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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잣대로는 이명박 후보도 범죄자다

[민교협·민변·작가회의 릴레이 기고 ⑩] 왜 다시 국가보안법인가

등록|2007.10.30 16:03 수정|2007.10.31 10:21
민교협·민변·작가회의.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세 단체가 뭉쳤다. '지식인 공동 행동'이라는 의지를 담아 남북정상의 10·4 합의문에서 제시된 '통일 지향적 법제도 정비 대상'으로 꼽히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공론의 장에 내놓았다.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가 출발하면서 개폐 움직임이 일었지만 보수측의 반대로 개폐 시도는 무산됐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단체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한반도가 전쟁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상징의식. ⓒ 권박효원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갈등을 주제로 삼은 최근의 한 토론마당에서 나는 매우 충격적인 장면에 직면했다.  국가보안법을 존치해야 한다는 보수논객의 발언이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 발언의 요지는 이러했다.

"북한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세계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미국에 대해 저항하고, 핵무기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인민의 일상적 삶에서 어려움을 덜어줄 정책은 펴지 않으면서, 남쪽에 대해 끊임없이 억지를 부리며 퍼주기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서는 전쟁을 해서라도 응징을 해야 한다.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적화통일에의 길을 열어주는 것에 진배없다.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는 것은 대북항복선언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의 충정을 그 발언의 내용을 넘어 이해한다.  통일을 하더라도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을 해야 하고, 대북원조를 하더라도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떳떳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국보법 폐기는 대북항복선언?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여기서 나는 그의 논지에 대해 하나하나 반론할 생각이 없다. 다만, 북쪽의 정치체제가 제대로 된 근대극복의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중세회귀의 인격적 통치에 가깝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는 주관적 사실, 그리고 북쪽의 군비가 남쪽에 비해 적어도 강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금의 시점에서 남쪽에 대해 무력도발할 능력이 없다는 객관적 사실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통일은 민족사의 맥락에서 필연적인 미래과업이고, 통일 이후 사회는 주민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는 평화공동체가 돼야 할 터이다. 서로가 죽고 피흘리는 전쟁을 통해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북녘 동포를 노비로 삼아 살고자 하지 않는 한 이 땅에서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복수극은 다시 복수극을 부른다. 원수 갚기로는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 원수 갚기는 함께하는 삶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무엇보다 전쟁의 참화를 예방하는 데 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이 점에서 지금까지 크게 기여해왔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정과 농업/조선/보건의료/환경보호 협력사업들은 앞으로 더욱 큰 성과를 산출할 수 있다. 

국가안보의 진정한 힘은 군대의 규모도 아니고 핵무기도 아니다.  9·11사태는 인류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평화학의 건설자 요한 갈퉁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디 윌리암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국가안보는 군사력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평화 속에서 화해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공유하는 것, 그보다 나은 사회안전-국가안보의 방법은 없습니다."

"용산에 미군부대가 있다"고 하면 '국가기밀누설죄'?

국가보안법은 잘못 태어난 악법이다. 1948년 12월 처음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국권침탈기 1941년 제국주의 일본이 만든 '치안유지법'을 모본(母本)으로 만든 법이다. 치안유지법은 일제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강압지배에 저항하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다.

국가보안법은 독재정치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양심적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선량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률이다.

예전부터 형벌시행에서 긴장되게 유념해야 할 금과옥조가 있다. "백 사람의 악행을 처벌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억울한 처벌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보안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법률이다. 민족자주의 방식으로 평화롭고 민주적인 민족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희구하고 실천하는 언행을 간첩행위로 처벌할 수 있고, "용산에 미군부대가 있다"는 만 천하가 아는 말을 해도 '국가기밀누설죄'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법률에 의한 형벌은 타인과 사회에 대해 직간적으로 위해를 끼치는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타인을 죽이거나 상하게 하는 것, 남의 재화를 빼앗거나 훔치는 것, 국가사회를 혼란이나 위험에 빠뜨리는 것 등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대표적인 행위에 속한다. 

그러나 행위로 드러나기 이전의 생각이나 느낌·의도나 소망은 그 내용이 살인·상해·강도·절도·방화·변란 등 명확히 법죄적 성격을 지닌 경우에조차 형사처벌의 사유가 될 수 없다. 

