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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달로 간 코미디언>

등록|2007.10.25 09:55 수정|2007.10.25 11:52

▲ <달로 간 코미디언> 겉표지 ⓒ 중앙북스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보는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지금 문학계를 이끌어가는 재목들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최근에 발표한 소설들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만한 소설들만 모아뒀으니 그 재미를 두말해 무엇 하랴.

<2007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도 예외는 아니다. 수상자 김연수는 물론이고 백가흠, 김애란, 은희경, 박민규, 이혜경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그 면모가 하나같이 화려하다. 이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역시 수상자다. 김연수는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수상했는데 이 소설은 최근에 김연수가 보여주는 문학적인 행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김연수는 여러 소설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했는데 그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대표되는 묵직함과 <사랑이라니, 선영아>로 대표되는 경쾌함이다. 그런데 김연수는 언젠가부터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기 시작했다. 연재하다가 발표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만 보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는 터인데, '달로 간 코미디언'은 그것을 단편소설답게 짧고 굵게 보여주고 있다.

'달로 간 코미디언'은 소설가의 애인인, 그녀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인 그는 코미디언이었다. 실력은 최고가 아니었지만, 군사정권 시절에 운이 좋아서 최고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그 시절 코미디언이 최고 대우를 받는다 해서 무엇이 좋았으랴. 그것은 서글프고 안쓰러운 일이다. 게다가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딸에게 전두환 대통령 취임을 알리는 뉴스에 나와서 "성군이 나셨도다아!"라고 외친 것을 알려버리고 만다.

지금 이런 아버지를 뒀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얼굴이 벌게질 일인가. 그럼에도 딸은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간다. 아버지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향해 갔는지를 알아보러 간다. 이것만 본다면 이 소설은 꽤나 묵직한 소설처럼 보일 것이다. 하기야 9.11테러와 수잔 손택에 대한 말까지 나오니 그렇게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모두 농담처럼 등장한다면? 난데없이 등장하는 농담들의 질주가 있는 건 어찌 이해해야 할까?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능숙해졌다. 그렇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김연수와 함께 주목받는 김애란과 박민규의 소설도 흥미롭다. 김애란의 소설은 여전히 유쾌하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어머니, 그것을 상징하는 칼을 이야기하는데 그 모양새가 경쾌하면서도 정겹다. 어머니의 임종 후, 어머니가 남긴 칼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사과를 깎아먹는 딸의 모습은 김애란식 소설의 유쾌함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손색이 없다.

박민규의 '깊'도 그렇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지구, 그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지구의 틈,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SF적인 신비로움과 상상력으로 무장해있다. 박민규식의 엉뚱함을 바탕으로 했으면서도 그것과 다른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박민규 소설의 변화를 예감하게 만든다.

최근에 발표한 소설집으로 그만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 윤성희와 백가흠의 경우는 어떨까? 윤성희는 '이어달리기'로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를 쓸쓸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러면서도 정답게 그려내고 있다. 단편소설 잘 쓴다고 소문난 작가의 것이니 그 정교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백가흠의 경우는 편혜영과 함께 가장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가로 유명하다. '루시의 연인'은 남성 자위용 인형에 마음 뺏긴 남자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백가흠 소설답게 그 분위기가 음침하고 불온하다. 눈에 띄는 것은 첫 소설집에 실린 것들보다 더 세련돼졌다는 점이다. 그의 개성이 사라지는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좀 더 정교하게 그가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전성태, 은희경, 이혜경 등의 소설도 볼 수 있다. 신인작가와 중견작가들의 소설이 두루 담겨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한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국소설의 미래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이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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