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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까맣게 타면 흑인이 된다고?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13]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

등록|2007.10.31 19:42 수정|2007.11.01 17:06

▲ 50시간을 타고 온 타자라역의 종점인 뉴카피리음포시. 역 앞에는 수도인 루사카를 비롯한 잠비아 각지로 떠나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 조수영


여행 14일째(1월 15일) 50시간을 달린 타자라 열차는 드디어 종점인 뉴카피리음포시에 도착했다. 뉴카피리음포시는 작은 도시이지만 타자라 열차의 종점이고, 쿠퍼 벨트 지역의 산출물들이 몰려드는 교통의 요지이다.

지도에 루사카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표시되지 않아서 우려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역 앞은 수도인 루사카나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승합차와 트럭·승용차가 손님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1인당 10불로 가격을 흥정하고 차에 올랐다. 이미 정원을 넘어선 것 같은데 차장은 한 사람의 손님이라도 더 태우려고 호객을 하고 있다. 통로까지 사람과 짐을 가득 채우고서야 가까스로 출발했다.

미니버스는 신호도 건널목도 없는 도로를 총알택시처럼 달린다. 간간이 루사카까지의 거리가 쓰인 표지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루사카로 가는 도로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도로 옆으로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 다른 길로 인신매매에 팔려가는 것이 아닐까 내심 불안했다.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큰 짐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것 같다.

볼 것 없는 루사카를 꼭 지나야하는 이유는

▲ 루사카 시내. 루사카는 1930년대 까지만 해도 그저 농사나 짓는 촌락이었다. 1931년 리빙스톤에서 이 곳으로 수도를 옮긴 후 북 로디지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1964년 독립을 하면서 잠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 조수영


▲ 잠비아는 세계적인 구리의 생산국이지만,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 구리의 주인은 영국인이었고 현지인들은 채굴 노동자로 일했을 뿐이다. 게다가 독립 후 독재정치와 부정부패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 조수영


200㎞의 거리를 세 시간 만에 질주했다. '뽈레뽈레('천천히'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아프리카에선 좀처럼 드문 일이다. 루사카의 시외버스 터미널은 국제 터미널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나미비아의 빈트훅으로 가는 버스도, 다음 목적지인 리빙스턴으로 가는 버스도 이 곳에서 출발한다. 

수도인 루사카는 잠비아 최대의 도시이지만 역사가 오래되지 않고 볼 거리도 그다지 많지 않다. 눈에 띄는 빌딩도 없고 박물관도, 또 다른 볼 거리도 없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에 들르는 이유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국경도시 리빙스톤으로 가기 위해서 중간 기착점이기 때문이다.

루사카도 케냐의 나이로비처럼 고도 1300m에 자리 잡은 고원도시이기 때문에 선선하다. 긴 기차여행의 피로도 풀고, 다음의 일정을 점검하기로 했다. 도시 이름은 마을의 추장이었던 루사카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볼 것 없는 루사카의 내키지 않는 시내구경에 나섰다. 루사카는 메인 거리인 카이로 거리를 중심으로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상점·대형마켓·여행사·은행들이 있다. 그러나 낡은 건물과 쓰레기들로 수도다운 매력조차 주지 못했다.

시내 동쪽으로 자리잡은 신시가지인 만다힐 쇼핑센터는 그동안 보았던 잠비아의 모습과 달랐다. 대형마켓과 다국적 은행과 기념품 가게, 화려한 카페는 마치 미국에 온 것 같았다. 주차장에도 형태가 온전하고 광을 낸 자동차들만 세워져 있다. 보드를 타는 아이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보인다.

이렇게 잠비아가 빈곤층과 부유층의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독립 후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겪는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빚과 질병, 그리고 부정부패와 잘못된 정치로 인해 중학교 사회시간에 ‘세계최대 구리 생산국’이라 열심히 외웠던 잠비아는 주민의 8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한 나라가 되었다.

