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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과도 정책연대 가능" 발언은 실책

[100분 토론 관전평] 문국현 후보, '토론'은 '강의'가 아닙니다

등록|2007.11.02 02:24 수정|2007.11.02 02:39

▲ ⓒ MBC


언젠가 아는 분과 '문국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화를 나눈 분은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국현은 '똥물'에 손을 확실하게 담굴 의지가 있는가. 참모진들은 문국현을 너무 '온실 속 화초'로 두는 것은 아닌가"

"문국현은 정치를 모른다"거나, 혹은 "문국현은 정치적 경험이 없지 않은가"라는 반응에 대해 문국현 후보는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야말로 정치력"이라는 발언으로써 응수했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단어는 대개 복수의 의미를 갖습니다. '정치'라는 단어에는 '공격'에 대해 제대로 맞받아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됩니다. 제가 아는 분이 이야기한 '온실 속 화초'라는 말은, "문국현은 제대로 공격받아본 적이 없어서 공격을 받으면 제대로 대처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숨어있었던거죠.

지난 9월 22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에 대해 "실패하거나 져본 경험이 없기에 그런 경우에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비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판이 문국현 후보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라는 말을 '공격'으로 바꾸면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지자들이 기대했던 문국현의 '100분 토론' 출연, 그러나…

1일 밤 MBC <100분토론>에 문국현 후보가 출연한다는 사실에 대해, 문국현 지지자들은 많은 기대를 표했습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간 "언론에서 '문국현'을 자주 외면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100분 토론>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문국현 후보도 유력 대선주자로 인정받는다는 방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블로거 간담회 등지에서 직접 지켜봤던 '문국현의 화법'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국현은 모범생'이라는 평가는, '쇼'를 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다소 느린 말투와 강의형 말투에서 비롯되는 '재미없는 이미지'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의형 말투'는 대화 당사자에게 다소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 하는 말투입니다. 포럼에서 강연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말투로 보입니다. 하지만 '토론'에서 해야 할 말투는 아닙니다. '검증 토론'이나 '후보자 간의 TV 토론'은 철저한 '공격'과 '수비'로 이뤄집니다.

특히나 이명박·정동영 후보가 출연했을 당시의 <100분 토론>을 지켜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패널로 나온 전문가들, 엄청난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일부 문국현 지지자들은 특히나 강한 공격을 퍼부었던 권영준 경희대 교수에 대해 "문국현에게 악감정이 있느냐"거나 "권영준이 혹시 이명박을 미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험한 비판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권영준 교수는 이명박 후보에게는 더한 공격도 퍼부었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정·재계 빅딜'에 대해 격렬한 비판도 전개했던 적도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문국현 후보 특유의 '강의형 말투'가 철저한 검증무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공격'을 받았을 때는 '강의'가 아니라 '역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최초로 갖는 제대로 된 검증 무대였기 때문인지 문국현 후보도 중간중간에 당황한 기색을 많이 보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검증 무대에서는 '당황'이 아니라 '확신'을 보여줘야 합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이미지'로부터 비롯되는 '믿음'을 바탕으로 후보자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인제 후보의 카리스마 넘치는 말투, 정동영 후보의 매끄러운 말투와 같은 '말투의 매력'도 중요하겠지만, '강한 확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애초에, '강의형 말투' 자체는 '말투의 매력'을 보장하기 힘듭니다.

결국, '강한 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지지자들에게는 안타깝게 작용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특히나 '단일화 문제', 참 중요한 문제였고 본인과 창조한국당의 정치적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정책연대'와 '지지율' 사이에서의 혼동을 느낀 시청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범여권 단일화, 입장 명확히해야

'범여권 단일화'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나라당은 지금 '이명박'과 '이회창'의 대결구도가 점입가경으로 접어들고 있고, '이회창'의 등장으로 인해 사실 문국현 후보의 지지율도 잠식 위험에 처한 것도 사실입니다.

"정책연대라면 '이회창'이라도 할 수 있다"는 발언은 분명한 실책이었습니다. '이회창'은 정책으로써 등장한 이름이 아닙니다. 정치무대 재등장을 '보수집회'로 시작한 정치인입니다. '정책'이 아니라 뻔한 색깔 공방과 '혼탁한 정치공학'에 따라 등장한 이름입니다.

이럴바에는 '범여권 단일화 보이콧'이 당장은 어렵게 작용할지는 몰라도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내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어필의 기회를 '당황' 속에서 좌초시켰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문국현 후보가 내걸 수 있는 이미지는 '선명성'입니다. 그래서 창조한국당 창당 과정에서도 "기존 정치인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일텐데,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했습니다. 통합신당 측에는 '반성'을 이야기하면서 단일화에 대해서는 이렇듯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면 가장 타격이 심한 부분은 바로 그 '선명성'입니다.

입장을 명확히 정리해서, 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는 확실하게 어필해야겠습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각 후보자 캠프들이 실시간으로 참고할텐데, 어느 상황에서도 '이명박'과 '이회창'의 구도가 두드러집니다. '범여권 단일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이유입니다.

문국현, 거시경제정책 제대로 수립해야

경제정책 검증에 있어서는 '인센티브'와 '경쟁력'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문국현 후보가 하이에크식 자유시장론과 '매커니즘 디자인 이론'을 참고하고 있다는 점이 보다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권영준 교수는 '4조 2교대론'에 대한 실질적 가능성에 대해 확고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애초부터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습니다. 정태인씨가 거론했던 '중소기업의 채용자 규모별 통계', 그리고 일각에서 제기됐던 '자본가의 선(善)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입니다.

'4조 2교대론'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원활하게 전파시킬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경제 전반을 통찰하는 거시경제이론이 필요했습니다. '사람 중심 진짜 경제'라는 슬로건은 이미 충분히 홍보됐습니다. 문제는 '하도급 비리 척결'이나 '4조 2교대론'을 어떻게 포괄해 국가경제를 운영하겠느냐는 입장 표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도 하이에크식 자유시장론이나 매커니즘 디자인 이론을 이야기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더 많이 가진 자를 위한, 경쟁 구도 자체를 해체시키는 경제 이론입니다. 이 점을 부각시키면서 '공정한 경쟁'을 확고하게 주장했더라면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실현 가능성'은 설득의 문제입니다. 설득이 가능한 거시경제 슬로건, '사람 중심 진짜 경제'라는 대외이미지용 슬로건과 함께 '구체적 설득'도 가능한 슬로건도 필요했다는 의미입니다.

검증 무대, 제대로 적응하는 후보가 승산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명박·정동영 후보도 <100분 토론>에서 혼쭐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검증'이란, '의혹 해소'와 함께 '공격'을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토론에서는 후보들 간의 '난타전'이 전개될지도 모릅니다. 후보자들 모두 장단점이 있는만큼 아주 치열한 무대가 될 것입니다.

문국현 후보는 <100분 토론>에서 '인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온화하다'는 긍정적인 평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인간성 테스트'가 아닙니다. '인간성'과 함께 '능력'과 '현실 이해', 그리고 '배짱'을 평가받는 무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화하다'는 평은 도움되지 않습니다. 이명박 후보, 그 '불도저 이미지' 때문에 많은 지지를 얻는 것입니다.

남은 47일 간은 결국 '배짱'의 무대입니다. 과거에 이인제 후보가 그 '배짱' 하나로 500만 표를 득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땐, 유력 대선 후보들 모두 이 '배짱'에 있어서는 아직 치고 나온 후보는 아무도 없습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배짱과 '온화함'을 동시에 과시할 수 있는 후보자가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후보자 캠프 측에서는 이 점을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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