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오마이뉴스-한림대 기자상 응모작입니다. 이충민 시민기자는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언론 전공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 <편집자주> |
언제부터인가 NIE(News in education)라고 하는 신문활용교육이 주목을 받고 있다. 몇몇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논술강화를 목적으로 NIE를 교과과정으로 분류해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신문의 다양한 지면 가운데 오피니언은 학생들의 글쓰기 교육에 자주 애용된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신문은 논술이다.”라고 말하며 신문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필자 역시 이 말에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교육 재료에도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지론의 중심에는 신문 ‘칼럼’이 있다.
얼마 전 보도된 기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 칼럼의 현주소다. 칼럼이 공인된 연구 결과를 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평소에 신문을 꾸준히 보는 일반인들도 신문의 칼럼난을 쉽게 채울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 시대의 칼럼니스트들은 누구인가? 지성의 집단인 교수와 해외 석학들이 그들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칼럼은 교수집단이라는 특정인들에게 치우쳐있다. 칼럼의 집필권이 교수에게 한정된 것인가?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많은 칼럼니스트의 접근 방식을 보면 이들의 사고와 신념이 대단한 자신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감 아래에 다분히 강제적 요소를 강하게 나타낸다. 또한, 전략적 전제를 깔아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철저한 객관주의를 내세우는 것 같으면서도 많은 대중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포장함으로써 현실정치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폴리페서(polifessor)'다.
여기서 필자가 말한 ’폴리페서‘는 대중을 우롱하는 일부 칼럼니스트를 지칭한다. 이런 ’폴리페서‘들은 논리에 능하다. 논리는 본질을 숨기고 남을 속이는 데 쓰이기도 한다. 이것이 독자가 칼럼을 읽을 때 긴장하고 조심해야 할 이유다.
"칼럼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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