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플루토늄 50㎏', 북핵회담 새로운 태풍의 눈 부상

[심층진단] 폐기할 플루토늄은 얼마? 15년전 '불일치' 악몽 되살아나나

등록|2007.10.31 11:39 수정|2007.11.26 17:00

▲ 지난 2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6자회담 경제-에너지협력 실무그룹회의를 시작하기 앞서 각국 수석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병선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신고해야 할 플루토늄의 가이드라인을 잇따라 제시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10월 3일 미국의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신고하고 폐기해야 할 플루토늄 양은 50㎏이라고 말한 데 이어, 16일 호주 시드니 연구소 연설에서도 '50㎏'이라는 말을 수 차례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6자회담 및 북미회담에서 '플루토늄 50㎏'이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연내 신고할 예정인 플루토늄 양이 이 수치와 비슷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한참 못 미칠 경우에는 1990년대 초반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까지 몰아넣었던 '불일치 문제'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의 핵협상에 불만을 품고 있는 미국 내 강경파들은 북한이 신고한 분량이 50㎏에 못 미치면, 이를 대반격의 근거로 삼을 것을 불을 보듯 뻔하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말을 상기시키듯, '플루토늄 50㎏'이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최대 복병으로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10월 24일 한 강연에서 "현재 북은 45㎏ 안팎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제시한 분량과 5㎏의 차이가 난다. 5㎏이면 핵무기 1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앞으로 한미간의 협의가 중요한 대목이다.

재처리된 플루토늄인가?  

우선적 관심사는 미국이 제시한 50㎏이 폐연료봉에 남아 있는 양을 포함한 플루토늄의 '총량'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한 분량'을 의미하느냐이다.

만약 미국이 말한 플루토늄 양이 북한이 보유한 총량을 의미한다면, 불일치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그러나 그것이 재처리가 완료된 무기급 플루토늄을 의미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힐 차관보는 16일 시드니 연구소 연설에서 "분리된 플루토늄(separated plutonium) 50㎏" 표현을 썼다. 분리된 플루토늄이란 원자로에서 사용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핵분열 물질, 즉 Pu-239가 93% 이상인 플루토늄을 의미한다. 통상 이를 두고 '무기급(weapon-grade) 플루토늄'이라고 일컫는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제시한 50㎏에 북한이 핵실험 당시 사용한 분량을 제외한 것인지의 여부이다. 제외한 양이 50㎏이면 상대적으로 불일치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포함된 양이면, 북한이 신고할 분량과 미국이 제시한 분량과 사이의 간극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저명한 핵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 및 국제안보 연구소(ISIS) 소장은 2007년 2월 북한을 방문한 직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작년 10월 핵실험에서 사용한 5㎏ 정도의 플루토늄을 제외할 경우,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 총량은 46~64㎏이고, 이 가운데 재처리된 플루토늄은 28~50㎏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핵전문가들의 추정치도 이와 비슷하다.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 양은?

▲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연합뉴스


그렇다면 북한은 플루토늄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북한의 플루토늄 프로그램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전에 추출한 분량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90년대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실험용으로 90g 정도 추출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IAEA와 미국의 정보기관은 89년부터 91년까지 북한이 재처리한 분량은 10㎏ 안팎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미국의 정보기관은 북한이 IRT 실험용 원자로에서도 1~2㎏ 정도 추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제네바 합의 이전에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 분량을 10-12kg 정도로 보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90g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15년 전에 불거졌던 불일치 문제가 앞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큰 변수로 등장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 단계는 2002년 10월 2차 핵위기가 터진 이후 북한이 재처리에 들어간 8천여개의 폐연료봉에서 추출한 플루토늄 양이다. 이들 연료봉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수조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북미간의 갈등으로 제네바 합의가 깨지자 북한은 재처리에 들어갔고, 2003년 여름경에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업 손실률에 따라 추정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8천여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북한은 20-28kg 정도의 플루토늄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2005년 4월경부터 재처리에 들어가 추출한 플루토늄이다. 북한은 2003년 초부터 5MWe 원자로를 재가동해 2005년 4월경에 연료봉을 교체하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추출할 수 있는 플루토늄은 13-17kg 정도이다.

끝으로 2005년 6월부터 2·13 합의 직전인 2007년 2월까지 가동한 5MWe 원자로의 연료봉에 포함되어 있는 플루토늄이다. 이들 연료봉에는 10~13㎏ 가량 플루토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북한은 아직 이들 연료봉을 재처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 총량은 51~69㎏이고, 재처리가 완료된 무기급 플루토늄은 33~55kg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핵실험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5㎏ 정도를 제외할 경우, 현재 보유하고 있는 분량은 각각 46~64㎏, 28~50㎏ 정도이다.

