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네 놈은 반드시 내손으로 죽일 것이다

추리무협소설 <천지> 301회

등록|2007.11.01 09:04 수정|2007.11.01 09:06
“성곤께서… 시킨…일이냐?”

물론 다른 마음을 먹거나 배신을 했다면 몰라도 성곤이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는 인물이 바로 창월이다.

“그렇소… 이유는 모르오.”

“나쁜 놈… 감히 네 놈이 대주의 몸에…?”

진운청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이라도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한 창월의 무공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아무리 등 뒤에서 기습을 했다지만, 또한 창월이 이런 짓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아 경계심이 없었다지만 기척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좌등까지 당한 것을 보면 혈간의 등허리를 벤 것은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용서를 빌겠소. 소생은 어르신의 말씀을 따를 뿐이오.”

좌등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자신 역시 보주가 지시했다면 누군들 베지 못하랴! 만약 성곤을 베라고 해도 그리 했을 것을…. 좌등은 창월을 이해했다. 다만 보주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이해해주었던 성곤마저 배반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허나 좌등은 문득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부질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추태감이나 상만천이야 목적이 있다고 하지만 철담과 함곡이 계획했던 거사는 그저 그들의 야욕을 막으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보주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동참했고,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움직여 왔다. 허나 과연 보주를 위한 길이었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보주는 그저 조용히 이곳을 떠났으면 하는 것뿐이다. 이제 인생의 말년에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을까?

좌등의 몸이 더 이상 앉아서 지탱하지 못하고 뒤로 서서히 넘어갔다. 갑작스런 상실감이 그를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게 만든 듯했다.

“대주…!”

진운청이 외치며 달려들기 전에 창월이 좌등의 몸을 부축해 머리가 땅바닥에 박히는 낭패는 면하게 해주었다.

“이제 어찌할 셈이냐…!”

진운청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있었는데 검마저 부르르 떨고 있었다.

“좌총관어른과 진형은 이제 술래잡기 놀이에서 배제되었소. 진형께서는 좌총관어른의 상처를 돌봐주시오. 생사림 밖까지 모셔다 드리리다.”

말과 함께 창월이 옆으로 몇 발자국 물러서자 진운청이 좌등에게로 다가들었다.

“대주…!”

“괜찮아… 사람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다른 법이네.”

진운청은 좌등을 돌아 눕혀 놓고 지혈을 시켰다. 그리고는 금창약을 바르면서 창월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네 놈은 반드시 내손으로 죽일 것이다.”

진운청의 살기 어린 말에도 창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씁쓸한 고소가 그의 입가에 떠오르고 있었다.

--------------

진기가 고갈된 몸으로 옥청문 형제의 공격을 치명적인 상처 없이 이십여 초나 견뎌낸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허나 옥청문 형제는 그저 고수가 아니었다. 옥청량이야 그렇다 해도 옥청문은 중원에서 손꼽히는 문파인 철기문의 문주다.

철기문의 위세가 동정오우 중 하나인 혈간으로 인해 다소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옥청문은 충분히 철기문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그들의 공격은 더욱 치명적이고 살벌했다.

“정말 쥐새끼처럼 피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구나… 이놈…!”

옥청문이 동생과 함께 수십 초가 지나도록 공격을 했음에도 어린놈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는지 노기 띤 음성을 발하며 검을 광폭하게 휘두르며 독랄한 살수를 연이어 전개했다.

“우흑-----!”

또 다시 허리께에 검이 스치며 피가 터졌다. 설중행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치명적이지는 않아도 이미 전신에는 이미 무수한 상처가 나 피로 목욕을 한 듯 붉게 변해 있었다. 이제는 뻔히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최후의 진기까지 모두 끌어올려 마지막 승부를 보아야했다.

‘이제 끝장인가?’

최소한 한 명쯤은 저승길에 동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터였다. 설중행은 급히 뒤로 몇 바퀴 회전을 하면서 진기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붉게 변한 그의 전신에서는 붉은 기류가 덮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하진인이나 흑교신과의 싸움에서 보였던 기류보다는 훨씬 약해져 있어 그가 얼마나 지쳐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던 모양이지?”

그의 몸에서 붉은 기류가 덮이고 우뚝 선 채로 쌍수를 가슴에 올리는 것을 보며 옥청문이 놀리듯 말했다. 허나 그의 얼굴에는 미세하나마 긴장감이 떠올랐다. 저 놈이 지쳐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혈룡의 무공을 시전하려 한다.

옥청문과 옥청량은 잠시 시선을 마주치고 나서는 검을 고쳐 잡았다. 어느새 설중행의 주위로 미세한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혈룡의 잔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조금 전과 달리 겨우 두 개 뿐이었다.

그럼에도 옥청문과 옥청량은 다소 긴장된 빛을 띠우며 신중하게 보법을 밟으며 양쪽으로 갈라져 설중행에게 다가들었다.

‘옥청량만 없앨 수 있다면 도망갈 퇴로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두 형제가 양쪽으로 갈라진 것은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다소 무공이 뒤처지는 옥청량을 노리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어찌하든 여기서 도망을 쳐보겠다는 것. 그에게 구룡의 명예나 위신 따위는 본래부터 가진 바 없었고,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치는 비영조장으로서 해왔던 데로 할 뿐이었다.

슈우우----쇄액-----

옥청문의 검에서 검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며 검막이 빽빽하게 허공에 펼쳐졌다. 그 검막은 마치 물위에 퍼져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붉은 기류에 싸인 설중행의 주위 일장 정도의 원을 형성해 내리 꽂혔다.

동시에 옥청문 역시 검에 살얼음이 낀 듯 백광을 길게 뿜으며 설중행의 좌측 상중하를 동시에 노리며 짓쳐 들어갔다. 설중행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콰아-----!

두 개의 혈룡 형상의 붉은 기류가 위로 솟구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옥청문 쪽으로 맹렬하게 쏘아갔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