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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이 아직도 '내게 너무 먼 당신' 이라면

[책으로 읽는 세상 38]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등록|2007.10.25 14:53 수정|2007.10.26 09:00

▲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표지 ⓒ 생각의 나무

1.

10월이 다 가고 있다. 황인숙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구의 기울기가 밤 쪽으로 사뭇 기울어지는 때이며 밤을 바다라 치면 밀물 드는 때이다. 마치 바닷가 모래밭에 찰랑거리는 밀물처럼 사람들의 발목에 잠깐 감겼다가 내빼고 마는 허름한 낙엽들이 부랑자들처럼 거리를 헤매는 계절인 것이다.

이러한 때, 그리운 것은 따뜻한 차 한 잔뿐만이 아니다. 따스한 차를 마시면서 스산한 마음을 달래줄 시집 한 권도 읽고 싶고, 읽고 있는 시들의 행간을 채워줄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도 몇 곡 듣고 싶어진다. 그래서 가을에는 카페와 서점 그리고 콘서트 홀이 평소보다 더 붐비게 마련이다.

그런데 카페와 서점은 다녀오기에 별 부담이 없지만,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 홀에는 웬만해서 발길이 잘 향하지 않게 된다. 만만치 않은 입장권 가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클래식 음악이라 하면 주로 고상한 상류계층 사람들이 즐기는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쯤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즉, ‘고급 음악=클래식 음악=난해한 음악’이라는 등식으로 클래식 음악을 규정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런데 여기서 클래식 음악의 좌우에 등호로 연결된 생각들은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잣대라는 점에서, 이 등식은 항상 참일 수는 없는 명제가 된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의 전도사’로 불리는 지휘자 금난새가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을 권유하면서, 바로 이 등식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으로부터 여행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2.

먼저,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는 선입견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클래식은 결코 어려운 음악도 아니고, 아무나 들을 수 없는 음악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간의 준비만 갖춘다면 누구라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음악인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묻습니다. '가요나 팝송은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는데 왜 클래식을 즐기려면 준비를 해야 하나요?' 왜냐고요? 그 이유는 클래식 음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8쪽)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현대인의 취향에 딱 맞춰 만들어진 가요나 팝송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은 수백 년 전 주로 유럽에서 만들어진 음악이기 때문에 우리 귀에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고,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은 그러한 사전 준비를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 지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나 ‘포스코 로비 콘서트’ 등 여러 음악회의 무대에서, 그는 좀 어눌하면서도 재치 있는 말솜씨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준 바 있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그가 시도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하려고 하는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을 염두에 두고 펴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음악회장에서 그의 해설을 듣고 있는 듯 아주 쉽게 술술 읽힌다는 점과 관련 사진과 그림들을 다양하게 활용해 읽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 돋보인다.

다음, ‘클래식 음악은 고급 음악이다’라는 선입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듯, 음악도 사람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닷가에서는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부르는 뱃노래나 바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노래가 발달한다면, 농촌에서는 소를 몰 때 부르는 노래나 모내기할 때 부르는 노래가 자주 불려지겠지요. (…중략…) 두 사람이 상대의 음악보다 자기 동네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질이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취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이나 국악이나 모두 음악의 한 장르일 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려 하기보다는 나름의 개성과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고 충분히 즐기려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고 성숙한 자세이겠지요." (21∼22쪽)

즉, 음악에는 우열이 없으므로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보다 더 고급스러운 음악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치는 음악이나 태교 음악 등을 살펴보면 클래식 음악이 더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서양의 소수 몇몇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즐기기는 했지만, 그 시대의 음악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음악이었고, 가장 위대한 음악 천재들이 만들어낸 인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클래식은 과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지만 그 시대, 한 계층의 음악만이 아닌, 인류를 대표하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것이지요. 따라서 클래식을 즐기는 것은 인류가 낳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이요, 동시에 인류의 선조들이 후손에게 남긴 선물을 고맙게 받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5∼26쪽)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하니, 너무 거창한 의미부여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심오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 단지, 문제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우물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은 무척 깊은 편이어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보려면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리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금난새가 보여주고 있는 두레박에는, 17세기 후반 바로크에서 20세기 초반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여러 면에서 서로 대조가 되는 대표적인 작곡가 두 사람이 짝이 되어 들어가 앉아 있다. 예컨대,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승승장구하면서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즐겼던 ‘음악의 어머니’ 헨델, 철없는 어린애 같았던 음악 신동 모차르트와 인품 좋은 아버지 같았던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피아노 한 대 없어서 기타로 작곡했던 슈베르트와 자기 집에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풍족한 환경에서 작곡했던 멘델스존 등.

이러한 짝짓기 방식은 조금 작위적인 면이 엿보이긴 하지만,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하나의 예술작품은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의 성격과 인생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상황이나 시대정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클래식 음악을 처음 맛보는 이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의 각 장 끝에 금난새가 부기해 놓은 음악 상식 및 용어 해설도 참고하고 또 그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곁들여서 특유의 천진난만한 시각으로 해설해 놓은 추천 곡들도 직접 들어가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일단 클래식 음악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맛을 즐길 준비가 다 된 셈이다.

그렇게 몇 번 두레박질하여 클래식 음악이라는 우물의 물맛을 익히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클래식 음악은 고상한 사람들만이 즐기는 지루하고 난해한 음악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기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금난새는 다음과 같이 클래식을 야구 게임에 비유하고 있지만, 클래식 음악은 야구 경기를 보면서 즐길 수 있는 것 이상의 즐거움과 감동을 우리에게 줄 것이다.

"이렇게 바꾸어서 생각하면 어떨까요? '클래식은 룰을 알고 즐기는 야구 게임과 같다'라고. 룰을 모르고 나면 아무 흥미도 가질 수 없는 게임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룰을 익히면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야구 게임 말입니다. 클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없이 들으면 어렵고 막막한 것에 불과하지만 조금만 공부를 하고 들으면 음악이 주는 환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답니다. 지오디의 노래가 특별한 룰을 알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공놀이라면 클래식은 룰을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야구 경기인 셈이지요." (20∼21쪽)

3.

잘 알려졌다시피, 지휘자 금난새는 일반인들 사이에 웬만한 대중 가수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인이다.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몰라도 지휘자 금난새는 누구나 알 정도로 널리 그 이름이 알려졌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 예술의전당에서 매년 테마를 정해 시리즈로 개최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가 대성공을 거두고 있던 당시에는, 지휘자 금난새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오빠부대’가 동원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 당시 공연을 마치고 땀에 젖은 연미복 차림으로 금난새가 콘서트 홀 로비에 나타나면 싸인을 받기 위하여 프로그램 책자를 들고 줄 서 있던 중고생들이 새된 목소리로 환성을 질러대곤 했다, 1994년에 나는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근무하면서 그 첫 번째 시리즈였던 ‘금난새와 함께 떠나는 세계의 음악여행’을 그와 함께 기획하여, 홍보∙마케팅 및 공연진행을 담당했기에, 이러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기에 내게는 이 책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이 더욱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중음악에만 너무 탐닉하는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내게는 너무 먼 당신’ 쯤으로 여기고 있는 일반인들도 이 책을 읽고 클래식 음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덧붙이는 글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금난새 지음 / ㈜생각의 나무 펴냄 / 2003년 9월 30일 초판 1쇄 / 값 1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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