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없다, 버는 즉시 써버려!"
[해외리포트] 중국 소비시장의 왕으로 떠오른 '월광여신'들
▲ 한 미용숍에서 화장에 열중 중인 옌이란. 그녀는 전문 화장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명품 핸드폰 구입으로 삶의 에너지를 보충한다. ⓒ 모종혁
지난 25일 중국 충칭시 위중구 진잉여인상가의 한 미용숍. 옌이란(24·여)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부터 화장을 받고 있었다.
부동산 판매회사에 다니는 옌은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외모와 복장에 신경을 쓴다"면서 "가끔씩 스트레스도 풀 겸 미용숍에 와서 화장도 받고 손톱·발톱 메이크업도 받는다"고 말했다.
여인상가 내 한 옷가게에서 만난 우첸(21·여)은 친구와 새로 나온 유행의 옷을 고르기 위해 나왔다. 우첸은 연기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지만, 매일 밤업소에서 춤추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우는 "한 달에 8000위안(약 96만원) 정도 버는데 그 중 60%를 옷·구두·가방·화장품·피부보습제품·액세서리 등 미를 꾸미는 데 소비한다"고 밝혔다. 우는 "또래 여성들보다 많이 버는 편이지만 임대한 집세를 내고 교통비에다 먹고 마시는 데 쓰다 보면 달마다 남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옌이란도 "월수입은 1만 위안(한화 120만원) 안팎이다"면서 "명품 핸드백을 구입하는 것이 생활의 즐거움이기에 이래저래 소비하다 보면 저축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옌과 우는 중국의 전형적인 '월광여신'이다. 패션잡지 <시우With>에서 처음 등장한 이 유행어는 월급을 매월 다 써버리는 소비지향의 젊은 여성을 가리킨다.
<시우With>는 "저축은 뒷전이고 소비만 좋아하는 월광여신이 늘고 있다"면서 "월광여신들은 부모님이나 남자친구와 함께 생활하는 외동딸로 자신의 소득을 오직 본인을 위해 다 소비한다"고 보도했다.
지난 8월 중국 반관영 <중국신문사>는 "젊은 여성들이 중국 소비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소비자로 등장했다"면서 "중국시장에서 소비자의 왕으로 떠오른 여심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보도했다.
▲ 여인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와 여성을 위한 서비스숍이 몰려있는 진잉(金鷹)여인상가. ⓒ 모종혁
▲ 기성세대와 '80후 세대'의 비교. ⓒ LG주간경제
'월광여신'으로 자란 소황제들, 중국 소비패턴 주도
개혁개방 이후 중국정부는 한 가정 한 자녀를 골자로 한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 정책은 지난 30년 가까이 3억 명의 인구 증가를 억제했다.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은 부모와 조부모의 모은 애정과 금전을 한 자녀에게 집중시켜 '샤오황디(소황제)'를 탄생시켰다.
자신을 향한 온 가족의 관심 속에서 자란 샤오황디들은 심한 경쟁 속에서 이기적으로 성장했다. 1980년대에 태어나 '80후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이제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오늘을 즐기자(享受今天)', '나 자신을 사랑한다(世界上最愛自己)' 등을 유행시키는 80후 세대의 가치관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를 체험했던 기성세대와 전혀 다르다.
80후 세대는 과거 계획경제의 궁핍함과 사회주의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어릴 때부터 고도 경제성장의 풍요 속에 금지옥엽처럼 자랐다. 부모의 과잉보호로 자라난 전체 한 가정 한 자녀 세대는 중국의 소비패턴을 바꾸고 있다. 가정 소득과 무관하게 이들 세대는 자신 월급의 60~70%를 손에 넣자마자 바로 소비한다.
3월 21일 <LG주간경제>는 "휴대폰으로 랩 음악을 다운받아 흥얼거리고 패스트푸드에서 감자튀김을 즐기는 대학생, 구찌 가방을 들고 외출해야 폼 나는 직장 새내기, 세련된 패션에 재즈바나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며 서구스타일로 무장한 80후 세대가 중국의 소비패턴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LG주간경제>는 "80후 세대는 17~26세 사이의 대학생 직장 초년생으로 구성됐다"면서 "이미 중국경제의 왕성한 소비집단 중 하나로 떠올랐고 멀지 않아 소비의 핵심세력으로 소비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9월 7일 중국 <상무주간>은 '여성소비시대'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한 가정 한 자녀 세대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잘 알고 있어 더 이상 국가와 개인이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치에도 무관심하다"고 분석했다.
<상무주간>은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온 한 가정 한 자녀 세대는 개인주의 성향이 팽배하고 자아표현이나 성취에 대한 욕망이 아주 크다"면서 "자기만족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이들 소비자의 특징"이라고 보도했다.
