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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형' 기자회견의 떨떠름한 뒷맛

[取중眞담] 조용기 목사 고발 기자회견에 신도들 '적극' 참여

등록|2007.10.27 20:36 수정|2007.10.30 08:37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통상 기자회견은 주최 측이 현수막을 들고 길거리로 나오거나 회의장 등을 빌려 사전에 준비한 자료를 낭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기자회견장에서 오가는 전체 발언을 '100'으로 본다면, 참석자들 '70'에 기자들 '30' 정도라 할 수 있다. '시민기자'를 제외하고 그저 지나가는 행인들의 참여? 0.03정도랄까.

하지만 지난 26일 다녀온 기자회견은 달랐다. 기자회견을 보고 있던 시민들이 회견 현장뿐만 아니라 회견장 밖에서 '2라운드'를 여는 등 생생한 '시민 참여형' 기자회견이었다.

30분 기자회견 이후 일문일답 길어진 이유

▲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종추련)는 26일 조용기 순복음교회 당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종추련은 이에 앞서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고발 배경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민정

이날 회견은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이하 종추련)가 조용기 순복음교회 당회장(목사)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앞서 연 자리.

종추련은 "조 목사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오산리 일대 농지 및 대지 등을 매입하거나 증여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실명제'(부동산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종추련은 이어 "혐의가 뚜렷한 조 목사뿐만 아니라 혐의가 증명되는 종교계 인사들에 대해 추가로 고발할 예정"이라며 "종교계 재정의 투명화 등을 위해 '종교법인법'이 조속히 제정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종교계를 겨냥한 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는 당연히 신도들에게 눈엣가시일 터. 기자회견은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드(필명) 사무처장은 "기자회견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장로라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회견을 막겠다며 협박을 하고 있다"고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25일) 관련 기사를 보도한 기자에게는 '이드 사무처장의 정체 제보' 등 그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을 정리한 문서가 이메일로 발송됐다. 동일한 글들은 출력된 채 기자회견장에 배포되기도 했다. 종추련과 이드 사무처장에 대한 언짢은 기색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고은광순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법에 대해 정부나 국회가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한다"며 "조 목사만 고발하느냐는 항의가 있었지만, 우리는 종교인 관련 비리를 계속 고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건 기자회견도 아니고 토론도 아니여

고은 대표가 고발의 취지를 설명하고, 박광서 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주최측의 발언이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기자들의 일문일답 시간.

기자들의 질문 5개와 그에 대한 답변이 나간 뒤 잠시 흐르던 정적을 깨고 한 40대 남성이 손을 들었다. 자신을 "장로교신학대학 4년생이자 샛별교회 신자"라고 밝힌 이 남성은 갑자기 "사무처장이 왜 실명을 쓰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은 대표가 "필명을 쓰든 실명을 쓰든 그것을 자유"라고 받아치자, 그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종추련이 시민단체라면서 왜 시민은 없느냐"는 것.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등 공동대표가 7명인데 2명밖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그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다시 고은 대표가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저희 단체에 가입을 하면 회원이 된다"며 "질문 요지가 오늘 발표와 관계없는 것 같으니 앉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다시 터진 그의 세 번째 질문. 그는 "종추련이라고 종교 관련 단체인데, 사무처장 등 관계자들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대뜸 물었다. 일부 기자들은 "기자회견과 관련된 질문 중심으로 회견을 이어가자"고 불만섞인 제안을 내놓았다.

이드 사무처장의 향한 날선 질문이 이어졌다. 또 다른 남성이 발언권을 얻은 뒤 "고발인의 지위가 중요하다"며 "이드 사무처장이 예전에 작성한 글을 봤는데, '신념이 예수 소멸'이라고 썼다, 직접 작성한 글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드 사무처장은 "오늘 기자회견과 관계없지만 실제로 내가 썼다"면서 "지금 기독교가 건강하고 깨끗하다면 '박멸'이라는 용어까지 썼겠느냐, 그리도 그 표현은 앞뒤 말을 잘라서 일부만 갖고 나를 '박멸론자'로 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어느새 기자회견에 기자들이 낄 틈은 없어졌다. 자신을 '순복음 성도'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조 목사가 땅을 사면서 명의신탁을 한 이유는, 기도원은 협소한데 농지는 재단 명의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이드 사무처장은 "고발장이 들어가면 검찰이 조사할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기자회견은 점차 목사를 고발하는 주최측과 이에 반발하는 신도들의 찬반 토론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신도들은 "시민단체가 시민의 이야기를 들어야지, 왜 자꾸 말을 끊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일부 기자들은 노트북을 덮고 자리를 떴고, 한 기자는 "여기는 기자회견장"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적하던 지하 1층 기자회견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주최 측은 기자회견을 끝냈다.

실내 기자회견에 이어 실외 2라운드

▲ 종추련이 조용기 목사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끝마치자, 이에 반발한 기독교인들이 기자회견장 밖에서도 논쟁을 이어갔다. ⓒ 이민정

하지만 '장외 토론'은 계속됐다. 회견장 밖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던 신도들과 이들을 비난하는 박운양(38)씨가 맞붙은 것.

일부 신자들이 기자회견에 대해 회견장 밖에서 불만을 터뜨리자, 박씨는 "기독교인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니까 전체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는 것"이라며 "기자회견장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교인들 중에는 종추련의 행동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다"며 "일부 신자들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학을 공부했다는 박씨는 현재 '녹색살림배움터'라는 서대문구 지역내 공부모임을 운영중이라고 소개했다.

기자회견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은 박씨에게 "흥분하지 마시라"며 다독이기도 했고, 일부는 총총히 회견장 앞에서 사라졌다.

기자회견의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기독교 신자들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기자들을 밀어내고 질문을 쏟아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시민이든, 기자든, 질문을 하는 것은 항상 좋은 자세다.

하지만 그 질문의 함량이 문제다. "사무처장이 왜 실명을 쓰지 않느냐" "종교단체라는데 다들 종교가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은 그저, 심기를 건드리는 종추련이 연 기자회견에 소란을 피워보겠다는 취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본질이 아닌 곁가지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 목사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동시에 건전한 토론의 정착은 이성적인 찬반론자들의 몫이다. 이날 '시민 패널'들에게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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