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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혁대로 때리고 강제 결혼시키고...

국가인권위, 경기도의 한 장애인시설 검찰에 고발...'장애인 학대시설'로 둔갑

등록|2007.10.24 12:29 수정|2007.10.24 14:43

▲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자료사진). ⓒ 강이종행

권아무개(여·38·지적장애2급)씨는 지난해 6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H원에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벽예배 시간에 손발이 묶인 채 가죽혁대와 주먹 등으로 얼굴과 몸을 얻어맞았다. 가해자는 전 시설장인 손아무개(78) 목사였다.

권씨는 또한 같은 시설 수용자 송아무개(남·44·정신장애)씨와 원치 않는 부부가 돼야 했다. '가짜 남편'인 송씨가 기초생활수급권자였기 때문에, 시설측이 이들을 부부로 만들어 기초생활수급비 59만 5000원을 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H원은 2002년 이전부터 인근 초등학교의 급식에서 남은 음식물을 가져다가 수용자들에게 식사로 제공했다. 학교가 방학일 경우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 등을 먹게 했고, 이는 지난 7월 30일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나 있을법한 장애인들에 대한 학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1960년대 설립돼 지난 2002년 8월 신고시설로 전환된 경기도 고양시의 H원에서는 장애인 수용자들에 대한 이같은 만행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장애인 복지시설이 아닌 학대 시설이었던 셈이다.

인권위는 24일 "장애인 복지시설인 H원에서 수용자들에 대한 성추행, 상습 폭행, 허위 혼인신고, 수급비 횡령 등이 적발됐다"며 전직 시설장 손 목사와 현 시설장인 최아무개(여·44)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또한 해당 시설에 대해 수용자들의 인권상황실태를 포함한 전반적인 운영실태에 관해 특별감사를 실시해 줄 것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권고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신속하고 우선적인 긴급 보호조치 및 시설폐쇄 등을 취해줄 것을 경기도지사에게 권고했다.

장애인 복지시설, 실태 조사 해보니...

인권위는 피진정인 손씨에 대해 "수용자 2명을 성추행하고, 이들을 포함한 6명의 수용자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고 했다"며 "또한 손씨가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현직 시설장으로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최씨도 고발한다"고 밝혔다.

인권위 조사 결과, 전 시설장인 손씨는 피해자 김아무개(여·39·정신장애)씨와 권씨 등에 대해 지난 2006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사택과 엘리베이터 등에서 키스를 하고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다른 피해자 박아무개(지적장애2급)씨에 대해서는 "같이 자자, 내 방에서 같이 생활하자"며 성희롱한 사실도 있었다. 

시설에서는 피진정인 손씨에 의한 성폭력 외에 폭행도 상습적으로 일어났다. 손씨는 권씨와 정아무개(60·시각장애1급)씨, 고아무개(80·시각장애1급)씨 등 수용자 6명을 '새벽예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먹, 몽둥이, 가죽혁대 등으로 얼굴과 목덜미 등을 수차례 폭행했다.

허위 혼인신고로 기초생활수급비를 얻어내 시설의 운영비 등으로 쓴 사실도 적발됐다. 시설측은 기초생활수급권 대상자가 아니었던 권씨를 수급권자인 송아무개씨와 서류상으로 혼인시킨 뒤 이들에 대한 수급비 59만 5000원을 받아냈다.

지난 2003년 6월 수급권자가 된 송씨에게 지원된 생계비는 34만원 정도. 송씨와 결혼한 권씨는 2006년 6월 수급권 대상자가 됐다.

피진정인들은 "이들이 서로 좋아해서 부모의 동의하에 혼인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인권위의 조사 결과 이들은 혼인 이후 한 방에서 생활한 적이 없고 혼인신고 당시에도 이들은 배제된 채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비록 장애가 있더라도 성인 남녀가 혼인을 할 경우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부모가 동의한다고 해서 시설장이 임의로 혼인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행복추구권'(헌법 10조)과 형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대표적 인권 사각지대, 개선 의지 있어도 의견 낼 처지 안 돼"

▲ 시각장애인 복지시설인 H원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하고 난 뒤 남은 음식을 수용자들에게 제공했다. 방학기간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을 먹게 했다. ⓒ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해당 시설은 수용자들의 통장으로 입금되는 기초생계비(34만원), 장애수당(17만원), 경로연금(4~5만원), 교통비(분기당 3만원) 등을 매달 일괄적으로 인출(월 1275만원)해서 사용했다. 이 시설에는 총 29명(시각장애인 19명, 비시각장애인 10명)이 수용돼 있었다.

피진정인들은 사용 내역에 대해 "직원 5명에 대한 월급(460만원), 자동차 운영비(150만원) 공공요금(160만원), 부채 상환(300만원) 등에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영수증이나 장부 등 증빙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해당 시설은 수용자들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일괄 관리했음에도 인근 초등학교의 급식 이후 남은 음식을 식사로 제공했고, 방학 기간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 등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외에도 해당 시설에서는 수용자에 대해 안마나 청소 등을 담당하게 하고, 수용자들의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 등을 개설, 요금체납으로 인한 변제 최고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피진정인들에게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인권 교육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권고했다.

정강자 상임위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조사는 규모가 크지 않은 시설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대표적 인권 사각지대인 장애인 시설에 수용된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정 상임위원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대변할 능력이 떨어녀서 시설생활에 대해 개선 요구를 내기가 어려운 조건이었다"며 "이번 사건이 널리 알려져서 다른 기관에서도 이에 대한 예방조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14일 "전·현직 시설장의 성폭력, 상습적인 폭행 및 폭언 등으로 인한 시설생활인 인권침해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조치를 원한다"며 전 시설장의 아들이자 현재 해당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손아무개(46)씨가 진정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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