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위해 가혹한 '학습노동' 받는 아이들
[대선 정책제언 : 의료-교육 ⑦] 소수의 성공보다 다수의 행복을 원한다
<오마이뉴스>는 27개 보건의료단체의 연대체인 '의료 연대회의'와 24개 교육복지단체의 연대체인 '교육복지실현국민운동본부'와 공동으로 대선 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교육-의료 2007 희망만들기'란 제목의 이번 기획을 통해 대선에서 꼭 다뤄져야할 교육-의료 분야의 핵심 의제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교육복지실현 국민운동본부 권재원 정책분과장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 현재 서울 강남과 목동에는 대입학원보다 고입학원이 더 성황이라는 지적이다. 바로 외고 등 특목고 입시 때문이다. 사진은 서울 목동에 있는 학원 건물 모습. ⓒ 윤근혁
이 정도에 이르면 한국 교육의 위기는 입시제도 개혁, 공교육 강화 방안 등 대증요법으로 해결될 수준을 넘었다. 이제는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떤 것이라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의 답이 필요하다. 즉 공교육 패러다임을 되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그 동안 우리나라 교육을 지배해온 '인간자본론'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인간자본론은 교육은 일종의 투자이며 그 결과 만들어지는 '인재'의 능력은 그 산출이라는 관점이다. 한 마디로 교육은 인재를,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학생은 생산품이 될 재료로 간주되며 완성된 학생을 사용할 소비자는 국가와 기업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을 이런 ‘인간자본론’이 지배하고 있음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담당부서가 '교육인적자원개발부'라는 것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런 인간자본론은 교육당국 뿐 아니라 학부모나 학생들까지 감염시켰다. 국가가 교육을 질 높은 노동력의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개인은 교육을 사회에서 자신의 지위와 보상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것이다. 즉 인간자본론은 개인 차원에서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교육을 받게 만들며, 사회 차원에서는 쓸모 있는 구성원을 생산하기 위해 교육을 하게 만든다. 그 필연적인 귀결은 경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 차원의 인간자본론은 교육의 질이 아니라 교육의 결과에 따른 서열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경쟁이 일어난다. 교육의 질이 낮으면 낮은 데로 높으면 높은대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 공교육 +@를 원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교육의 고질병이 공교육의 품질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철학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왜곡된 철학을 보편화 시킨 주범은 이름까지 노골적으로 바꾼 교육당국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교육의 주인공인 학생들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학생들의 행복과 권리는 미래의 복된 국가를 위해 혹은 미래의 출세를 위해 끊임없이 유보되고, 저 막연한 미래의 복된 국가와 출세를 위해 현재의 억압과 가혹한 학습노동을 강요받는다.
그 결과는 도리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그들의 자발적인 힘을 소멸시키고 그 대신 획일적인 입시내용과 점수 따기 기술만 남겨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창의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못한, 게다가 행복하지도 못한 국민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미래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현재를 질식시킨 인간자본론적 교육은 정작 미래의 번영과 행복의 싹을 그 뿌리 채 갉아먹고 있다.
우리는 '복지로서의 교육'을 주장한다
.image.이제 우리는 학생을 재료로 보며 그들을 질식시켜 생산력으로, 노동력으로 만들어내려는 일체의 인간자본론적 교육관을 거부한다. 우리는 교육이란 무엇보다도 교육받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며, 그 행복은 미래에 유보된 것이 아니라 교육받는 순간에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학교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뎌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학습의 공간이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소수의 학생의 성공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다수 학생의 행복을 위한 교육, 그리고 이 행복에서 배제되는 학생들을 최소화하는 그런 교육을 원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복지로서 교육”을 원한다.
복지로서 교육의 목적은 생산력도, 문화의 전승도 아닌 개인의 삶의 질이다. 교육은 받으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시민들에게 국가가 이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장하는 교육복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정도에 그쳤던 소극적 교육복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극적 교육복지는 사실상 취약계층, 스스로의 힘으로는 노동자로 재생산되기도 어려운 지경의 하층민들을 국가가 노동자로 재생산시켜 주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도리어 인간 자본론을 완성시키고 보완하는 정책이다.
진정한 교육 복지는 여러 사회집단들이 교육의 과정과 결과에서도 평등에 수렴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정의를 구현 할 때 달성된다. 교육은 빈곤층 학생들의 생계를 위한 기술 제공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지식 형성 과정에 참여할 기회와 능력을 제공해야 하며, 또한 자신의 삶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결정할 기회와 능력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교육복지의 목표를 교육 밖에 아니라 안에서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교육은 행복의 불평등 해소해야
교육은 문화적 혜택이며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페라나 전시회 등의 문화적 혜택을 저소득층에게 제공할 때 이를 바탕으로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의 해소다. 교육 역시 복지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복지의 내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즉 경제적 자원 획득 수단이 아니라 교육은 모든 국민들에게 충분히 제공되어야 그 자체 가치 있는 혜택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교육 복지를 통해 단지 부의 불평등의 해소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의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한다. 물론 복지로서 교육이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로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가 되며, 인류의 지적·문화적 유산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협소한 몇몇 산업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큰 가능성을 열어준다.
기술은 학원에서 배워도 되지만 이런 지적·문화적 유산과 창조적인 유산은 공교육이 담당해야 하며 그 혜택은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인간자본론은 교육을 생존경쟁을 위해 마지못해 해야 하는 외적 압력으로 보지만 우리는 교육을 학생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보는 것이다.
교육복지를 중심으로 교육정책 전면적 개편
이제 우리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행복을 중심으로 둔 교육관, 복지로서의 교육관을 요구하며, 인간자본론에 기반한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먼저 '교육인적자원개발부'라는 교육당국의 이름부터 '교육복지부'로 개칭할 것을 요구하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의 개편, 학제개편, 입시제도의 개혁, 소수자에 대한 배려, 다양한 교육에 대한 지원과 배려를 요구한다. 우리는 무상교육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이 수준을 넘어서서, 교육의 내용,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학생들의 '행복'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재구성 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우리는 이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교육의 객체로 취급되어왔던 학생, 학부모, 교사가 진정한 교육의 주체로 전환되도록 할 것이다. 피교육자들이, 그리고 교사들이 단지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복지의 요구자로서 또 참여자로서 적극적으로 욕구를 조직화하고 이를 공론화 할 때 비로소 공교육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 변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최악의 관료주의와 최악의 입시지옥 문제는 그 근본에서부터 해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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