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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정치인 노무현의 '이유 있는 항변'에서 읽는 코드

"원칙의 문제", 정당정치의 원칙

등록|2007.10.24 09:39 수정|2007.10.24 09:41
정동영 후보의 구애에 노무현 대통령이 콧방귀를 뀌었다. “참여정부 책임론으로부터 도망칠 생각이 없다”며 노심 끌어안기에 나선 정동영 후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 “원칙의 문제가 있다”는 흥미롭다.

반한나라당 표를 단일화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정동영 후보의 절박함을 노무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정동영 후보뿐만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절박함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테다. 참여정부 때 첫발을 뗀 수많은 개혁 정책들이 남긴 과제의 운명은 다음 정권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의 문제와 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원칙의 문제가 있다. 열린우리당의 가치라든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라든가, 스스로 창당한 당을 깨야할만한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 (정동영 후보에게) 들어봐야겠다”고 했다.

반한나라당 반이명박으로 이번 대선에서 제3기 민주개혁정권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복창 터질 말이다.

‘정당정치’라는 원칙

유창선 한국사회연구소 연구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에 불쾌해할 범여권 지지 표심을 대변했다. 유창선 연구원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노 대통령은 정동영의 굴욕 원하나”라는 글에서 “노 대통령이 제시한 내용들이 과연 원칙에 관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런 것이 왜 원칙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노 대통령에게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것보다, ‘제3기 민주개혁정권’을 여는 것보다,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일까”라고 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싶고, 제3기 민주개혁정권을 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유창선 연구원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원칙, 자신의 정당성의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 등이 기간당원제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의 그 원칙, 그 정당성 말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한국사회당 등 한국에는 기간당원제를 원칙으로 하는 정당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간당원제를 원칙으로 하는 정당이 원내 제1당이 됐다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일이었고, 국민들이 정당정치란 무엇인가를 비로소 깨닫는 과정이었다.

유창선 연구원은 지난 5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을 이야기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창당 선언문, 지금 읽어 보아도 감동이 있다.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결단, 희생과 헌신, 열정이 엉겨 있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려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말하는 ‘원칙의 문제’가 비단 노무현 대통령만의 것인지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의 문제’는 열린우리당 창당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아야 할 때 가장 마음 아파했을 사람들, 2007년 대선에서 자신들을 이끌 선장이 없어 괴로워 할 사람들의 ‘원칙의 문제’다.

반한나라당으로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한나라당 집권이 코앞에 다가온 끔찍한 상황에서도 정동영 후보에게 모든 것을 던지지 못하는 노심을 이해해보자. 이명박 후보가 아닌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참여정부가 못 다 이룬 과제가 계승될 수 있을 것인가?

정동영 후보는 확실한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정동영 후보가 아무리 ‘참여정부 정신 계승’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한 것처럼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과정에서 정동영 후보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실패의 책임을 정동영 후보에게 모두 떠넘길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임은 분명하지만, 열린우리당을 원내 제1당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동영 계, 김근태 계와 손을 잡은 것도 친노 세력이 한 일이지 않나.

어쨌든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비롯된 한계, 그리고 그 한계로부터 비롯된 지난 4년의 열린우리당의 혼돈 상태를 경험했기에 더욱 더 정동영 후보와 선뜻 손을 잡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다음 정권에서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다음 정권에서 친노 세력의 꿈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후보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정치는 이겨야 하는 게임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명박 후보의 승리를 막고 민주개혁정부의 제3기를 열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이기기 위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가 적자가 아닌 한, 그 선택은 다음의 5년에서 지난 5년을 반복하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차후의 선택이야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정당정치가 보다 완성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정치개혁이다. 반한나라당 구도만으로 그와 같은 정치개혁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해답은 진보개혁세력의 선거 논의를 앞으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에 있다.
덧붙이는 글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 공보비서 임세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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