도 심을까?그럼 아주  완벽한데"
"마늘은 참으세요. 그거까지 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 당신은 재미있을 줄 모르지만"
"그래. 그렇다면 참지 뭐."

내가 맛을 봐도 다른 때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싱싱하고 신선한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도 이제야 무공해 김치의 깊은 맛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잠잘 때 건드리지 않고, 조심 조심 그것들과 사랑을 나누듯이 돌보아 준 남편의 정성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얘들아, 오늘밤도 푹 잘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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