더욱이, 자유로운 삶의 희구나 동료인간들과의 공동행복을 향한 모색은 마음 속 역동에 머물지 않고 실천운동으로 나아가는 경우에도 범죄를 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칭송받아야 할 행위에 속한다. 

남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의지와 행동에 대해 징벌하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라 하기 어렵다.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이나 느낌, 그것도 남들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화평과 사랑으로 어울려 사는 올바른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이다. 

민주인사에게는 철퇴, 권력자에게는 박제화된 장식품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국가보안법은 정치적으로는 실효성을 상실한 박제화된 법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지난 10일 차기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호혜 원칙에 의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한민국 영토에서 회담을 할 차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대로 따지면, 헌법 제3조 대한민국 영토 규정을 부정하고 국가보안법 제2조 규정에 의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영토를 지닌 국가로 인정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어찌 이명박 후보 뿐일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모두 국가보안법 제4~9조의 범법행위를 두루 행한 사람들로서 국가보안법을 일반인과 평등하게 적용한다면 무기징역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야 할 낡은 유물"이라고 규정했다가 "한나라당과의 연립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면 그 폐지를 몇 년간 연기할 수 있다"고 후퇴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의 말대로 원칙에 충실한 민주적 국정운영이야말로 복잡미묘한 술수와 치열한 힘겨루기로 추진하는 정계재편보다 훨씬 강력하고 효과적인 지지획득의 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술수를 통해 구차하게 이루는 정권의 획득이나 유지보다 정의를 위해 당당하게 고통받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올바르고 보람된 일이다. 이제 대충 물 건너간 사안이 되고 말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야말로 노무현 정권이 이룬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인간본성을 해치고 양심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법률, 의미의 혼란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며 국민의식을 혼미하게 만드는 법률, 정의를 향한 정열과 투쟁을 잠재우는 법률, 헌법 위에 서서 헌법을 무효화하거나 하위법으로 떨어뜨리는 법률, 억압자들을 인간에서 동물로 추락시키는 법률, 문명사회의 희소한 야만적 규범으로 남아 있는 법률,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이다.


민주화의 실질적 진전을 향한 의지나 민족화해-인류평화를 향한 염원을 공동행동으로 펼쳐나가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같이 힘써야 할 공동의 과제다. 이러한 시대사회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적 향유를 유보하거나 축소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보내는 장치가 국가보안법이다. 

순진하고 정직한 사랍들이 가볍게 다투다가 무심코 뱉는 "빨갱이보다 못한 놈"이라는 욕 한 마디로 몇 년간 교도소에 갇혀 살게 만드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행동을 규제하고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는 비열한 억지규범이 국가보안법이다.  대한민국이 문명국 이전에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

실정법의 기본요건을 결여한 상식 이전의 법률


국가사회가 안정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 남들을 고통과 불행에 빠뜨리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 규칙을 위반하는 일이 발생할 때 입법·사법·행정의 각 국가기관은 그 행위자에 대해 타자들과의 관계로부터 격리시키는 징벌을 가한다.  그 징벌의 규약이 법률이다. 

징벌을 규정하는 법률은 그 제정-유지-집행의 전 과정에서 의미해석의 모호함을 배제할 만큼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명문조항 규정 이상으로 확대되어 적용되지 않을 만큼 제한적이어야 하고, 행위자의 신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만큼 평등해야 하며, 유사한 사건들에 대해 엇갈린 방향의 잣대로 작용하지 않을 만큼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명확성-구체성-제한성-일관성은 법규일반이 갖춰야 할 근본적 속성이다. 입법-행정-사법 기관은 법률을 제정-집행-수호하는 각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식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엄밀히 말해 권력기관들의 공무집행은 총체적-원칙적으로,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적 행위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기관들의 임무수행은 권한의 행사이기 이전에 의무의 수행이다. 

위에 적힌 명제들은 법철학의 기본이자 문명사회의 상식에 속한다. 이토록 문화적 삶의 기초에 해당하는 원리적 규범이, 따라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어겨서는 안 될 사회생활의 기본 원칙이,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엄존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이 경제강국을 넘어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면, 그리고 갈등-대결의 장벽을 뚫고 화해-협력을 통한 남북평화 수립과 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보법 철폐는 필수적 요건이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민교협 소속의 유초하 교수(충북대 철학과)가 쓴 글입니다. <오마이뉴스>가 10월 한달 연재한 '왜 다시 국가보안법인가' 기획은 이것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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