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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가 생기면서 시가 다시 살아났다"

블로거들이 읽은 우리 시대 좋은 시 <아침에 시를 줍다>

등록|2007.10.30 14:42 수정|2007.10.30 17:38

▲ ⓒ 북인

유명 시인, 평론가들이 ‘댓글’을 달아 신문·잡지에 연재했다가 단행본으로 묶어낸 시선집들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블로거들이 읽은 우리 시대 좋은 시’를 모은 시선집 <아침에 시를 줍다>(조현석·한우진 엮음, 북인)가 출간됐다.

'블로그가 생기면서 시가 다시 살아났다'고 할 정도로 각 블로그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보여주는 시들이 반드시 몇 편씩 게재돼 있고, 이것이 이 블로그에서 저 블로그로 옮겨지면서 시가 제3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블로거들이 직접 올려놓은 시는 모두 특색이 있다. 블로거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서정이 강하기도 하고 서사가 강하기도 했으며, 이미지가 빼어나거나 음률이 뛰어나 마치 한 편의 그림을 보거나 경쾌한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또 자신이 선택한 시에 걸맞은 일기나 독백, 혹은 시인 지망생다운 사유의 폭을 넓힌 산문이 덧붙어져 있다.

조금 비약하자면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놓은 시인의 시와 또 다른 맛을 자아내는 한 편의 시를 맛보게 하거나 잘 짜여진 에세이를 읽게 만들었다. 인터넷 공간에 사는 블로거들이 읽어낸 우리 시대 좋은 시와 그에 대한 짧은 글은 여느 평론가나 시인들의 독법과 다른 차원으로 ‘새롭게 시를 읽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현역 시인인 엮은이들은 1년여에 걸쳐 여러 포털사이트를 뒤지면서 인용한 시와 댓글이 모두 알찬 블로그를 찾아냈다. 그리고 블로그의 주인들에게 연락해 7명으로부터 승낙을 얻고서 <아침에 시를 줍다>를 묶어냈다.

이 블로거들은 택배회사 운영자, 역무원, 첨단산업연구원, 소설가, 일간지 경제팀 기자, 공학도, 출판기획자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격식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지향하는 블로그 문화의 특성을 존중해 이들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엮은이들은 이 책을 ‘성형하지 않은 자연미인’이라고 한다. 블로거들이 출판의 기획에 맞춰 시에 대한 글을 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다운 시가 그렇듯, 시를 제대로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이 아름답고 진실할 때 드러난다는 것이다.

‘Travis_무허가 라틴어학원’이란 블로거는 소설가 김도언씨다. 그는 “소설가가 되기 전 시를 썼기 때문에 시에 대한 향수가 많이 남아 있고, 그래서 요즘 시를 따라가면서 읽고 블로그에 올린다”고 말한다.

"저 우울한 늪지대/빈손을 들면/미처 떠나지 못한 철새 한 마리가/절룩이며 날아오른다/다 펼치지 못한 날개 사이에 걸린 석양이/허무도 삶의 이유라는 것을 말할 뿐/때때로 갈대의 정체된 모세혈관을 깨우는 바람소리." (권경인 시 ‘삼십대’ 일부)

그는 이 시에다 다음과 같은 짧은 에세이를 붙였다.

"나 역시 삼십대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 돌올한 해협의 가운데에서 어지러운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때가 많다. 삼십대에게 허무는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유보하고 망설이는 것에 더 가까이 닿아 있다."

지하철 역무원인 블로거 ‘꿈의 공장’은 시 읽기의 성실함과 자세한 해설이 돋보인다.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도 있어요/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강정 시 ‘노래’ 일부)

댓글은 이렇다.

"어제 퇴근 길, 영풍문고에 습관처럼 들러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강정의 신작시를 필사해왔습니다. 자고 일어나 아침에 다시 읽어보니 지독한 반어법 투성이더군요. 근데요, 저는 이런 반어법 표기가 참, 맘에 듭니다."

이외에도 최승호의 '저녁 어스름',이윤학의 '오동나무 그늘',이대흠의 '소 떼가 사라져간 작은 구멍',박형준의 '시체의 악기',조말선의 '낭비' 등 시인 30여명의 시에 블러거들의 맛깔스런 촌평을 곁들여져 새로운 형태의 시 읽기를 보여준다.

엮은이들의 추천하는 블로그 주소는 다음과 같다.
꽃보듯 너를 만나다                              blog.naver.com/yommimi.do
Travis_무허가 라틴어학원                     blog.empas.com/drybook/
옛날다방                                            blog.joins.com/isomkiss/
飛나이다                                            blog.daum.net/binaida01
꽃에게 말을 거는 남자                          blog.joins.com/whitebee1
꿈의 공장                                           blog.empas.com/paran69/
Original Sound Track                             blog.naver.com/tjdls.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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