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따뜻한 난로와 불이 확 붙은 연탄불이 그립다.
어제(28일)는 장모님의 칠순잔치가 있어 처가에 갔다. 점심엔 마침 처조카가 마당에서 연탄불과 번개탄에 돼지고기를 구워줘서 여간 잘 먹은 게 아니었다. 마당에서 술을 먹자니 불어오는 찬바람에 소름이 끼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때는 연탄불로 다가가 손을 비비면 금세 전신까지 따뜻해져서 참 좋았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유가를 감당 못 해 집안의 거실에 연탄 난로를 들인 건 작년 이맘때였다. 올봄까지 잘 사용한 연탄 난로를 철거하면서 경유를 듬뿍 칠해 둔 덕분에 별로 부식도 되지 않아 지난주에 다시 거실에 연탄 난로를 들였다.
이제 김장에 이어 연탄을 400-500장 정도 광에 들이면 겨우살이 준비도 대충 끝날 터이다.
한겨울의 연탄 난로는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이런저런 대화의 마당도 되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동가홍상으로 정말로 오래 사용하고 있는 사진의 찜통에 아내가 쪄 주는 백설기와 송편 등의 떡은 동치미를 곁들이면 임금의 수라상조차 부럽지 않은 우리 집만의 화려한 파티에 다름 아니다.
이 찜통은 아들의 첫돌 때 평소 떡을 잘 빚으시는 장모님께서 수수팥떡을 가득해 가지고 오셨던 용기(容器)이다. 헌데 '시집 간 딸은 모두가 도둑'이라고 아내는 이 찜통을 그 당시부터 슬쩍 뒤로 챙기곤 여태껏 자신의 물건인 양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엉큼한 아낙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아무튼 나도 딸을 키우지만 딸이 무언가를 하나만 달라고 해도 아빠인 나로서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주고만 싶은 게 본심이다.
그래서일까…. 장모님께선 어쩌다 우리 집에 놀러 오셔서 문제의 찜통을 보셔도 달라고 하시질 않으시니 말이다.
하여간 이 찜통은 떡의 마술사다. 그래서 이 찜통에 곡식을 담아서 불에 찌기만 하면 근사하고 맛도 기가 막힌 떡이 척척 나온다.
아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겨울방학에 서울로 유학 간 딸도 집에 오는 때 맞춰 호박떡을 해먹겠다며 늙은 단호박을 사다 놓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장모님의 손을 탄 지가 얼추 10년은 되었다는 찜통이 우리 집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25년이 다 되었다. 돈벌이엔 영 젬병이자 허릅숭이인 이 못난 서방 탓에 지금껏 고생만 진득하게 하고 있는 아내를 보자면 늘 그렇게 묵직한 미안함이 명치 끝에 걸린다.
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는 있으니만치 우리도 언젠가는 잘 살 날이 도래하리란 믿음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작년의 은혼식에 이어 이담의 금혼식 때까지도 아내만을 사랑하리란 각오와 함께 찜통처럼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살리라 다짐해 본다.
어제(28일)는 장모님의 칠순잔치가 있어 처가에 갔다. 점심엔 마침 처조카가 마당에서 연탄불과 번개탄에 돼지고기를 구워줘서 여간 잘 먹은 게 아니었다. 마당에서 술을 먹자니 불어오는 찬바람에 소름이 끼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때는 연탄불로 다가가 손을 비비면 금세 전신까지 따뜻해져서 참 좋았다.
이제 김장에 이어 연탄을 400-500장 정도 광에 들이면 겨우살이 준비도 대충 끝날 터이다.
▲ ⓒ 홍경석
한겨울의 연탄 난로는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이런저런 대화의 마당도 되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동가홍상으로 정말로 오래 사용하고 있는 사진의 찜통에 아내가 쪄 주는 백설기와 송편 등의 떡은 동치미를 곁들이면 임금의 수라상조차 부럽지 않은 우리 집만의 화려한 파티에 다름 아니다.
이 찜통은 아들의 첫돌 때 평소 떡을 잘 빚으시는 장모님께서 수수팥떡을 가득해 가지고 오셨던 용기(容器)이다. 헌데 '시집 간 딸은 모두가 도둑'이라고 아내는 이 찜통을 그 당시부터 슬쩍 뒤로 챙기곤 여태껏 자신의 물건인 양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엉큼한 아낙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아무튼 나도 딸을 키우지만 딸이 무언가를 하나만 달라고 해도 아빠인 나로서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주고만 싶은 게 본심이다.
그래서일까…. 장모님께선 어쩌다 우리 집에 놀러 오셔서 문제의 찜통을 보셔도 달라고 하시질 않으시니 말이다.
하여간 이 찜통은 떡의 마술사다. 그래서 이 찜통에 곡식을 담아서 불에 찌기만 하면 근사하고 맛도 기가 막힌 떡이 척척 나온다.
아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겨울방학에 서울로 유학 간 딸도 집에 오는 때 맞춰 호박떡을 해먹겠다며 늙은 단호박을 사다 놓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장모님의 손을 탄 지가 얼추 10년은 되었다는 찜통이 우리 집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25년이 다 되었다. 돈벌이엔 영 젬병이자 허릅숭이인 이 못난 서방 탓에 지금껏 고생만 진득하게 하고 있는 아내를 보자면 늘 그렇게 묵직한 미안함이 명치 끝에 걸린다.
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는 있으니만치 우리도 언젠가는 잘 살 날이 도래하리란 믿음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작년의 은혼식에 이어 이담의 금혼식 때까지도 아내만을 사랑하리란 각오와 함께 찜통처럼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