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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단풍 들었네~!

우리 동네 가을 이야기

등록|2007.10.27 16:03 수정|2007.10.28 14:48
내가 이 아파트에 산 지도 벌써 17년째다. 이 아파트는 1990년 입주가 시작되었고 입주할 때부터 살아왔으니 나는 입주자인 동시에 이곳 터줏대감인 셈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한곳에서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느냐"며 은근히 던지는 말에는 '발전성 없고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묻어나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이 참 좋다. 내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 많고 사람좋은 이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차량위에도 낙엽은 쌓인다. ⓒ 조정숙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났다. 아파트 화단 벚나무에 단풍이 빨갛게 든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곳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때깔이 고운 단풍잎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이 익어 가고 있구나'를 실감하면서 연방 빗자루로 낙엽을 쓸어 모으시는 아파트 관리아저씨께 "금방 뒤돌아서면 또 쌓일 텐데요, 모아서 한꺼번에 쓸지 그러세요"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낙엽이 많이 쌓여 있으면 미관상 보기 좋지 않기 때문에 낙엽이 쌓이기 전에 쓸어내야 한다"고 하신다.

나는 내심 낙엽이 쌓인 곳을 밟고 걸어보고 싶어서 건넨 말인데 말이다.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닌가 보다. 설악산이나 내장산을 가지 않아도 단풍이 지천인데 고생하며 멀리 떠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가을이 점점 익어간다. ⓒ 조정숙


3년 전부터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해왔던 나는 봄부터 겨울까지 변화하는 우리 아파트 모습을 뷰 파인더를 통해 보며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놀기 좋은 놀이터는 우리 동 1층 앞 화단이었다. 길을 가다 어쩌다 만나는 1층 할머니께서는 "요즘 우리집 화단에 보기 드문 야생화가 예쁘게 피었는데 찍어 보시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곤 꼭 덧붙이는 말씀이 "언제 전시회 할꺼유?"라고 하신다. 전시회를 하면 꼭 초대해 달라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어쩌랴 요즘 나는 작품 사진을 찍는 것은 뒷전이고 오마이뉴스에 빠져 있는 걸.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면 '어떻게 기사를 써야 많은 독자들이 보고 공감대를 가질 것인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니 작품 전시회를 기다리시는 할머니께 죄송스러울 뿐이다.

▲ 아파트 화단에서부터 봄부터 가을까지 피는꽃을 담았다. ⓒ 조정숙


무심코 베란다 창문을 여는 순간 국화향이 물씬 났다. 아래층 화단에서 나는 향기다. 국화 향에 취해 카메라를 들고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께서는 반갑게 맞으시며 "요즈음 국화향이 참 좋지요. 노랗게 익은 감 맛이 제대로예요. 하나 잡숴 보실라우"하시면서 감 바구니를 들고 나오신다. 국화 향기에 취하고 토실토실한 감에 취하고. 이렇게 좋은 곳을 어찌 떠날 생각을 할 수 있겠나. 1층에 사시는 노부부는 참으로 멋진 삶을 사시는 분들이다. 글을 쓰셨다는 할아버지께서는 이제는 연로하셔서 화단을 가꾸시면서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노부부는 삭막한 아파트 자투리땅에 화단을 만들어 봄부터 가을까지 예쁜 야생화와 갖은 꽃을 심어 나를 유혹한다. 그래서 봄을 알리는 사랑초, 참나리, 메발톱꽃, 백합에 이어 가을을 알리는 국화꽃이 필 때까지 화단에 꽃 잔치가 벌어진다.

▲ 1층에 사시는 맘씨 좋으신 할머니 ⓒ 조정숙



▲ 오래된 우리 아파트 화단은 보물 창고다. ⓒ 조정숙


▲ 벌,코스모스.메밀꽃 정말 잘 어울린다. ⓒ 조정숙

▲ 때 늦은 코스모스와 메밀이 함께 어루어져 있다. ⓒ 조정숙

▲ 감나무 아래서 뛰어노는 아이들 ⓒ 조정숙

 아파트 주변을 10분만 산책하다 보면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어우러진 곳이 있다.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이른 코스모스가 핀다. 요즈음같이 늦가을에는 메밀과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환상의 꽃 잔치가 펼쳐진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사이로 아이들이 연방 공놀이를 하면서 재잘댄다. 오래된 아파트면 어떻고 발전이 없으면 어떠랴.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내 이웃인 것을. 이보다 더 부자가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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