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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교육, '대학졸업고시'로 해결하자

초중고 때는 기반지식과 인성계발에, 대학 때는 학문에 집중하게 해야

등록|2007.10.30 12:02 수정|2007.10.30 13:02
생물학자 에델만은 어린 시절의 집중된 학습이 몇몇 뉴런 간의 상호연접을 강화시켜 해당 문제풀이에는 능통하지만, 반대로 풍부하고 다양한 뉴런 간의 연접을 억제해 창조력이나 고등차원의 문제해결에 큰 장애를 초래함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증명은 노벨 생리의학상으로 보답받았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의과대학생들은 수능 1%에 들 정도로 수재지만 해가 갈수록, 즉 과외가 점점 더 극성을 부리면서 학습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고 있음을 교육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있다. 


초·중·고는 집중된 학습의 시기가 아니라, 기반지식과 인성계발 그리고 사회화(인간화)의 시기이며, 대학에 가서 비로소 집중된 학문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선진국 교육의 전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와는 반대로, 대학을 노는 곳이나 전공불문하고 취직시험 준비하는 곳으로 여긴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토플점수와 졸업장이다. 중등교육에서 참혹한 입시전쟁을 거치면서 소수는 살아남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상처뿐인 영광만 안게 된다.

이러한 신경연접뉴런의 단순화 때문에 대학에서는 학문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어 무슨 대학을 나왔다는 명성만 호구지책을 삼게 되며 결국 학벌중시 현상이 만연하게 된다. 물론 그나마 이러한 입시전쟁에서 패배한 이들에게는 좋은 교육의 기회조차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평생 패배자의 심정으로 살게 된다.


상황이 이러니 대한민국의 백년대계가 걱정이다. 현재 당사자인 아이들의 고초는 말할 것도 없고 사교육비 때문에 가정마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러한 극심한 고초를 겪었으면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나 가정, 정부 어디도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가히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국가지만 순수 한국인이 학문 분야 노벨상 후보에 오른 적도 없을 정도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일본·대만·중국·인도·파키스탄 등이 학문분야 노벨 수상자를 낸 것에 비해 보면 축구 4강, 야구 4강, 올림픽 금메달 몇개는 오히려 낯을 뜨겁게 한다.

한편으로는 공공연히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하는 시대가 되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이러한 천박성이 이 나라 분위기며, 이 분위기는 아이들 인격성장에 막대한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겪는 입시라는 적대적 무한경쟁은 인격형성에도 해악으로 작용한다. 인격형성기인 어린 나이에 겪는 이러한 제로섬 경쟁은 그 사회의 긴장도를 높여 결과 위주의 사회 풍토를 조성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도덕성 파탄을 가져온다. 이미 우리는 이를 목하 겪고 있다.


이제 공교육은 와해됐으며, 학교는 하나의 제도나 독서실로만 존재하고 실제 공부는 학원이 대신하게 되었다.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극히 초반 경주(대학입시)로만 평가하고 결정 내리므로, 초반에 전력 질주를 안 할 수 없고, 결국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여, 인생후반의 마라톤은 당연히 부실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들 삶의 질의 무참함은 무엇에 비길 데가 없으며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염원은 그저 구호에 불과하게 된다.


3불정책, 본고사 부활, 논술 등등 무슨 방법을 쓰든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대학입시 나이인 19세에 인생 성패가 모두 결정되는 한, 여기(대학입시)에 대한 집착은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조삼모사다.


그렇다, 여기까지의 글은 누구나 공감하고 지적해온 것을 다시금 나열해 본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해결책인데, 해결책은 반드시, 언제나 문제점에서 출발하는 것이기에, 일단 우리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일별해 본 것이다.

초중등은 기반교육과 인성을 충실하게 하는 시기가 되어야 하고, 대학에서는 집중된 공부를 도모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해결책이라는 것이며 그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전공마다 대학졸업 시 학과별로 전국규모의 ‘고시’를 보게 하는 것이다. 대학간판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척도였던 것은 대학입시 이후에는 수능 같은 전국규모의 동시시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학 졸업 시 학과별 고시는 대학입시 연령인 19세보다, 5~6년 뒤인 성년의 시기로 미뤄지게 하는 효과를 낫게 한다.


