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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아줌마, 은행을 털다

[시작 노트가 있는 나의 시 7] 그런데 그게, 국민은행 앞 은행나무랍니다

등록|2007.10.24 10:22 수정|2007.10.24 10:21
은행을 털다

지하철 상계역 육교 아래
국민은행 상계동 지점 앞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한 그루

시퍼런 만 원짜리 지폐들은
국민은행 금고에 모두 뺏기고
싯누런 십 원짜리 동전들만
잔뜩 매달고 서 있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잔돈푼이나 벌어보려고
늦은 밤까지 좌판을 펼쳐 놓은
잔뜩 그을린 노점상 아줌마

오늘 벌이가 시원찮았는지
좌판을 거두다 말고
장대로 은행나무 가지를 쳐서
동그란 은행알을 따고 있다

보안등 환한 국민은행 앞에서
복면도 하지 않은 얼굴을
누런 이빨로 웃어주면서
동전만 가득한 은행을 털고 있다

<시작 노트>

지난 해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하철 상계역 육교 아래 좌판을 벌여놓은 아줌마가 은행나무를 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늦은 저녁 때여서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을 텐데도, 늙수그레한 그 아줌마는 바로 앞 국민은행 보안등 불빛에 의지하여 열심히 장대를 휘둘러대고 있었다.

그 옆을 무심히 지나쳐 가는 사람들은 국민은행 자동현금지급기에서 시퍼런 색깔의 지폐 몇 장씩을 인출해 가고, 아줌마는 몇 차례 장대를 휘두른 끝에 십 원짜리 동전 색깔을 닮은 설익은 은행알 몇 개를 얻었다.

왼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겨우 지폐 한 장 만큼이나 벌었을까마는, 좌판을 거두기 전에 큰 맘 먹고 감행한 은행 털이로 얻은 은행알 몇 개를 손 안에 쥐고서 아줌마의 입은 함박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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