불일치 문제는 재발할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불일치 문제는 재발할 것인가? 우선 중요한 것은 50kg의 범주를 따져보는 것이다. 힐 차관보가 말한 것처럼 50㎏이 재처리된 양을 의미하고, 핵실험 때 사용한 양이 제외된 것이라면 불일치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여기서 50kg은 북한이 1990년을 전후해 추출한 플루토늄 양이 10㎏이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재처리되지 않은 분량과 핵실험 때 사용한 분량이 포함된 것이면 불일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핵실험 때 사용한 5㎏ 안팎의 분량을 제외하더라도 북한의 플투토늄 보유 총량은 46~64㎏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어느 정도 분량의 플루토늄을 신고하느냐에 모아진다. 일단 제네바 합의가 파기된 2003년 이후에 추출한 플루토늄 분량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업손실률에 따른 오차 범위, 핵실험에 사용한 분량, 핵무기화한 플루토늄의 분량 등을 놓고 이견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다.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전'의 추출량이다. 우선 힐 차관보가 50㎏이라고 말했을 때, 이는 1990년을 전후해 북한이 추출했다고 확신하는 10㎏ 가량도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미국 정보기관이 내린 일관된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당시에 추출한 양이 100g을 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최악의 조합은 북한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미국이 말한 50kg이 재처리된 플루토늄이자 핵실험 사용량이 포함되지 않은 것일 때 발생한다. 이 조합에서 북한이 신고할 플루토늄 양의 범위는 28~40㎏인데 최대치를 신고하더라도 미국이 말한 50kg과는 10kg의 차이가 난다. 플루토늄 10㎏은 핵무기 두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이러한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질 수 있다. 15년전의 진실을 둘러싸고 북미간의 치열한 공방이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핵협상의 불만을 품고 있는 미국 내 강경파들이 대반격의 호재로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경파들은 북한이 시리아 등 다른 나라나 테러집단에게 플루토늄을 판매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해 북한이 시리아에 제공한 핵물질을 확보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알기 어려운 10㎏의 플루토늄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악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증은 어렵다

불일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검증을 통한 진실 확인이다. 문제는 북한의 과거 핵활동(1990년 전후)을 검증하기가 대단히 까다롭고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점에 있다.

우선 과거 핵활동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비롯한 전면적 핵사찰이 요구된다. 북한이 이를 주권침해로 간주했던 사례를 떠올려보면 검증 방안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북한이 전적으로 협력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IAEA의 고위 관리는 북한이 IAEA에 전적으로 협력하더라도 사찰을 종료하는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고, 또 다른 관계자는 IAEA가 북한 핵 활동의 정보에 대한 손실을 만회하는 데에만도 7~8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로는, 검증팀이 북한과 핵사찰 범위를 협의하는데 수개월, 특수장비들을 제조하고 설치하는데 1년 정도, 핵사찰 수행에 2~3년 정도, 최종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수개월이 걸린다는 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검증의 정치적, 기술적, 시간상의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는 상당히 지체되거나 좌초될 수도 있다.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불일치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 선택의 핵심은 검증을 통한 진실규명을 다른 사안과 연계시킬 것인지, 아니면 분리하되 지속적인 해결책을 추구할 것인지에 있다.

연계를 시킨다는 것은 불일치 문제가 해소되기 전까지 경수로 제공,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핵심적인 상응조치의 제공을 늦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행동 대 행동'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북한 역시 핵폐기를 지연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현명한 접근법은 아니다.

과거 핵, 지속적인 해결 추구해야

따라서 플루토늄 문제 해결을 두 단계로 나눠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상대적으로 문제 해결이 용이한 2003년 이후에 만들어진 플루토늄부터 폐기하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과거 핵활동을 말끔히 해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IAEA 추가의정서에 서명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IAEA 추가의정서에 서명하면, 사찰 대상은 신고 시설뿐만 아니라 의심 시설까지 확대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IAEA는 우라늄 광산, 핵연료 생산시설 및 농축 시설, 그리고 재처리 결과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등 북한의 전체 핵주기에 대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핵활동에 대한 높은 수준의 검증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신속한 해결은 어렵지만, 지속적인 해결은 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15년 전 한반도를 전쟁위기로까지 몰아넣었던 악몽은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분량과 미국과 IAEA가 추정한 분량 사이의 '불일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악몽이 재현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치밀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