19세까지는 학생본인의 목적이나 전망보다는 부모의 부의 정도와 의도가 대학을 결정하며, 작금 부의 세습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돈이 있으면 최고의 독선생 및 이른바 족집게 선생을 붙여서라도 웬만한 대학에는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졸업시는 성년기이므로 모든 결정이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이다.


이런 제도가 정착하면 취업 시에 예전처럼 대학졸업장을 제출하지만, 학과마다 고시성적도 함께 제출하므로 학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사라진다. 가령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여 최저의 고시성적을 받은 학생보다, 훨씬 못한 대학을 졸업했지만 고시 성적이 높으면 그가 더 능력 있음이 객관적으로 자명하기 때문이다. 19세 입시 때는 공부를 못했지만 졸업시인 25세 때는 더 공부를 잘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고1때 공부를 아무리 잘했어도 고3때 못하면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제도가 정착되면 대학이 대충 노는 곳이라거나, 전공은 그저 전공이고 취직 공부나 하는 곳이라는 폐단이 사라지며, 초중고의 사교육 열풍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의 과긴장 해소 및 가정경제에도 막대한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는 이것보다 더한 선물은 없을 것이며, 그제야 초중교의 공교육은 정상화 될 것이며 대학도 대학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종래의 조삼모사 식의 조변석개하는 제도가 아니라,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 같은 해결책 아닌가? 그러니 이쯤에서 이러한 ‘고시’제도의 예상되는 문제를 살펴보자.


첫째, 사설 학원경영이 어려워지고 과외선생님들의 생계가 막연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공교육의 현장으로 불러들여야 하지만, 제도의 대의에서 볼 때 이것이 문제점은 아니며 오히려 바라던 바다.


둘째, 고3시절 공부집중이 대학생활로 옮겨진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이것 또한 대학정상화를 위해 바라던 바다. 일부는 졸업고시를 위한 학원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고시는 전공마다 다르므로 지금 같은 학원 난립은 없을 것이다. 또 교수보다 잘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면, 오히려 교수들의 분발을 촉진하므로 좋은 일이다. 지금 고시를 치르는 의사, 약사, 간호학과 등등의 경우 졸업 시 이러한 고시를 치르지만, 그것을 대비하는 학원은 없음을 볼 때 이 또한 문제점은 아니다.


셋째, 과거 졸업정원제를 들어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졸업정원제와는 전혀 다르다. 졸업정원제는 각 대학별, 학과별 문제이며 교수의 재량에 의존하여 일부 학생을 탈락시켜야 하므로 심각한 학내문제를 초래한다. 졸업정원제에서 교수들은 졸업예정자의 심각한 위협에 노출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본 제도의 ‘고시’는 전국규모이므로 대학입시 같은 상징성을 가지며 객관적 척도가 된다. 그리고 학생의 졸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교수들의 학사부담도 전혀 없다. 단지 이러한 ‘고시‘성적이 공개되므로 대학 간의 선의의 경쟁이 촉발될 것이다. 이 또한 진정으로 바라던 바이다.


넷째,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나라마다 모두 역사와 환경이 다르며, 무엇인가는 언제가 처음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요즈음 문제가 되는 학위 위조자는 대학 내에서 실력으로 걸러졌어야 함에도 오히려 그들이 학위자들보다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것이 학위위조사건의 진정한 교훈이다. 몰론 해당 개인은 근거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언론들은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토지공개념이나 주식시장의 통제 및 순기능화는 수많은 이해 당사자의 반발이 예상되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없지만, 졸업고시제도는 일부 사설학원의 반대만 예상될 정도이며  모든 국민들은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입시에 시달리던 우리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선물은 없을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므로 국가의 강기이며 기강이다. 그러므로 교육이 바로 서면 모든 것이 결국 바로 설 것이다. 이제 이랬다 저랬다하는 장난꾸러기 교육정책은 원리적으로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문제를 진중히 살피면 답은 거기에 있다.

을지의과대학교 임종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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