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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은 광복동 가고 싶다

[해방공간, 광복동 문화 거리] <코엔>을 찾아서

등록|2007.10.25 11:08 수정|2007.10.25 13:52

바람부는 날에는광복동에 가고 싶다 ⓒ 송유미


'광복동은 다 죽었어요.'
'남포동은 다 죽었어요.'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는데 익숙해 있다. 오랫동안 밤이면 캄캄하게 셔터를 내린 가게가 많았던 광복동 거리, 그 거리가 부산국제영화제(PIFF) 이후 달라졌다. 상인들은 PIFF 때문만은 꼭 아니라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광복동 네온 간판이 환해지고, 밝아진 것은 사실이다. 전에 셔터를 내린 가게를 세 얻어 임시 포장마차를 차린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시나요 ?바이올린 협주곡 d장을 들려드릴까요 ? ⓒ 송유미



요즘 70, 80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데, 시디와 레코드판으로도 음악을 마음껏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있는 <코엔>을 모른다면 자칭 부산의 문화예술인이 아니라는 입소문에 찾은 <코엔>. 입구부터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마침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이다.

애상의 멜로디로 흐르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문득 20세기 음악계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가 생각난다. 그리고 부산 피난민 시절 <밀다원>을 중심으로 부산 문화 예술을 꽃 피웠다는 작고 문인 중 이중구 선생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주관세계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작곡가의 객관 세계를 표현하려 애써왔다."

영화음악요 ?70-80 부터 07까지 원하시는 음악은 무슨 음악이던지 다 있습니다. ⓒ 송유미



71세의 고령으로 지휘봉을 잡으며 한 러시아 거장,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의 널리 알려진 일화도 떠오른다. 아득하게 높아 보이는 음계 같은 예쁜 목계단을 밟아 올라간 <코엔>. 주인이 너무 젊어서 넘치는 미모다. 어느 프랑스 영화 속 카페에 들린 듯 조명은 희미하지도 야단스럽지도 않다. 무얼 마시겠느냐는 눈빛은 무시하고 묻는다.

시간이 맞으면 손님중에 실력이 있는연주자 이상의 솜씨를 들을 수 있습니다. ⓒ 송유미



"존 수루만의 <로맨틱한 초상>도 있나요?"
"그 음악을 좋아하시나 봐요?"

코엔의 여사장은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왜요? 그 음악을 좋아하면 안되나요?"

그러나 여사장도 나도 존 수루만을 좋아하던 한 지방작가가 자살한 일을 생각하며 말하고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아니요." 말끝을 흐리는 여사장의 말에 "맥주 값이 다른 데보다 비싸지는 않나요? 안주는 시키지 않아도 돼죠?"라고 확인하듯 묻자, 여사장은 "그럼 물 한잔 갖다 드릴까요? 여기 와서는, 음악만 듣고 가시는 분도 많아요"라며 다시 의미있는 웃음을 보인다.

사진작가들의 모델이 많이 된다고 하네요.오선지를 연상케 하는 <코엔>의 계단 ⓒ 송유미



사실 전업 문화예술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요즘은 저녁 만남을 피하는 쪽이고 점심시간을 잠시 이용해 만나는 추세이다. 그런데 가볍게 퇴근길에 음악도 듣고 맥주 한 병 정도 마시고 갈 수 있는, 부담 없는 <코엔>이 광복동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고, 주로 찾는 분들이 피프 광장과 가까운 탓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음악을 좋아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사랑 받고 있다고 한다.

<코엔>의 젊은 30대 여사장에게는 고문이겠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두들 장사가 안된다는데 여긴 괜찮아요?"
"장사요? 장사라기보다는 내 삶이에요. 여긴 내 삶의 공간이며...음악과 영화가 있어 내가 존재하는데요...장사는 안될 때도 있고...잘 될 때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모든 이해계산을 초월해 있는 듯 보이는 여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지만, 뒤통수가 따갑다. 좋은 음악 다 듣고 시원한 물만 얻어 마시고 나온 것이 말이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지나가다 들려 물만 마시고 가는 사람도 있고, 음악만 듣다 가는 사람도 있고, 그런 모양이다. 하나 둘 꺼진 불이 밝아 오는 듯 환해진 광복동 거리, 거듭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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