▲ 한창 손톱 매니큐어를 받고 있는 한 여성. 최근 중국은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한 각종 서비스업이 성황 중이다. ⓒ 모종혁
여성 구매력 1800억 달러... 월수입의 60~70% '미(美)소비'
기자가 만난 바인옌(27·여)은 "오늘날 중국 젊은 여성은 자아추구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소비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라디오방송국에서 MC로 일하는 바는 "월수입이 8000~1만 위안에 달하지만 수입의 60%를 아름다움을 위해 투자하고 자동차를 굴리다 보면 남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바는 "부모님께서 마련해주는 집에서 살고 직업도 안정되어 경제 부담이 없다"면서 "풍족한 경제적 여건에서 살아오다 보니 생활 패턴을 바꾸기 힘들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예술사진을 찍기 위해 온 왕즈옌(23·여)은 "원하는 구두를 꼭 사고야 만다"는 구두 마니아다. 그동안 산 구두만 40여 켤레에 달한다는 왕은 "1000위안(약 12만원) 이상 하는 명품도 여러 켤레 있다"고 말했다.
왕은 "호텔에 다니면서 한 달에 1800위안(약 22만원) 정도 번다"면서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지만 생활비를 남자친구가 모두 부담하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1월 25일 중국정부의 의뢰를 받아 화쿤 여성생활조사센터가 20개 성시에서 조사·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월평균 수입이 4378위안(약 53만원)인 727명의 도시 직장여성들은 머리카락과 얼굴 미용을 위해 달마다 354위안(약 4만3000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직장여성들은 옷 3977위안, 신발 1761위안, 가방 1276위안, 시계 1749위안, 액세서리 936위안, 귀중품 6110위안 등 치장을 위해 2006년 평균 1만5809위안(약 190만원)을 소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화쿤여성생활조사센터는 "6대 대도시 젊은 직장여성들은 아름다움을 가꾸려는 의지가 아주 강하다"면서 "의류복식, 헤어·미용, 헬스·성형 등 '미(美) 소비'가 향후 소비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쿤은 "젊은 직장여성들의 73%가 신용카드를 소지하여 소비지출에 사용하고 26.4가 장기분할결제로 상품을 구매한다"면서 "도시 중산층 이상 가정의 43.6%가 신용카드로 자주 상품을 구매하는 '내일의 돈'을 쓰는 소비자층"이라고 지적했다.
▲ 예술사진을 찍고 있는 왕즈옌. 이번 사진 비용도 오른쪽에 있는 남자친구가 전액 지불했다. ⓒ 모종혁
▲ 2006년 계층별 유행성 소비의 금액 및 지출 내 점유비율(단위: 위안, %). 신입사원 및 젊은층, 학생은 낮은 수입에 비해 유행성 충동구매의 비율이 아주 높다. ⓒ KOTRA
축적부족·소비열중·무계획... 여러 사회문제 야기
9월 30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표한 보고서는 "중국 미혼여성들은 고급전문샵·백화점·슈퍼마켓 심지어 자동차시장, 전자제품매장에 나타나 각종 신용카드로 제품을 구매한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미혼 또는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없는 젊은 여성의 구매력은 2005년 1800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26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며 "이들의 구매 특징은 상품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높고 제품 이미지를 중시하는 까다로운 소비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젊은 여성들의 소비열은 여러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LG주간경제>는 "80후 세대는 소득 대부분을 고급 화장품, 미용, 명품 구입 혹은 향락에 지출한다"면서 "한 조사에서 저축을 한 푼도 하지 않는 비율이 28.7%에 달할 정도이며 수중의 돈보다 한 단계 수준 높은 생활을 영위한다"고 밝혔다.
< LG주간경제 >는 "젊은 세대가 가정으로부터 집중적인 경제원조를 받고 있어 미래 소득을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면서 "80후 세대는 축적부족(Accumulation Shorten), 소비열중(Tingled On Consumption), 계획성 없음(Making No Plan)의 'ATM세대'"라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후징(28·여)은 "번 돈을 외적인 아름다움과 소비생활에 모두 쓰다 보니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다"면서 "자연스레 배우자를 찾는 데에 있어 남성의 경제력을 먼저 따지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후는 "주변 친구 중 지나친 과소비로 구매한 상품 대금을 갚지 못해서 퇴근 후 술집에 나가거나 심지어 몸을 파는 사람도 있다"면서 "자신의 외모와 젊음을 돈과 바꾸려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송궈 선전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안락한 집에 살고 사고 싶은 상품을 사며 향락적인 밤 문화를 즐기는 등 경제적 만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권력자나 부자의 애인인 '얼나이'가 되려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급속도로 밀려드는 서구문화와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는 경제발전의 영향으로 물질적 풍요를 극도로 추구한다"면서 "젊은 여성들의 소비가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장점도 있지만 지나친 과소비로 각종 사회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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