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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처럼 뜨겁게

따뜻한 난로와 불이 확 붙은 연탄불이 그립다

등록|2007.10.29 19:30 수정|2007.10.30 08:10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따뜻한 난로와 불이 확 붙은 연탄불이 그립다.

어제(28일)는 장모님의 칠순잔치가 있어 처가에 갔다. 점심엔 마침 처조카가 마당에서 연탄불과 번개탄에 돼지고기를 구워줘서 여간 잘 먹은 게 아니었다. 마당에서 술을 먹자니 불어오는 찬바람에 소름이 끼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때는 연탄불로 다가가 손을 비비면 금세 전신까지 따뜻해져서 참 좋았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유가를 감당 못 해 집안의 거실에 연탄 난로를 들인 건 작년 이맘때였다. 올봄까지 잘 사용한 연탄 난로를 철거하면서 경유를 듬뿍 칠해 둔 덕분에 별로 부식도 되지 않아 지난주에 다시 거실에 연탄 난로를 들였다.

이제 김장에 이어 연탄을 400-500장 정도 광에 들이면 겨우살이 준비도 대충 끝날 터이다.

▲ ⓒ 홍경석



한겨울의 연탄 난로는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이런저런 대화의 마당도 되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동가홍상으로 정말로 오래 사용하고 있는 사진의 찜통에 아내가 쪄 주는 백설기와 송편 등의 떡은 동치미를 곁들이면 임금의 수라상조차 부럽지 않은 우리 집만의 화려한 파티에 다름 아니다.

이 찜통은 아들의 첫돌 때 평소 떡을 잘 빚으시는 장모님께서 수수팥떡을 가득해 가지고 오셨던 용기(容器)이다. 헌데 '시집 간 딸은 모두가 도둑'이라고 아내는 이 찜통을 그 당시부터 슬쩍 뒤로 챙기곤 여태껏 자신의 물건인 양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엉큼한 아낙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아무튼 나도 딸을 키우지만 딸이 무언가를 하나만 달라고 해도 아빠인 나로서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주고만 싶은 게 본심이다.

그래서일까…. 장모님께선 어쩌다 우리 집에 놀러 오셔서 문제의 찜통을 보셔도 달라고 하시질 않으시니 말이다.

하여간 이 찜통은 떡의 마술사다. 그래서 이 찜통에 곡식을 담아서 불에 찌기만 하면 근사하고 맛도 기가 막힌 떡이 척척 나온다.

아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겨울방학에 서울로 유학 간 딸도 집에 오는 때 맞춰 호박떡을 해먹겠다며 늙은 단호박을 사다 놓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장모님의 손을 탄 지가 얼추 10년은 되었다는 찜통이 우리 집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25년이 다 되었다. 돈벌이엔 영 젬병이자 허릅숭이인 이 못난 서방 탓에 지금껏 고생만 진득하게 하고 있는 아내를 보자면 늘 그렇게 묵직한 미안함이 명치 끝에 걸린다.

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는 있으니만치 우리도 언젠가는 잘 살 날이 도래하리란 믿음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작년의 은혼식에 이어 이담의 금혼식 때까지도 아내만을 사랑하리란 각오와 함께 찜통처럼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살리라 다짐해 본다.
첨부파일
.image. 찜통.jpg
덧붙이는 글 한겨레21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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