인류의 조상은 흑인이었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 중 "새까맣게 흑인이 되어서 오면 어떻게 해?"라는 걱정이 여럿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왜 흑인일까? 태어날 때는 하얀 피부였는데 뜨거운 햇볕에 그을린 것일까? 모든 문제의 답은 진화론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래전 인류의 초기 조상은 오늘날 침팬지처럼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다. 그들은 열대우림을 떠나 사바나 초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사바나에서 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고, 이 과정에서 땀을 잘 흘려 과열된 몸을 효율적으로 식힐 수 있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다.

이런 과정에서 땀의 증발을 방해하는 두터운 털이 없어지면서 피부는 벌거벗게 됐다. 그러나 털 없는 피부는 햇빛, 특히 자외선에 취약했다. 결국 자외선을 흡수해 피부조직을 보호하는 수단이 함께 진화해야 했다. '멜라닌 색소'라는 흑갈색 햇볕 차단제가 그것이다. 결국 우리 조상은 털 대신 짙은 피부색으로 햇빛에 견디며 사바나의 주인이 되었다.

▲ 나미미아 스와코문트에서 만난 아이들. 흑인의 피부가 검은 것은 멜라닌 색소가 많기 때문이다. 저위도 지방 사람들에게 멜라닌 색소는 과잉의 비타민 D가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과잉의 비타민 D는 요로결석이나 담석증의 원인이 된다. ⓒ 조수영


▲ 루사카 쇼그라운드 지역에서 무작정 들어간 한 학교. 나는 아이들이 교복을 입은 것이 귀엽고, 아이들은 내 모습이 신기한가 보다. 자기네 말로 한마디씩 낄낄거린다. 사진도 찍고, 우리나라 돌차기 비슷한 놀이를 하며 한참을 놀았다. 헤어지면서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근데, 얘네는 방학 안 하나?" ⓒ 조수영


피부색은 왜 가지각색일까? 피부나 눈, 머리카락의 색은 멜라닌이라는 색소 때문이다.

피부 표면에 박혀있는 멜라닌 색소는 짙은 피부일수록 그 양이 많고 골고루 퍼져있다. 흑인의 잡티 없는(?) 검은 피부는 이 때문이다. 반면 피부색이 옅은 사람은 그 양도 적고 띄엄띄엄 분포한다.

햇빛은 피부에 닿아 비타민 D를 만들어 뼈와 피부를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구루병을 막아준다. 그러나 강한 햇볕을 너무 쬐면 피부를 검게 할 뿐 아니라 피부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햇빛 중 자외선의 작용이다.

우리 몸은 햇빛, 특히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멜라닌이라는 검은 색소를 만든다. 멜라닌은 자외선을 흡수해 이것이 체내로 들어가는 현상을 막는다.

멜라닌은 피부암 예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외선은 DNA를 손상시켜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만든다. 실제로 멜라닌 색소의 양이 적은 백인의 피부는 자외선의 상당량이 그대로 피부 속으로 뚫고 들어와서 피부암에 잘 걸린다.

멜라닌은 피부의 적이 아닌 '자외선 차단제'

15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현생 인류 즉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을 떠나 정처없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무렵까지 이들은 모두 흑인이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다양한 피부색은 불과 수만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인 셈이다.

햇빛이 강하지 않은 북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햇빛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멜라닌이 적게 들어있는 흰색의 피부로 진화해 갔다. 푸른 눈과 흰색의 피부는 멜라닌 색소가 적어 햇빛에 있는 자외선이 체내로 잘 흡수되게 하고, 자외선은 몸 속에 비타민D를 만들어 칼슘이 뼈로 흡수되는 현상을 돕는다. 따라서 이들은 햇빛이 약한 환경에서도 튼튼한 뼈를 가져 생존에 유리했다.

반면 갈색 눈과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고위도 지방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들의 멜라닌 색소가 자외선을 거의 흡수해버려 체내에서 비타민D가 생기는 것을 막아버렸다. 따라서 이들은 뼈가 약해져 생존에 불리했다.

거꾸로 적도 지방에서는 푸른 눈과 흰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적도 지방의 강한 햇빛에 견뎌내기엔 이들의 피부가 너무 약했다. 멜라닌 색소의 양이 적어 많은 양의 자외선이 몸속으로 바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강한 햇빛을 받아 피부질환에 걸리기 일쑤였다. 갈색 눈과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은 충분한 양의 멜라닌 색소가 피부를 보호했다. 한 마디로 적도 지방 사람들은 강한 햇빛에 적응해 살아남은 이들이라 할 수 있다.

