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불능화 진전 보이면"-미국 "완료된 뒤"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개시 시점 놓고 양국 입장차
▲ 26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비전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왼쪽부터)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기조연설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방안을 놓고 앞으로 관련 협상에 참여하게 될 4개국 가운데 북한을 제외한 당사국인 한국과 미국, 중국 정부대표가 한자리에서 각자의 구상을 밝혔다.
외교안보연구원이 26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개최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비전과 과제’ 세미나에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하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 닝푸쿠이 주한중국대사와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토론자로 나선 것.
3국이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원칙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 4자가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점 등 대체로 공통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협상개시 시점 등에서 한-미간 미묘한 입장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송민순 장관 "불능화가 가시적 진전 보이는 시점에서 협상 개시"
송민순 장관은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가 가시적인 진전을 보이는 시점에서 평화체제 협상을 개시하는 것을 목표로 직접 관련 당사자들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10.3 합의’에 따라 불능화가 올해 안에 완료될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송 장관의 발언은 ‘연내’ 협상개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버시바우 대사는 천영우 본부장, 닝푸쿠이 대사와 함께 한 토론회에서 “협상개시는 불능화와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 이후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점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능화 절차가 완료되기 전, 즉 ‘연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그 후에도 비핵화가 더 진전돼야 한다는 얘기다.
송 장관과 버시바우 대사의 견해가 이렇게 다른 것에 대해 3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닝푸쿠이 주한중국대사가 나란히 앉아 토론을 하고 있다. ⓒ 이병선
닝푸쿠이 중국대사 "합의할 수 있으면 빨리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먼저 천영우 본부장은 “협상개시는 모든 당사자가 합의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 전제하고 “비핵화 절차가 탄력이 붙으면 마지막 핵 폐기 단계에서 평화체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불능화와 신고가 완료될 무렵이면 언제든 협상을 개시할 수 있는 여건은 성숙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송 장관이 가시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미국은 불능화와 신고의 완료가 이뤄지기 바라는 것”이라며 “구체적 시기는 좀 더 조율이 필요할 것”이라고 앞서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닝푸쿠이 중국대사는 이 문제에 대해 절충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송 장관과 버시바우 대사가 서로 조금 다른 표현을 썼는데 비슷한 면도 있다”면서 “불능화의 ‘가시적 진전’ 보다는 ‘실질적 진전’이 이룩될 때 라는 표현은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그는 “중국은 이 문제에 신축성 있고, 개방적 입장을 취할 것”이라며 “4자가 합의할 수 있으면 빨리 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고 밝혔다.
송 장관 "종이 위에 그려진 평화 아닌 들판에서 일궈진 평화 추구"
송 장관의 이날 기조연설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정리된 정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송 장관은 먼저 “‘한반도 평화’는 단순히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라며 “우리가 추구하는 한반도 평화는 ‘종이 위에 그려진 평화’가 아니라, ‘들판에서 일궈진’ 평화이고, 손에 흙을 묻혀가면서 불신과 대립을 허무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평화체제 참가국과 관련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제로 지켜나갈 남북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미국과 중국은 53년 정전협정 체결 시 관여했던 지위를 반영하는 차원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는 형식이 될 것이며 유엔이 적절한 방법으로 이 체제를 지지하는 문제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 장관은 또 “평화체제가 수립된 후에도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면서 동북아 안보환경에 맞는 역할을 지속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주한미군의 유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특히 평화체제의 수립을 실질적 과정과 제도화 과정으로 나눠 “북미관계 진전과 남북관계의 확대, 심화라는 평화체제의 실질적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한 직접 관련국간 협의를 구체화 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설명했다.
송 장관은 마지막으로 “평화로의 여정은 과거와 같이 시도와 좌절이 반복되는 ‘시지프스의 고행’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번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목표에 도달하는 마라톤 평원의 완주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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