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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아니라 기억 속에 담으세요!"

가을에 만난 단풍의 향연을 담으며

등록|2007.10.29 09:29 수정|2007.10.29 09:35
“아빠, 왜 단풍은 여러 가지 색깔이야?”
“음, 그건 말이야. 나무마다 제각기 꿈이 있기 때문이야.”
“나무도 꿈을 꿔?”
“그럼. 나무도 사람처럼 꿈을 꾸지. 가을 수채화처럼 맑고 고운 꿈을 꾸지.”


▲ 황금들녘 ⓒ 김대갑


딸아이는 함박 웃는다. 순진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가 아이의 얼굴에 흐른다. 그 얼굴 위로 가을 단풍의 미소도 살포시 흐른다. 계곡에 흐르는 비취빛 물줄기는 또 어찌 그리 투명한지.

▲ 계곡의 단풍 ⓒ 김대갑


딸아이와 함께 가을 단풍 여행을 떠났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계곡을 따라 산들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길을 떠났다. 배낭에는 향긋한 점심과 생수, 그리고 막걸리 하나 담았다. 딸이 먹을 과자도 잊지 않고.

▲ 노랗고도 빨간 단풍 ⓒ 김대갑


10여 분을 걸었을까? 발그속속하게 물든 단풍잎을 계곡 가에서 만났다. 그 단풍잎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민 계곡의 물은 에메랄드빛이었다. 물이 너무 맑아 그 어떠한 생물조차 살 것 같지 않았다. 그 물빛을 뒤로하며 다시 가기를 10여 분. 이번에는 계곡 사이로 노라발갛게 서 있는 소박한 단풍을 만났다. 계곡의 바위는 역광을 받아 순두부처럼 말갛게 빛나고 있었고, 작은 다람쥐들은 먹이를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 산봉우리의 단풍 ⓒ 김대갑

   

▲ 노랗게 물든 단풍 ⓒ 김대갑


본격적인 산행 길. 힘들어하는 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오르막길로 접어들기 30분. 녹의홍상으로 물든 산봉우리들을 연이어 만났다. 그 봉우리들에선 푸른 물감과 붉은 물감, 그리고 노란 물감이 은하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그저 말없이 그 풍경을 쳐다본다. 어느덧 아이도 그 풍경 속의 한 장면이 되고 만다. 그 풍경 옆에는 놀면한 자태로 하늘을 쳐다보는 단풍나무가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붉게 물든 단풍 ⓒ 김대갑

  

▲ 억새와 단풍 ⓒ 김대갑


붉게 핀 산 속의 단풍잎, 억새의 손짓을 받으며 노랗게 계곡수를 쳐다보는 단풍잎. 그리고 산행 길의 한 쪽에서 고운 처녀의 자태처럼 살포시 고개 숙인 단풍잎. 가을 수채화는 이미 아이의 머릿속에 완성되어 있었다. 아이는 말했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왜 사진을 찍어서 소중한 기억을 없애느냐고.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사진 속에 담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산행길의 단풍잎 ⓒ 김대갑


▲ 감나무 향기 ⓒ 김대갑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감나무에서 노란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그 노란 향기를 담고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 속에 가을의 수채화가 어려 있었다. 딸과 함께 떠난 가을 산행은 수채화의 여정이었다.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송고함. 10월 28일 울주군 대운산의 단풍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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