▲ 루사카로 가는 길에 만난 '비누돌' 파는 소년. 물에 적시면 거품이 난다고 해서 샀는데… 속았다. 가르쳐준 대로 얼굴을 문질렀다면 큰일날 뻔 했다. 목욕탕에서 발꿈치 각질제거하는 데나 쓸 법하다. ⓒ 조수영


그렇다면 알래스카처럼 고위도 지방에 정착한 에스키모들이 가장 흰 피부색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와 비슷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해답은 이들의 전통적인 식단에 있다. 에스키모들은 날생선이나 날고기 등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을 먹어왔다. 따라서 햇빛을 통해 좀 더 많은 비타민을 만들 수 있는 흰 피부가 생존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과 호주 원주민은 비슷하게 짙은 피부색을 띠지만 지구상의 어떤 인종보다도 서로 공유하는 유전자가 적다. 반면에 유럽의 백인과 아프리카 흑인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촌 간이다.

'살색'에서 '살구색'으로, 말은 바뀌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지구상의 다양한 피부색은 햇빛이 강한 저위도에서는 짙은 피부색이, 약한 고위도에서는 옅은 피부색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생긴 적응 현상일 뿐이다. 우월한 백인과 열등한 유색인이라는 이분법은 생물학·진화론적 근거가 없는 엉터리 관점일 뿐이다.

얼마 전 크레파스의 '살색'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달라는 국내 거주 외국 근로자들의 탄원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살구색'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지만 우리도 알게 모르게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나 보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들과 만날 때 피부색은 피부가 햇빛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어떨까.

흑인들은 왜 곱슬머리일까?

▲ 나미비아 사막에서 만난 아이들. 여행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은 좋은 선물이 된다. 첨엔 두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이것을 본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부부사진 가족사진까지 찍어주는 바람에 필름 한 통을 다 써버렸다. ⓒ 조수영


우리와 같은 황인종은 직모인데 비해, 흑인의 머리카락은 극한의 곱슬머리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머리카락 단면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의 머리카락은 단면이 원형에 가깝다. 굵고 고르며, 머리 위에 거의 수직방향으로 심어져 있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모가 많다. 황인종 중에 곱슬머리도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다.

백인종의 단면은 타원이다. 타원은 골고루 힘을 받지 않기 때문에 휘어지기 쉽다. 그래서 백인종의 머리카락은 대부분 부드러운 곱슬머리이다.

흑인종의 단면은 백인종보다 더 납작한 타원이다. 그래서 흑인의 머리는 극한으로 구부러진다. 게다가 고르지 못하게 심어져 있어 근처에 있는 다른 머리털과 엉켜버린다. 두피 표면과 평행을 이루고 자라기 때문에 엉킨 머리가 구부러져 두피를 자극한다. 흑인 남성들의 상당수가 머리를 밀어버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뜨거운 날씨에는 곱슬머리가 제격

그렇다면 왜 흑인들의 곱슬머리는 어떤 역할을 할까? 우리가 걸을 때 가장 먼저 햇볕을 받는 곳이 머리다. 곱슬머리는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차단하고 체열을 빨리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쬘 때, 머리카락이 서로 뒤엉킨 흑인의 곱슬머리는 머리카락 사이에 공기구멍이 많은 스펀지처럼 단열 공기층이 형성되어 단열재의 구실을 한다. 여름에 웨이브머리가 시원하게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태양광선이 머리 피부에 도달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머리를 보호해 주고, 또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머리 피부에서 나오는 땀을 효과적으로 증발시켜 머리를 빨리 냉각시킨다. 뜨거운 햇볕과 자외선에 적응하기 위해 멜라닌의 양이 변화되었듯이, 머리카락 또한 높은 기온의 환경에서 체온이 급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진화하였다.

물론 피부의 땀샘 수도 500만개로 온대 지방 사람들의 두 배 정도다. 이런 면에서 볼 때는 꼭 직모만을 원할 일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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