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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고운 단풍 실컷 보았네"

산홍 수홍 인홍에 물든 지리산 피아골

등록|2007.11.06 08:55 수정|2007.11.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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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피아골 단풍구경11월 4일 피아골 ⓒ 조도춘

지난 4일 단풍이 우리 집까지 찾아오기 전에 지리산 피아골 단풍을 찾아 떠났습니다. 전날 느긋한 마음으로 늦잠을 자려고 알람까지 꺼놓고 자고 있는데  “단풍 구경 가자”고 아침잠을 깨우는 민주 엄마의 아우성에 억지로 일어나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처지라 일요일은 일주일 중에서 빨리 일어나는 구속에서 벗어나는 날인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단풍구경을 가게 되었습니다.

▲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 숲 ⓒ 조도춘


물과 먹을거리를 간단히 챙겨서 지리산 골짜기로 출발했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가다 피아골로 접어들자 계곡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애기단풍의 붉은 잎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단풍 나들이객으로 아침부터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연곡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차는 서다가다를 반복하다 겨우 길 한쪽 모퉁이에 엉거주춤 주차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안내원과 경찰의 지도가 있지만 단풍을 보려는 욕심을 그 누구도 말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 산홍(山紅)을 만든 단풍 ⓒ 조도춘

▲ 물밑에 가라않은 단풍잎 ⓒ 조도춘


매년 이때가 되면 단풍 나들이객으로 이 골짜기에는 축제가 벌어집니다. 옛날 이 일대에 피밭(피전: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리산의 뛰어난 경치 10경 중에 하나로 꼽히는 수려한 경관이지만 뼈아픈 역사의 상처도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한말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불운한 곳이기도 합니다.

연곡사를 지나 직전마을까지 가는 길가의 단풍도 볼 만합니다. 본격적인 단풍구경은 직전마을 지나 피아골 대피소로 가는 길에서입니다. 어제부터 시작한 산신제로 등산로 입구는 “소원 리본” 달기로 부산합니다.

“산신령님이 가장 뜻 깊고 가장 소원하는 것을 보면 들어 주실 것입니다.” 최지연 구례군청 여직원은 리본을 달아보라고 등산객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소원도 빌고 단풍구경도 하는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등산객들의 발길을 잡습니다.

“조국통일” “로또1등” “전교1등” “시험 올백” “감기 뚝” “한자 5급 합격” 산신령에게 비는 소원도 울긋불긋 단풍만큼이나 화려합니다. 그래도 제일 많이 비는 소원은 “가족 건강과 행복”이었습니다.

버섯을 키웠다는 표고막터를 지나자 벌거벗은 나목으로 돌아가는 나무들의 마지막 몸부림은 화려한 단풍으로 변해 행락객들의 환호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자연이 만들어준 선물을 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사람의 도리가 아닐 듯 싶습니다.

초청장을 받지도 않았을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산행을 하는 단풍 나들이객들은 나무들의 화려한 변신에 축하객으로 참여하는 듯 보입니다.

골짜기 따란 난 숲길은 붉은 장미보다 더 붉은 단풍에 묻혀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골짜기로 조금 들어가자 눈부시게 붉은 단풍에 불규칙해진 호흡을 다시 한 번 가다듬었습니다. 좁은 길 따라 숲 깊숙이 들어서자 어느새 마음도 숲의 하나가 되었는지 흥분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갈 길을 잃었습니다. ⓒ 조도춘

▲ 삼홍소 ⓒ 조도춘


어느덧 삼홍소에 도착했습니다. 단풍에 산이 붉게 타고(山紅), 붉은 단풍이 물에 비쳐 물까지 붉게 보이고(水紅), 산홍과 수홍으로 사람들의 얼굴까지 붉게 만든다(人紅)는 삼홍소(三紅沼)입니다. 일부 등산객들은 가을의 여유에 빠져듭니다. 단풍에 물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 이상 갈 길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 꼬리를 이은 단풍행락객들 ⓒ 조도춘


사람들의 긴 행렬에 묻혀 두 시간이 넘는 단풍 신행길을 걸었습니다. 어느덧 피아골 대피소에 다다랐습니다. 단풍 나들이객들이 이 곳에 다 모인 듯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피아골 삼거리인 임걸령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 쪽으로 가기 위해 임걸령으로 가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입니다.

오늘은 목적지는 이곳까지입니다. 연곡사에서부터 6.3킬로미터의 단풍구경. 피아골 대피소 기점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 물집은 생기지 않았지만 발바닥이 시큰거립니다. 준비없이 시작한 단풍구경이었는데 “견물생심”이란 말이 단풍구경에도 적용되나 봅니다.

단풍을 많이 볼 욕심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걸었더니 발바닥을 고생시켰습니다. 되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앉아 무릎 마사지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손잡기를 망설였던 연인들이 부축하다는 핑계로 쉽게 손을 잡고 부축하는 횡재도 눈에 띕니다.

민주 엄마는 “정말 오랜만에 고운 단풍 실컷 보았다”며 “이제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민주 엄마 덕분에 단풍 매력에 푹 빠진 하루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u포터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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