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주장] 이제 정당정치로 갈 때다

정당정치 부재의 책임, 정치인과 국민의 몫이다

등록|2007.11.05 08:28 수정|2007.11.05 09:54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 나올 수도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지지율은 20%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출마를 결정하지 도 않은 상태거니와 번듯한 정책 제시가 전무하다. 설사 그가 출마를 한다고 해도 40일 남짓 남은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충실한 정책공약을 내놓을지 의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이 ‘정책’이 아니라 ‘인물’에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뜨내기 철새들의 정당 나들이

민자당, 민정당, 신한국당,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열린우리당까지 대선을 위해 급조된 정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97년 창당된 한나라당이 10년이라는, 그나마 가장 긴 역사를 가졌을 뿐이다. 비록 우리나라의 건국이 다소 늦었다하더라도 100여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의 여러 정당과 비교해 봤을 때, 그 역사는 일천하다.

무릇 정당이라 함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단체, 특정 이념을 바탕으로 특정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정치조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민주노동당이 ‘서민 ‧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말을 할 뿐, 여타의 다른 당들은 모두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꼼수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민이 정당정치에 대해 갖는 불신 때문이다. 대선을 위해 급조된 정당들이 낳은 결과다. 이러다보니, 정책과 정당은 없고 인물만 있다. 대선 때마다 뜨내기 철새처럼 자리를 옮기는 국회의원들의 이합집산 모습은 ‘인물’만 있는 그릇된 정치문화의 발로가 아닐까. 우리나라에 정당정치는 없다.

집나간 계급의식을 찾습니다

정당정치의 실종에 대한 책임은 뜨내기 철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 부분 국민에게도 그 몫이 있다. ‘살기 어렵다’고 국민들은 성토한다. 각 후보들의 대선 공약이 경제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OECD 평균치 이상의 연(年) 4~5%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무역수지 역시 흑자상태다. 이러한 거시적 경제지표와 국민 삶의 지표와의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성장의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자본 독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금산분리 폐지, 출자총액제도 완화 등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표방하는 야권의 한 후보가 4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공약의 큰 틀에서 볼 때, 서민을 대표하지 않는 후보자가 받는 높은 지지율과 서민을 대표한다는 후보자가 갖는 저조한 지지율, 이 둘의 바탕에는 국민의 어긋한 계급의식이 있다.

강남 사람들에 비해 강북 사람들은 계급적 의식이 없다는 지적에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계급의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강남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라 말한 바 있다. 노동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국민의 어긋난 계급의식은 분명 ‘강남화’와 궤를 같이 한다. 40% 이상의 고공비행 역시 이에 기인했으리라.

계급의식이 없는 사회에서 선거는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서민 이익을 대표하지 않음에도 ‘불도저’ 이미지를 가진 후보가 서민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다. 아직 출마하지도 않은 후보가 높은 지지율을 받는 이유다. 국민의 계급의식이 없는 한 정당정치의 탄생은 멀게만 보인다.

정당(正堂)한 정당(政堂)을 만들 때다

모두가 국민을 대변하고 중도를 표방하는 ‘비차별성’, 계급적 이해 없이 대세론이나 이미지에 휩쓸린 유권자들의 ‘묻지마식 투표’ 등은 정당정치가 없는 우리 정치의 모습이다. 이러함에 대한 논의와 개선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정치’적 민주주의로 변모될 수 있다.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철저한 정책검증이 이뤄져야 하는 건 그래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