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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인은 '테니스'양입니다

테니스와 아내... 건강 챙기고 삶을 한 수씩 배우고 있다

등록|2007.10.30 11:14 수정|2007.10.30 11:21
대학 다닐 때 테니스를 처음으로 접했다. 공을 쫓는 선수들의 움직임, 파트너와의 호흡, 라켓의 경쾌한 마찰음, 하얀 공의 곡선……. 그때 테니스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즐기는 운동으로 보였다.

'나는 언제쯤 코트에 설 수 있을까?'라는 기대는 기약 없이 '아웃'되고 말았다.

마음 한 칸에 접어 두었던 그 테니스를 다시 만난 곳은 경북 어느 시골이었다. 교사로서 첫 발을 내린 곳이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예상치 않게 그녀는 테니스에 일가견이 있었고, 나는 또 하나의 인연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우리는 그 시골학교에서 테니스코트를 만들었다. 그녀는 테니스의 기본기를 가르쳐 주었고, 나의 테니스 실력은 일석이조의 재미로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그 당시 걸음마를 막 시작한 나에게 그녀는 상당한 실력을 갖춘 고수로 우러러 보였다.

그렇게 시작해서 무릇 30년이 되었다. 삶의 반을 테니스와 아내와 동고동락해 온 셈이다. 이제는 아내보다 테니스에 더 애착을 가질지도 모른다. 다른 취미생활도 해보았지만 다들 꼬리를 내렸고 테니스만은 아직도 절친한 짝으로 지내고 있다. 찰떡궁합인 셈이다.

이 운동을 하는 동안 "테니스는 정말 못된 운동이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이 말에는 역설적인 면도 있지만, 테니스의 부정적인 면을 하소연했다. 동호인들이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말이다. 초보자라고 깔보고, 자기 잘 난 척하고, 파트너의 실수에 불만과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인, 아웃'에서 양보, 화해하지 않고 서로 얼굴을 붉힌다. 물론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 어떤 운동이 이만큼 피곤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어느 한 테니스 동호인이 위암으로 운명을 달리하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평소 게임 중에는 점잖은 편이었는데, 부인의 말에 의하면 게임이 지는 날엔 집에 와서 시큰둥하거나 짜증을 내곤 했단다. 이것이 확실한 원인이 될 수 없었겠지만 다분히 그분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었다. 사실 나 자신에게서 그런 증세를 느끼고, 스스로 실망한 적이 있었으니까.

부부 테니스 대회에 참가했던 때도 생각난다. 4강에서 맞붙은 젊은 상대는 우승 후보감이었다. 초반 엎치락뒤치락하던 중 남편의 잔소리가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다. 부인은 열(?)을 받았고 남편도 덩달아 짜증을 냈다. 그 후유증으로 우리 부부가 결승에 안착하는 득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남 탓'이 시합 후에 싸늘한 분위기를 만들곤 했다. 테니스대회가 부부애(愛)보다 오히려 부부증(憎)을 일으켜 부부 화목에 걸림돌이 된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렸다. 다행히 나의 경우 아내는 참고 잘 견뎌주는 편이었다.

그날 결승에서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주책없게 꼭 껴안는 야한 모습을 보여 주위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래도록 테니스에 빠지게 된 것은 이 운동만이 지니고 있는 강한 끌림 때문인 것 같다. 게임을 할 때는 어느 한순간 공을 놓치지 않고 긴장되어 있어야 한다. 잡념을 가질 수가 없어서 정신건강에 좋고, 순간순간의 타격에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 좋다. 단단해진 하체는 자신 있는 건강을 유지해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목욕 후 한 잔의 맥주는 서로 알싸하게 해주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 주기도 한다.

일상에서 생기는 사소한 갈등을 고려할 때 테니스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테니스의 높은 기량을 숙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배려야말로 삶과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자세일 것이다.

'못 된 반려자', 이 테니스를 통해 건강을 챙기고 삶을 한 수씩 배우고 있는 셈이다.

'파트너가 실수한 것은 내가 상대편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고, 내가 잘한 것은 파트너가 상대방의 허를 찔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코트에 나설 때 되새겨 볼 구절이다.

엄마와 아들이 A조, 아버지와 딸이 B조. 우리 식구는 복식 게임을 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딸의 기량이 좀 염려되지만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이런 게임을 자주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가족의 끈은 더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이 까탈스런 테니스를 마누라한테서 배웠습니다. 두 마리를 낚은 셈이지요"라고 하며, 아내는 나보고 "당신은 팔십까지 테니스를 할 거요. 심(힘)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께" 합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테니스를 두고 서로에게 알랑방귀를 뀌면서 살아간 답니다. 듣기가 좀 뭐하지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테니스 합시다.
덧붙이는 글 해운대 동백클럽회원 여러분, 25년 묵은 우리 동백코트가 재개발에 밀려 버린다지요. 그동안의 땀, 헐덕임,사랑이 배여 있는 우리의 '싸움터이자 안식처'가 말입니다. 동백을 사랑하고 테니스를 사랑하면 '모아 온 우정'으로 우리는 다시 딛고 일으날 것입니다. 역전의 짜릿한 맛 - 그 곳에는 혼신의 노력과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평소 절감했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동백과 테니스를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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